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슬라바 쉼보르스카(Wislawa Szymborska) ]
감사
/ 쉼보르스카
나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그들이 다른 누군가와 더 가깝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안도를 느낀다.
내가 그 선한 양의 무리 속에서 늑대가 아니라는 사실에
기쁨을 느낀다.
그들과 함께하면 평화롭고,
그들과 함께하면 자유롭다.
그것은 사랑이 가져다줄 수도,
빼앗아갈 수도 없는 소중한 것이다.
나는 창문과 대문을 서성이며
그들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마치 해시계처럼
무한한 인내심으로
항상 너그럽게 그들을 이해한다.
사랑이 결코 이해 못하는 것을.
언제나 관대하게 용서한다.
사랑이 결코 용서 못하는 것을.
첫 만남부터 편지를 주고받을 때까지
영원의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단지 며칠이나 몇 주일만 기다리면 된다.
그들과 함께하는 여행은 언제나 성공적이다.
음악회에 가도 끝까지 집중할 수 있고,
대성당을 구경할 때도 속속들이 살펴볼 수 있다.
주위의 모든 풍경도 또렷하게 잘 보인다.
일곱 개의 산과 일곱 개의 강이
우리를 갈라놓을지라도
그것은 이미 지도를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바로 그 산과 강일 뿐,
그 이상 아무런 의미도 없다.
만일 내가 삼차원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면,
서정적이지도 수사적이지도 않은 공간에서,
움직이는 지평선, 실존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면
그것은 모두 그들의 덕택이다.
그들 자신도 모른다.
맨주먹 안에 실은 얼마나 많은 것을 움켜쥐고 있는지.
"난 그들에게 아무런 빚도 없어."
아마도 사랑은 이렇게 말할 게다,
이 공개된 질문에 대해서.
시집 『끝과 시작』 문학과 지성사.
나에게 던진 질문
/ 비슬라바 쉼보르스카
미소 짓고, 손을 건네는 행위,
그 본질은 무엇일까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순간에도
홀로 고립되었다고 느낀 적은 없는지?
사람이 사람으로부터
알 수 없는 거리감을 느끼듯,
첫번째 심문에서 피고에게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내는
엄정한 법정에 끌려나온 듯,
과연 내가 타인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을까?
책을 펼쳤을 때 활자나 삽화가 아닌
그 내용에 진정 공감하듯이,
과연 내가 사람들의 진심을 헤아릴 수 있을까?
그럴듯하게 얼버무리면서
정작 답변을 회피하고,
손해라도 입을까 겁에 질려
솔직한 고백 대신 번지르르 농담이나 늘어놓는 주제에,
참다운 우정이 존재하지 않는
냉혹한 세상을 탓하기만 할 뿐,
우정도 사랑처럼
함께 만들어야 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 시집『끝과 시작』(문학과지성사, 2007)
단어를 찾아서
/ 쉼보르스카
솟구치는 말들을 한마디로 표현하고 싶었다.
있는 그대로의 생생함으로.
사전에서 훔쳐 일상적인 단어를 골랐다.
열심히 고민하고, 따져보고, 헤아려보지만
그 어느 것도 적절치 못하다.
가장 용감한 단어는 여전히 비겁하고,
가장 천박한 단어는 너무나 거룩하다.
가장 잔인한 단어는 지극히 자비롭고,
가장 적대적인 단어는 퍽이나 온건하다.
그 단어는 화산 같아야 한다.
격렬하게 솟구쳐 힘차게 분출되어야 한다.
무서운 신의 분노처럼.
피 끓는 증오처럼.
나는 바란다. 그것이 하나의 단어로 표현되기를.
피로 흥건하게 물든 고문실 벽처럼
네 안에 무덤들이 똬리를 틀지언정,
나는 정확하게, 문명하게 기술하고 싶다.
그들이 누구였는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지금 내가 듣고 쓰는 것, 그것으로 충분치 않다.
터무니없이 미약하다.
우리가 내뱉는 말에는 힘이 없다.
그 어떤 소리도 하찮은 신음에 불과하다.
온 힘을 대해 찾는다.
적절한 단어를 찾아 헤맨다.
그러나 찾을 수 없다.
도무지 찾을 수 없다.
뜻밖의 만남
/ 쉼보르스카
우리는 서로에게 아주 공손히 대하며,
오랜만에 만나서 아주 기쁘다고 말한다.
우리의 호랑이들은 우유를 마신다.
우리의 매들은 걸어다닌다.
우리의 상어들은 물에 빠져 허우적댄다.
우리의 늑대들은 훤히 열려진 철책 앞에서 하품을 한다.
우리의 독뱀들은 번개를 맞아도 전율하고,
원숭이는 영감(靈感)때문에, 공작새는 깃털로 인해 몸을 부르르 떤다.
박쥐들이 우리의 머리 위로 멀리 날아가버린 건 또 얼마나 오래전의 일이던가.
문장을 잇다 말고 우리는 자꾸만 침묵에 빠진다.
무력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우리 인간들은
대화하는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밤
/ 쉼보르스카
그리고 하느님께서 이렇게 분부하셨다; 사랑하는 네 외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거라.
거기서 내가 일러주는 산에 올라가
그를 번제물로 나에게 바쳐라.
-창세기 22장 2절
도대체 이사악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단 말인가?
신부님께 교리 문답이라도 청해야겠다.
공을 차서 이웃집 유리창이라도 깨뜨렸나?
울타리를 넘다가 새 바지에 구멍이라도 냈나?
연필을 훔쳤나?
암탉을 놀라게 했나?
시험칠 때 친구에게 답을 슬쩍 가르쳐주었나?
어른들이여, 바보 같은 꿈이나 꾸며
무기력하게 잠에 빠져들어라.
나 아침까지 뜬눈으로
이 밤을 지새우리니,
고요한 암흑이 내게 맞서
팽팽한 침묵을 지키고 있다.
아브라함의 고뇌처럼
어두운 이 밤.
