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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칼럼]

[한마음 칼럼] 네비우스를 아시나요? 4

by 농자천하/ 2021. 8. 14.


한마음 칼럼 : “다시 만나는 네비우스-4”

제국주의 일본의 한반도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기존의 유교와 불교에 실망한 당시의 조선 민중은 기독교(그리고 동학)를 새로운 희망으로 여겨 교회로 밀려들었고, 김구 안창호 이승훈 윤치호 서재필 주시경 이준 신채호 남궁억 김규식 조만식 유관순 안중근 이상재 윤동주 등등의 수많은 기독교인 선각자들이 국내외에서 구국과 독립활동을 이어갔다.

하지만 풍전등화와 같던 이 나라의 운명에 대해 교회가 가담하는 것을 극렬히 반대했던 미국 선교사들은 이 땅에 들어온 지 반세기, 25년이 지난 다음에야 한국인 목사 7인을 안수하였고 독노회(조선의 독립노회)를 설립하였다. 당시 통계자료를 보면 984개 교회, 세례 17,890명, 원입 21,482명이나 되었으니 미국 선교사들이 얼마나 한국인들을 믿지 못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이때가 저 유명한 ‘1907년 대부흥’이 있던 해이다. 조선 민중에게 어떤 희망도 되지 못했던 당시의 불교와 유교처럼 어느샌가 오늘날의 개신교도 그렇게 되고 말았다. 이렇게 급격한 쇠퇴기를 맞은 오늘의 한국교회는 저 ‘1907 대부흥’이 다시 소환되기를 바라고 ‘대부흥 1백 주년 행사’를 대대적으로 치렀지만 역부족이었다.

그처럼 온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한국교회는, 우리의 땅 한반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하느님의 구속사(救贖史, Heilsgeschichte)적 의미들을 이야기하며 성서의 하느님께로 조선 민중을 이끌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때나 오늘이나 이 땅의 교회와 목회자들은, 자신의 운명을 무속적인 헛된 것에 손쉽게 내어주는 민중의 나약함을 악용, 착복하고 있다.

해방 이후 곧바로 휘말린 6.25 전쟁의 참화는 또다시 이성봉 목사의 종말론적 부흥회에 이 땅의 민중이 몰려들게 했고, 그 틈새를 타고 나타난 사이비 기독교 이단들에 또 많은 이들이 자신의 영혼과 삶을 탕진하는 부작용을 맞았다. 그리고 이어진 급격한 도시 중심의 산업화로 도시 빈민이 급증하던 몹시 불안정한 사회 상황에 한국교회는 다시 기도원 운동과 일시적 종교적 감정체험에 함몰되었다. 이는 다른 종교들도 모두 비슷했다. 오죽했으면 수천 년 동안 불교와 유교 그리고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와 선교했지만 지금 남은 건 무속신앙뿐이라는 탄식이 있을까.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우리의 10~20대 청소년과 청년들 80%가 자신들에게 종교는 필요 없다고 여기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이런 심각한 상황을 여전히 모르고 있는 한국교회와 목사들에게 필연적으로 되돌아온 부메랑이다.

이런 처지에서 우리는 저 1907년을 ‘이 땅의 민중과 함께 한 성서 중심의 자생적 한국교회’를 잃어버린 비운의 해로 기억한다. ‘존 네비우스’처럼 자신의 현장에 자신과 가족을 바쳐 헌신한 수많은 농어촌 목회자들의 선교적 삶을 이어 실천하는 각성과 연대만이 한국교회를 되살리는 길이라고 보면서, 매우 적지만 우리에게는 너무나 벅찬 길을 걷고 있다. /계속 (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