성서에 나오는 신의 눈동자가
먼 옛날 이사악을 주목했듯이
지금 이 순간 뜷어져라 나를 응시하고 있다.
과연 어디에 이 몸을 숨길 수 있을까?
신이 마음만 먹으면 죽은 사람도 소생시킨다는 건
이미 해묵은 옛날이야기
이 공포의 극한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머리끝까지 담요를 뒤집어쓰는 것뿐.
머지않아 창가에서
새하얀 무언가가 연기처럼 피어올라
방 안 곳곳에서 새처럼, 바람처럼 퍼드덕대리라.
하지만 현실 속에는
그처럼 커다란 날개짓을 하는 새도,
그처럼 기나긴 여운을 남기는 바람도,
존재하지 않는 법.
신은 정말 우연히 나를 선택한 것인 양
그럴듯하게 꾸며대고 있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결국엔 비밀스러운 작당을 위해
아버지를 부엌으로 슬그머니 데려가
귓가에 대고 거대한 뿔 나팔을 불어대겠지.
내일 먼동이 틀 무렵
아버지가 나를 부르면.
나는 떠나리라. 나는 떠나리라.
내 증오는 더욱더 깊어만 가리니
이제 나는 인간의 선함도, 그들의 사랑도
믿지 않으리라.
나는 11월의 낙엽보다
더 나약하고, 무기력한 존재.
결코 믿음을 주지 말 것.
믿음이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니.
함부로 사랑하지 말 것.
기계적으로 박동하는 심장을
그저 가슴속에 품고 다닐 것.
무슨 일이 일어난대도
오래전에 이미 그리되기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니.
무슨 일이 일어난대도
나를 뒤흔드는 건 심장이 아니라
말라틀어진 화석에 불과할 테니.
구름 위 발코니에서
신은 유유히 기다리고 있다.
가련한 번제물을 태우게 될 장작이
보기 좋게 골고루 잘 타고 있는지
편안하게 지켜보면서
나는 반드시 죽으리라.
나를 구원하도록 결코 내버려두지 않으리라!
견디기 힘든 악몽이 나를 괴롭히던
그날 밤부터
견디기 힘든 고독이 날 괴롭히던
그날 밤부터
신은
아주 천천히
발걸음을 돌리기 시작했다.
'문자 그대로의 확실한 의미'에서
'애매모호한 비유'를 향해.
가장 이상한 세 단어
/ 쉼보르스카
내가 "미래"라는 낱말을 입에 올리는 순간,
그 단어의 첫째 음절은 이미 과거를 향해 출발한다.
내가 "고요"라는 단어를 발음하는 순간,
나는 이미 정적을 깨고 있다.
내가 "아무것도"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이미 무언가를 창조하게 된다.
결코 무(無)에 귀속될 수 없는
실재하는 그 무엇인가를.
박물관
/ 쉼보르스카
접시들은 있지만, 식욕은 없어요.
반지는 있지만, 이심전심은 없어요.
최소한 삼백 년 전부터 쭉.
부채는 있는데- 홍조 띤 빰은 어디 있나요?
칼은 있는데- 분노는 어디 있나요?
어두운 해질 녘 류트를 퉁기던 새하얀 손은 온데간데 없네요.
영원이 결핍된 수만 가지 낡은 물건들이
한자리에 다 모였어요.
진열장 위에는 콧수염을 늘어뜨린 채
곰팡내 풀풀 풍기는 옛날 파수꾼이
새근새근 단잠을 자고 있어요.
쇠붙이와 점토, 새의 깃털이
모진 시간을 견디고 소리 없이 승리를 거두었어요.
고대 이집트 말괄량이 소녀가 쓰던 머리핀만이
킬킬대며 웃고 있을 뿐.
왕관이 머리보다 더 오래 살아남았어요.
손은 장갑에게 굴복하고 말았어요.
오른 쪽 구두는 발과 싸워 승리했어요.
나는 어떨까요, 믿어주세요, 아직도 살아 있답니다.
나와 내 드레스의 경주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어요.
이 드레스는 얼마나 고집이 센지!
마치 나보다 더 오래 살아남기를 열망하듯 말이죠.
연극에서 받은 감상
/ 쉼보르스카
내게 있어 비극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6막,
연극의 제일 마지막 장면,
전쟁터에서 죽은 자들이 부활하는 대목.
그들은 구겨진 가발과 의상을 다시 펴서 매무새를 고치고,
가슴에 꽂힌 칼을 뽑아내고,
목을 졸라맨 올가미를 벗어던지고,
살아 있는 사람들 틈에 섞여 가지런히 정렬한 뒤,
청중을 향해 미소 띤 얼굴을 돌린다.
혼자, 혹은 무리를 이뤄 절을 한다.
창백한 손을 상처 입은 가슴 위에 올려놓는다.
무릎을 굽혀 공손하게 인사하는 자살한 여인들.
정중하게 절을 하는 잘려나간 머리들.
둘이 함께 절을 한다:
분노는 화해를 향해 부드럽게 손 내밀고,
희생자는 고문관을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모반을 꿈꾸는 반역자는 폭군의 곁을 너그럽게 지나친다.
영원은 황금빛 구두 굽 아래서 무참히 짓밟히고,
교훈은 차양 넓은 모자를 휘두르는 바람에 여기저기 흩어져버리고 만다.
시간 관계상 미처 복구하지 못한 다른 사항들은 어느 틈에 내일 새롭게 시작할 채비를 한다.
자, 이제는 초반에 일찌감치 죽은 자들이 일렬종대로 입장할 차례.
그들은 3막과4막, 그리고 장면의 중간 중간에 이미 숨을 거두었다.
흔적도 없이 죽음을 당했던 이들의 기적적인 생환,
의상도 벗지 않고,
립스틱도 지우지 않은 채.
무대 뒤에서 참을성 있게 기다렸을 그들을 생각하니
비극의 기나긴 사설(辭說)보다 저 진한 감동이 밀려온다.
내려왔던 막이 다시 올라가기 직전,
바닥과 막 사이의 좁은 틈 사이로 보이는 기묘한 광경:
여기 서둘러 꽃다발을 집어 올리는 손과
떨어진 칼을 부지런히 줍는 나머지 다른 손이 있다.
이제서야 비로소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눈에 띄지 않는, 또 하나의 등장인물.
진정 내 목을 메게 하는 건 바로 그 사람이다.
위에서 내려다본 장면 / 쉽보르스카
시골 길에 죽은 딱정벌레 한 마리가 쓰러져 있다.
세 쌍의 다리를 배 위에 조심스레 올려놓은 채,
죽음의 혼란 대신 청결과 질서를 유지하면서,
이 광경이 내포하는 위험도는 지극히 적당한 수준,
갯보리와 박하 사이의 지정된 구역을 정확히 준수하고 있다.
슬픔이 끼어들 여지는 완벽하게 차단되어 있다.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푸르다.
우리의 평화를 유지시켜주기 위해,
동물들은 정말로 죽는 것이 아니라 표면적으로만 숨을 거둔다.
우리들이 믿고 싶어 하는 대로, 감각이나 이승에 대한 미련을 훌훌 떨쳐버린 채,
우리들이 짐작한 대로, 저승보다는 덜 비극적인 이 세상을 홀연히 떠난다.
그들의 온순한 영혼은 절대로 어둠 속에서 우리를 겁주지 않는다.
그들은 거리를 유지할 줄 안다.
그들은 배려가 뭔지를 안다.
여기 길 위에 죽은 딱정벌레 한 마리가 있다.
그저 한 번 쳐다봐주는 것도 딱정벌레에겐 커다란 추모일 수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지극히 태평스러워 보인다.
중요하고 심각한 일은 모조리 우리, 인간들을 위해 예정되어 있다.
삶은 오로지 우리들의 것이며,
언제나 당연한 듯 선행권(先行權)을 요구하는 죽음 또한 오로지 우리들만의 전유물이다.
히틀러의 첫번째 사진
/ 쉼보르스카
앙증맞은 유아복을 입은 요 갓난아이는 과연 누구?
히틀러 부부의 아들, 꼬맹이 아돌프.
법학 박사가 될까나, 아니면 비엔나 오페라의 테너 가수가 될까나?
요건 누구의 고사리 손? 요 귀와 눈, 코의 임자는 누구?
우유를 먹여 빵빵해진 이 조그만 배는 또 누구 거지? 아직은 알 수 없네.
인쇄공인지, 의사인지, 점원인지, 신부님인지.
요 우스꽝스러운 조그만 발이 결국엔 어디로 향할까나, 과연 어느 곳으로?
정원으로, 학교로, 사무실로.
아니면 시장 딸과 결혼하기 위해 결혼식장으로 가려나?
아기 천사, 금지옥엽, 재롱둥이, 애물단지,
일 년 전 그가 세상에 나왔을 때
하늘과 땅에는 온갖 징조 가득했지.
봄의 햇살, 창틀에 핀 제라늄.
뜰에서 들려오던 아코디언 소리,
분홍빛 종이로 포장된 행운의 점괘,
태어나기 직전 어머니가 꾸었던 운명적인 태몽까지,
꿈속에서 비둘기를 보는 건 즐거운 소식,
그 비둘기를 잡는 건 오랫동안 기다리던 손님이 온다는 반가운 기별,
똑똑---- 누구세요? 아돌프의 조그만 심장이 우리들의 귓가를 두드리는군요.
장난감 젖꼭지, 기저귀, 턱받이, 딸랑이,
건장한 사내아이, 신에게 기도하자, 부정 타지 말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게,
부모를 닮았고, 바구니 속 졸린 눈을 가진 새끼 고양이를 닮았고,
가족 앨범 속의 모든 다른 애들과 꼭 닮은 귀여운 아가,
쉿 아가야, 지금은 울면 안 돼,
사진사 아저씨가 검은 천 아래서 찰칵 하고 사진을 찍을 거야.
클리게르 사진관, 그라벤 거리, 브라우나우.
부라우나우는 작지만 멋진 도시.
건실한 회사들과 선량한 이웃들이 있고,
효모로 반죽한 맛있는 케이크와 회색빛 빨래 비누 내음이 물씬 풍기는 곳.
개의 불길한 울음소리도, 운명의 발자국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
이곳에서 역사 선생님은 옷깃을 느슨히 풀고
공책을 쌓아놓은 채 늘어지게 하품을 한다.
참수(斬首)
/ 쉼보르스카
'데콜타쥬 decolletage'의 어원은 '데콜로 decollo'.
라틴어로 '데콜로'는 '목을 자른다'는 뜻
스크틀랜드 여왕 메리 스튜어트는
사형 집행에 딱 맞는 슈미즈 드레스를 입고 단두대에 올랐다.
목 부분이 길게 파인 그 슈미즈는
목에서 흘러나온 피처럼 선명한 붉은 색.
바로 그 순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튜더는
자신의 한적하고 호화로운 방에서
눈처럼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창가에 서 있었다.
턱 바로 아래까지 의기양양하게 단추를 채우고서.
빳빳하게 풀을 먹은 깃 가장자리엔 화려한 주름 장식.
두 여자는 동시에 이렇게 생각했다.
"신이여, 제게 자비를 베푸소서"
"정의가 언제나 내 편에 머물기를----"
"산다는 것은 결국 난관에 부딪히는 것."
"어떤 곳에서는 제빵사의 딸을 '부엉이'라고 우기기도 한다."
"이것은 절대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벌써 다 끝났다."
"아무 것도 없는 이곳에서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드레스의 차이점-그렇다, 그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자.
나머지 세부적인 항목들은
절대로 동요되지 않는 법이니.
바벨탑에서
/ 쉼보르스카
"지금 몇 시야?"
"그래요, 난 행복해요. 단지 목에 걸 수 있는 조그만 종이 필요할 뿐예요.
당신이 곤히 잠든 사이 당신의 머리 위에서 딸랑딸랑 울릴 수 있게."
"그러니까 천둥소리를 못 들었단 말이지? 바람이 온통 벽을 뒤흔들고,
탑은 대문의 경첩을 삐걱대면서 커다란 사자처럼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구."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어요? 그때 나는 어깨에 단추가 달린 평범한 회색빛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걸요."
"그 순간 수많은 폭발과 함께 하늘이 갈라져버렸어."
"나는 분명 그곳에 들어갔었다구요. 기억 안 나요? 당신은 분명 혼자가 아니었잖아요."
"그때 난 갑자기 내 시력보다도 더 오래된 듯한 색깔들을 봤어."
"당신이 아무런 약속도 할 수 없다니 정말 유감이네요."
"어쩌면 당신 말이 맞을지도 몰라, 그건 아마 꿈이었을 거야."
"당신 왜 자구 거짓말하는 거예요? 왜 날 보면서 그 여자의 이름을 부르는 거죠? 아직도 그 여자를 사랑하나요?"
"오, 그래. 난 당신이 내 곁에 있어줬으면 좋겠어."
"후회는 없어요. 다만 그 문제에 대해서 좀더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아직도 그 남자를 생각하나?"
"그렇지만 난 울고 있지 않다구요."
"하고 싶은 말 . 이게 다야?"
"당신 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또 없을 거야."
"적어도 당신은 솔직하군."
"걱정하지 말아요. 이 도시를 곧 떠날 테니까."
"염려 마, 내가 여기서 떠날게."
"당신은 정말 아름다운 손을 가졌군요."
"그건 이미 아주 오래된 옛일이야."
"걱정 말아요, 달링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마세요."
"지금이 몇 신지 모르겠군. 하긴 시간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으니까."
사실상 모든 시에는
/ 쉼보르스카
사실상 모든 시에는
'순간'이라는 제목을 붙일 수 있다.1)
한 구절이면 충분하나니
그것이 현재형이든.
과거형, 혹은 미래형이든.
그것으로 충분하나니
바스락거리고, 반짝거리고,
흩날리고, 흘러가는 것들이
단어에 실려 온다면.
움직이는 그림자를 가진
가상의 불변성을 유지할 수 있다면.
한 마디면 충분하나니
누군가의 옆에 있는 누군가에 관해서.
혹은 뭔가의 옆에 있는 누군가에 관해서.2)
고양이를 가진 알라에 관해서.
혹은 고양이를 가지지 못한 알라에 관해서.3)
혹은 또 다른 알라들에 관해서
또 다른 고양이들과 고양이가 아닌 다른 것들에 관해서
바람결에 책장이 넘겨진
또 다른 초등학교 교과서들에 관해서;
그것으로 충분하나니
작가에 의해
시선이 도달하는 반경 내에
일시적인 산과 가변적인 골짜기가
거리매김할 수 있다면.4)
마침 기회가 주어졌기에
겉으로만 영원하고 안정적인
하늘에 대해서 넌지시 이야기할 수 있다면:5)
한창 펜을 움직이고 있는 손끝에서
누군가의 것이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뭔가가 모습을 드러낸다면:6)
그것으로 충분하나니
추측이나 어림짐작으로 그랬건.
아님 중요한 이유든. 하찮은 이유든 간에.
흰 종이 위에 검은 펜으로
물음표가 적혀 있다면.
그리고 대답으로-
달랑 이렇게 적혀 있다면
콜론:
1) '순간'은 쉼보르스카가 2002년에 발표한 열번째 시집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 시는 쉼보르스카가 그동안 자신이 썼던 시의 여러 대목을 빌어다가 패러디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2) 1972년 발표한 시집 에는 "무(無)의 의미는"으로 시작되는 제목이 없는 시가 수록되어 있다. 그 시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어찌어찌 하다보니, 나는 지금 네 옆에 서 있게 되었다./이렇게 되기까지 무엇 하나 예사로운 것이 없었음을/뼈저리게 느끼는 바이다." 이부분을 재구성하였다.
3)폴란드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 첫 페이지. 첫 문장이 바로 "알라는 고양이를 가지고 있다."이다. 즉, 폴란드인이 제일 먼저 배우고, 제일 먼저 기억하는 문장이라고 할 수 있다.
4)2002년에 발표한 시집 에 수록된 표제작 '순간'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시선이 닿는 저 너머까지/이곳을 송두리째 지배하는 건 찰나" 이 구절을 응용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5)1993년 발표한 시집 에 수록된 '하늘'이라는 시에서 쉼보르스카는 하늘이 "부서지기 쉽고, 유동적이며, 바위처럼 단단한,/휘발성으로 변했다가, 또 가볍게 날아오르기도 하는"것이라고 썼다. 이 구절을 응용하여 쓴 것이다.
6)1967 년에 발표한 에 수록된 '쓰는 즐거움'이라는 시에서 모디프를 가져와 쓴 구절이다
이력서 쓰기
/ 쉼보르스카
무엇이 필요한가?
신청서를 쓰고,
이력서를 첨부해야지.
살아온 세월에 상관없이
이력서는 짧아야 하는 법.
간결함과 적절한 경력 발췌는 이력서의 의무 조항,
풍경은 주소로 대체하고,
불완전한 기억은 확고한 날짜로 탈바꿈시킬 것.
결혼으로 맺어진 경우만 사랑으로 취급하고
그 안에서 태어난 아이만 자식으로 인정할 것.
네가 누구를 아느냐보다, 누가 널 아느냐가 더 중요한 법.
여행은 오직 해외여행만 기입할 것.
가입 동기는 생략하고, 무슨 협회 소속인지만 적을 것.
업적은 제외하고, 표창 받은 사실만 기록할 것.
이렇게 쓰는 거야. 마치 자기 자신과 단 한번도 대화한 적 없고,
언제나 한 발자국 떨여져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해왔던 것처럼.
개와 고양이, 새, 추억의 기념품들, 친구.
그리고 꿈에 대해서는 조용히 입을 다물어야지.
가치보다는 가격이,
내용보다는 제목이 더 중요하고,
내가 행세한 '너'라는 사람이
어디로 가느냐보다는
네 신발의 치수가 더 중요한 법이야.
게다가 한쪽 귀가 잘 보이도록 찍은 선명한 증명사진은 필수.
그 귀에 무슨 소리가 들리느냐보다는
귀 모양이 어떻게 생겼는지가 더 중요하지.
그런데 이게 무슨 소리?
이런, 서류 분쇄기가 덜그덕거리는 소리잖아.
죽은 자들과의 모의
/ 쉼보르스카
당신이 어떤 환경에 처했을 때 주로 죽은 사람들이 꿈에 나타납니까?
잠들기전에 종종 그들을 생각하나요?
누구의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오르죠?
매번 같은 사람인가요?
이름은? 성은? 묘지명은? 사망 날짜는?
그들은 주로 무엇에 관해 이야기합니까?
오래된 우정? 혈연관계? 아니면 조국에 대해서?
그들이 어디서 왔다고 밝히던가요?
그들 배후에 누가 있는지.
당신 말고 또 누구의 꿈에 모습을 드러내는지 말하던가요?
그들의 얼굴은 사진과 똑같았습니까?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그들도 늙었습니까?
그들은 건강해 보였나요, 아니면 안색이 창백했나요?
살해당한 자들은 예전의 치명적인 상처를 깨끗이 회복했나요?
누가 자기들을 죽였는지 여전히 기억하던가요?
손에는 무엇을 들고 있었습니까? 그 물건들을 쭉 적어보세요.
그것들은 썩었나요? 녹슬었나요? 불에 탔나요? 부서졌나요?
어떤 기색이 눈빛에 담겨 있었나요? 애원, 아니면 위협? 구체적으로 적어보세요.
당신은 그들과 단지 날씨에 관한 이야기만 했습니까?
그들이 난처한 질문을 하지는 않았습니까?
만약 그랬다면 당신은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신중하게 입을 다무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은근슬쩍 꿈의 주제를 바꾼다든지
때맞춰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오는 건 어떤가요?
고문
/ 쉼보르스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육신은 고통을 느낀다.
먹고, 숨쉬고, 잠을 자야 한다.
육신은 얇은 살가죽을 가졌고,
바로 그 아래로 찰랑찰랑 피가 흐른다.
꽤 많은 이빨과 손톱.
뼈는 부서지기 쉽고, 관절은 잘 늘어난다.
고문을 하려면 이 모든 것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몸은 여전히 떨고 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로마 건국 이전이나 이후,
예수 탄생 이전이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0세기 또한 마찬가지.
고문은 여전히 행해지고 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땅덩이만 줄었을 뿐, 그 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마치 벽 하나 사이에 둔 듯 가까이서 일어난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인구만 증가했을 뿐
해묵은 규칙 위반이 발생하면,
현실적이면서 타성에 젖은,
일시적이며서 대수롭지 않은,
새로운 과오가 다시금 되풀이된다.
그에 대한 책임으로 육신은 비명을 지른다.
이 무고한 비명 소리는
아득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온 음역과 음계를 준수하며
과거에도 그러했고, 현재에도 그렇듯이,
앞으로도 길이길이 존재하리라.
예식과 절차, 춤의 포즈들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머리를 감싸 쥐는 손동작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육신은 몸부림치고, 뒤틀리고, 찢겨져 나간다.
기진맥진 쓰러져, 무릎을 웅크리고,
멍들고, 붓고, 침 흘리고, 피를 쏟는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강물의 흐름과 숲의 형태, 해변,
사막과 빙하를 제외하고는.
낯익은 풍경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작은 영혼이 배회한다.
사라졌다 되돌아오고, 다가왔다 멀어진다.
스스로에게 낯설고, 좀처럼 잡히지 않는 존재.
스스로 알다가도 모르는 불확실한 존재.
육신이 존재하는 한, 존재하고 또 존재하는 한,
영혼이 머무를 곳은 어디에도 없다.
시인의 끔찍한 악몽 / 쉼보르스카
내가 어떤 꿈을 꾸었는지 상상도 못할 거예요.
겉으로는 우리가 사는 이곳과 똑같아 보이네요.
발밑의 토양, 물과 불, 공기,
수평과 수직, 삼각형과 원,
왼쪽과 오른쪽.
견딜 만한 날씨, 그러싸한 풍경
그리고 언어를 부여받은 몇몇의 존재들.
하지만 그들의 언어는 지구상의 그것과 다르네요.
문장을 지배하는 건 비조건문.
명칭들은 사물들과 매우 정교하게 밀착되어 있어
함부로 덧붙이거나, 생략하거나, 변형시키거나, 위치를 바꿀 순 없어요.
시간은 시계 속의 개념대로 기능하는 것.
과거형과 현재형은 모두 좁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죠.
회상에는 지나버린 일 초가 할당되고,
예측에는 이제 막 시작될
이 초가 배당됩니다.
단어는 꼭 필요한 만큼만, 한 마디도 넘치는 법이 없으니,
다시 말해 시도 없고,
철학도 종교도 없다는 뜻.
이곳에선 그런 종류의 유희는 허용되지 않으니까요.
사색을 필요로 하는 건 아무것도 없고,
눈을 감아야 보이는 것 또한 아무것도 없네요.
뭔가를 찾는다면, 그건 분명 옆에 있는 것.
뭔가를 묻는다면, 그건 분명 대답이 명확한 것.
놀라움의 근거들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느낄 줄만 안다면,
그들은 분명 매우 놀랄 텐데요.
'불안'이란 단어가 그들에겐 사뭇 외설적으로 느껴지기에
사전을 뒤적일 용기조차 갖지 못하는군요.
아무리 짙은 어둠이 깔려 있어도
세상은 밝게만 표현되는군요.
모두에게 헐값에 나누어졌지만,
계산대 앞에서 거스름돈을 요구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군요.
감정 가운데 남은 건 오로지 만족감뿐, 괄호 속 부연 설명은 전혀 없네요.
마침표가 늘 따라붙는 인생, 그리고 은하수의 부르릉, 엔진 소리.
인정하세요, 시인에게 있어
이보다 더 나쁜 일은 없다는 사실을.
하지만 서둘러 잠에서 깨어난다 해도
조금도 나아지는 건 없네요.
맹인들의 호의
/ 쉼보르스카
시인이 맹인들 앞에서 시를 낭독한다.
이렇게 힘든 일인 줄 미처 몰랐다.
목소리가 떨린다.
손도 떨린다.
여기서는 문장 하나하나가
어둠 속의 전시회에 출품된 그림처럼 느껴진다.
빛이나 색조의 도움 없이
홀로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그의 시에서 별빛은 위험한 모험이다.
먼동, 무지개, 구름, 네온사인, 달빛.
여태껏 수면 위에서 은빛으로 반짝이던 물고기와
높은 창공을 소리 없이 날던 매도 마찬가지.
계속해서 읽는다-그만 두기엔 너무 늦었기에-
초록빛 풀밭 위를 달려가는 노란 점퍼의 사내아이.
눈으로 개수를 헤아릴 수 있는 골짜기의 붉은 지붕들.
운동선수의 유니폼에서 꿈틀거리는 등번호들.
반쯤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벌거벗은 낯선 여인에 대해서.
침묵하고 싶다-이미 불가능한 일이지만-
교회 지붕 꼭대기에 올라앉은 모든 성인(聖人)들,
열차의 창가에서 벌어지는 작별의 몸짓,
현미경의 렌즈와 반지의 광채,
화면과 거울, 그리고 여러 얼굴들이 담겨진 사진첩에 대해서.
하지만 맹인들의 호의는 정말로 대단하다.
그들은 한없는 이해심과 포옹력을 가졌다.
귀 기울이고, 미소 짓고, 박수를 보낸다.
심지어 그들 중 누군가가 다가와서는
거꾸로 든 책을 불쑥 내밀며
자신에겐 보이지도 않는 저자의 서명을 요청한다.
우리가 없는 이튿날에
/ 쉼보르스카
아침에는 안개가 끼고 서늘하겠습니다.
서쪽에서 비구름이 몰려와 시야가 흐려지겠습니다.
도로는 미끄럽겠습니다.
한낮에는
북쪽에서 다가오는 고기압의 영향으로
곳에 따라 점차 날씨가 개는 곳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강한 돌풍이 불어와
천둥 번개가 칠 수도 있겠습니다.
한밤중에는
전국에 걸쳐 화창한 날씨를 보이겠습니다만,
남동부 지방에서는
곳에 따라 비가 내리는 경우도 있겠습니다.
기온은 급격히 떨어지고, 기압은 오르겠습니다.
내일은 대체로 날씨가 맑겠습니다만,
여전히 살아 계신 분들에겐
우산이 유용하겠으니
외출 시 꼭 챙기시기 바랍니다.
어릿광대
/ 쉼보르스카
먼저 우리의 사랑이 저물고 나면
백 년, 이백 년, 세월이 흐르고
그러면 우리는 또다시 함께하리라.
관중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한 몸에 받는
남녀 희극 배우가
극장에서 너와 나의 배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다.
중간 중간 간주를 곁들인 소규모 광대극,
가벼운 춤과 폭소가 어우러진
적당히 드라마틱한 내용,
이어지는 박수갈채.
이 장면에서 너는 어쩔 수 없이
조롱거리가 되리라.
우스꽝스러운 넥타이를 매고
질투심에 사로잡혀 쩔쩔매는 네꼴을 보면서
관객들은 폭소를 터뜨리겠지.
웃음거리가 된, 내 머리통,
그리고 내 심장과 왕관,
터져버린 어리석은 심장과
바닥에 떨어진 왕관.
우리는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리라.
공연장엔 환호성과 웃음이 가득,
일곱 개의 강과 일곱 개의 산을 사이에 둔 채
끊임없이 서로를 생각하고 그리워하리니.
마치 현실의 고통이나 불행 따윈
우리에게 거의 없었다는 듯
말로써 서로에게 끊임없이 상처를 안기리니.
마침내 둘이 정중하게 머리 숙여 절하고 나면
광대극은 막을 내리리라.
눈물이 맺히도록, 배꼽이 빠지도록 웃던 관객들은
잠자리에 들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리라.
그들은 또다시 멋들어진 삶을 살아가리라.
아무렇지도 않게 사랑에 길들여가면서.
사나운 호랑이조차 고분고분 꼬리를 내리고,
그들의 손 위에 놓인 음식을 얌전히 핥아먹으리니.
우리는 영원히 이러이러한 존재.
작은 종이 조롱조롱 매달려 있는
우스꽝스러운 광대 모자를 쓰고,
그 종소리의 원초적인 울림에
열심히 귀를 기울리는.
사소한 공지 사항
/ 쉼보르스카
어디에 가면 연민의 감정을 되찾을 수 있는지,
비록 그것이 심장의 헛된 상상이 빚어낸
인공적인 감상에 불과할지라도
일단 출처를 알고 계신 분은
누구든지 알려주세요! 제발 좀 알려주세요!
온 힘을 다해 노래 부르며
이성을 잃은 듯 덩실덩실 춤을 추십시오,
그렁그렁 눈물을 머금은 여윈 자작나무 아래서
왁자지껄, 힘겨게 놀아보는 거예요.
침묵하는 법을 가르쳐드립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언어로 다 가능합니다.
별이 총총 수놓인 하늘과
북경 사람의 각진 아래턱과
메꾸기의 뜀박질과
갓난아이의 손톱과
플랑크톤과
눈송이를
골똘히 응시할 수 있는 비법을
특별한 훈련을 통해 터득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을 되돌려드립니다.
자, 조심조심! 기회가 왔어요!
풀잎이 목덜미를 간지럼 태우던 일 년 전의 바로 그 잔디밭에
벌렁 드러누어 가만히 기다리세요.
바람이 춤을 춥니다.
(작년 이맘때 그대들의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어뜨렸던
바로 그 장본인이죠)
자, 아직도 꿈에 흠뻑 도취된
다양한 매물들이 여기 있습니다.
양로원애서 숨진 노인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애도해줄
사람을 구합니다
신청서를 작석하거나
증명서을 제출할 필요도 없습니다
단, 제출된 서류는 전부 파기될 예정이고,
수령 확인증은 발급되지 않을 것입니다.
내 남편이 남발한 헛된 약속에 나는 아무런 책임도 없음을 밝힙니다.
내 남편은 사기꾼,
사람들이 득실대는 이 세상의 온갖 빛깔과 떠들썩한 소음.
창가의 노래 한 곡조, 벽 너머 짖어대는 강아지 한 마리로
당신들을 참 잘도 속여 넘겼죠,
"어둠 속에서도, 적막 가운데서도
결코 당신들은 혼자가 아닙니다"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내게는 그 서약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것을
'낮'의 미망인인 '밤'으로부터.
루드비카 바드쥔스카* 부인을 애도하는 일
분 간의 묵념
/ 쉼보르스카
당신은 떠났습니다.
타오르는 불꽃과 연기가 자욱한 그곳으로!
"그곳에 네 명의 아이들이 있으니
가서 그 애들을 데려올께요!"
어떻게 그처럼 과감하게
모든 걸 떨쳐낼 수 있었을까요?
스스로에 대한 집착과
낮과 밤의 질서와
내년에 내릴 눈과
사과의 붉은 빛깔과
아무리 곱씹어도 늘 부족하기만 한
사랑에 대한 끈끈한 미련을.
작별 인사 따위는 하지도, 받지도 않고
모르는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홀로 달려갔으니,
다들 보세요, 무릎까지 넘실대는 불꽃,
미친 듯이 이글거리는 붉은 기운을 헤치고서
아이들을 어깨에 짊어지고 나왔답니다.
그녀는 차표를 끊고,
잠시 여행을 다녀오려 했었습니다.
누군가에게 편지도 쓰려 했고,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뒤 창문을 활짝 열고 맑은 공기를 마시거나,
숲 속의 오솔길도 타박타박 걸어보려 했었습니다.
불어오는 바람에 호수의 물결이 넘실대는 광경도
바라보고 싶어했습니다.
때로는 죽은 이를 위한 일 분간의 묵념이
늦은 밤까지 이어지기도 합니다.
나는 구름과 새들의 비상을
두 눈으로 목격한 산 증인입니다.
귓가에는 잔디가 무럭무럭 자라는 소리가 생생히 들립니다.
종이에 인쇄된 수백만 개의 글자들을 열심히 읽었고,
망원경으로 저 신비로운 별들을 관찰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태껏 누군가가 그렇게 간절히 구조를 요청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만약 어떤 이가 진정으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순간에
나뭇잎과 드레스와 시에 대한 구구한 미련을 떨쳐내지 못한다면 어떻게 할까요?
우리가 자기 자신에 대해 알고 있는 건,
타인들에 의해 평가되고 검증된, 꼭 그만큼뿐.
스스로도 사뭇 낯설기만 한 심장이 명하는 대로
나는 이 사실을 당신들에게 꼭 말하고 싶습니다.
*루드비카 바브쥔스카(Ludwika Wawrzynska. 1908~1955) 폴란드의 초등학교 교사. 1955년 2월 8일 바르샤바의 한 초등학교 목조 건물에서 불이 났는데, 어린이들이 그 안에 갇혀 있다는 얘기를 듣고,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가 네 명의 어린이들을 구해냈다. 심한 화상을 입은 바브쥔스카는 병원으로 후송했지만, 며칠 후 숨을 거두고 말았다.
명예 회복
/ 쉽보르스카
상상의 자유를 인정하는 인간의 가장 오랜 권리에 의거,
내 생애 처음으로 죽은자들을 불러본다.
그들의 얼굴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그들의 발걸음에 열심히 귀 기울인다.
누가 죽었는지, 죽은 게 확실한지, 명백히 알고 있음에도.
지금은 두 손에 자신의 두개골을 들고, 이렇게 말해야 할 시간.
"가여운 요릭* 네 천진함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네 맹목적인 믿음과 순진무구함,
어떻게든 되리라는 낙천적인 기대감,
검증된 사실과 그렇지 못한 진실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던 평정심은 어디에?"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들이 배신하리라는 사실을.
이름 따윈 아무런 값어치도 없음을.
무성한 잡풀과 목메어 울어대는 까마귀, 휘날리는 눈보라만이
익명의 무덤에서 떠나간 이들을 비웃고 조롱하게 되리라는 걸.
"요릭이여, 그들은 위선적인 증인에 불과했다."
죽은 자의 불멸은 우리가 그들을 기억하는
바로 그 순간까지만 유효한 법.
결국엔 순간적이고, 유한한 가치일 뿐이다.
누군가가 스스로의 불멸을 상실하지 않는 날은
단 하루도 없다.
오늘 나는 불멸에 대해 많은 것을 깨달았으니
그것은 내어줄 수도 빼앗아올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이름과 함께 스러져갈 운명이라면
감히 '배신자'란 호칭을 누구에게 붙일 수 있겠는가.
죽은 자 위에 군림하는 우리의 권리는
흔들리지 않는 엄정한 중립을 요구한다.
캄캄한 밤에 판결이 이루어지는 일이 없도록.
판사가 제복을 벗어던진 채 알몸이 되지 않도록.
대지가 꿈틀댄다-이제 그들은 대지의 일부가 되었다.
어떤 이들은 한 줌의 흙이 되어,
한 웅큼의 흙더미가 되어 조용히 무덤에서 일어선다.
은폐한 암흑을 헤집고 나와 옛 이름을 되찾고,
민족의 기억 속으로, 그 옛날 영광의 월계관과 환호 속으로 당당히 복귀한다.
단어를 마음껏 호령하던 내 절대 권력은 도대체 어디로 갔는가?
눈물의 골짜기로 추락해버린 낱말들 따위는
죽은 자의 부활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산화된 마그네슘만이 광채 되어 번득이는 빛바랜 사진처럼
공허하고 부질없는 묘사만 남았을 뿐.
나, 시시포스는 일찌감치 '시(詩)의 지옥'에 이름을 올렸다.
그들이 우리에게 조용히 다가오고 있다.
다이아몬드보다 더 날카롭게 날이 선 채로,
전리품을 늘어놓은 유리 진열장과
아늑한 보금자리에 난 창문들과
분홍빛 색안경과 유리로 만든 뇌와 심장에
무참하게 생채기를 내기 위해서.
*요릭 ; 섹스피어의 희곡 5막 1장에서 햄릿이 공동묘지에서 무덤을 파고 있는 두 명의 어릿광대와 대화를 나누다가, 임금의 어릿광대였던 재담꾼 요릭의 두개골을 보고 비탄에 잠겨 심복인 호레이쇼에게 말하는 대목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아틀란티스*
/ 쉼보르스카
그들은 존재했거나 존재하지 않았다.
섬에서 혹은 섬이 아닌 곳에서.
대양 혹은 대양이 아닌 것이
그들을 집어삼켰거나 혹은 집어삼키지 않았거나.
누군가를 사랑한 누군가가 있었던가?
누군가와 싸우던 누군가가 있었던가?
모든 일이 일어났거나 혹은 아무 일도 안 일어났거나.
거기에서 혹은 거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
일곱 개의 도시가 있었다는데
정말로 확실한가?
영원히 존재하길 바랐다는데
증거는 어디 있는가?
그들은 화약을 발명하지 않았다. 그래, 아니다.
그들은 화약을 발명했었다. 그래, 그렇다.
있었다고 추정되는 사람들, 불확실한 사람들.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
공기나 불이나 물이나 흙에서는
전혀 추출되지 않은 사람들.
물속에서도 빗방울 속에서도
포함되지 못한 사람들.
사뭇 심각한 척 훈계나 늘어놓는
가식적인 포즈 따윈 취할 수 없었던 사람들.
유성이 떨어졌다.
아니, 유성이 아니었다.
화산이 폭팔했다.
아니, 화산이 아니었다.
누군가 뭔가를 애타게 불렀다.
아니, 누구도 그 무엇도 부르지 않았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아틀란티스에서.
원숭이
/ 쉼보르스카
인류가 아직 천국에서 추방되기 전
마지막으로 에덴동산 구석구석을 훑어보던
원숭이의 눈빛이 너무도 강렬해서
천사들조차 그 눈빛을 보는 순간
예기치 못한 슬픔에 허덕였다네.
결국 원숭이는 다소곳이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이 지구상에 자신의 위대한 종족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네.
때론 생기발랄, 때론 진지하며, 동그랗게 말린 꼬리를 뽐내는 우리의 원숭이.
원숭이는 신생대 전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라치아Gracya'*를 쓸 때, 꼭 'y'자를 고집한다네.
오래전, 존엄한 은빛 광채를 지닌 풍성한 갈기로 인해
이집트에서 사람들로부터 대대적인 숭배를 받을 때
원숭이는 슬픔에 잠겨 근엄하게 침묵을 지키며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열심히 귀 기울렸다네: 흠, 영생을 원하는군---
원숭이는 붉으스름한 엉덩이를 흔들면서 멀리멀리 떠나갔다네.
권고도 금지도 아니라는 그런 의미로.
유럽에서 그들의 영혼은 거세되었네.
하지만 두 팔은 무심결에 남겨두었지.
어느 수도사가 거룩한 성인(聖人)의 팔에다
홀쭉하고 가느다란 원숭이의 손을 그려넣었네.
거룩한 성인은 마치 도토리를 움켜쥐려는 듯
양손을 내밀어 자비를 구걸하고 있네.
전함은 왕궁으로 원숭이를 데려왔다네.
잣난아기처럼 따뜻한 체온을 지닌 채, 늙은이처럼 온몸을 벌벌 떠는 원숭이는
황금으로 만든 쇠사슬에 매달려 비명을 지르고 있었네.
고관대작들이 입는 앵무새처럼 알록달록 맵시 좋은 연미복을 입고서,
카산드라*, 대체 무엇이 우습단 말이지?
중국에서 원숭이는 식용으로 사용된다네.
접시에 담겨진 원숭이는
구워진 표정 또는 삶겨진 표정을 짓고 있다네.
모조품 장신구에다 억지로 끼워 맞춘 진짜 다이아몬드처럼
어색하기 짝이 없는 자태로.
원숭이의 뇌는 미묘한 맛을 내겠지.
비록 그들의 뇌가 화약을 발명하지 못했기에
뭔가 부족한 듯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동화 속에서는 늘 외롭고 우유부단한 원숭이.
거울의 내부를 찡그린 얼굴로 채웠던 원숭이가
스스로를 조롱하며 우리에게 귀감이 된다네.
비록 서로 인사를 나누는 사이는 아니지만
우리에 관해서라면 모든 걸 속속들이 알고 있는
가난한 친척 여동생처럼.
*폴란드어로 '그라치아Gracja'는 '우아함, 고상함, 매력'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라틴어에서 유래하였다. 영어로는 'grace'이다. 중세 폴란드어에서는 이 단어를 쓸 때 'j' 대신 'y'를 썼다.
*카산드라Kassandra: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예언자. 트로이의 마지막 왕 프라이모스와 헤카베의 딸이다. 트로이 전쟁을 미리 예견하였으나 아무도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트로이에서의 한 순간
/ 쉼보르스카
어린 계집애들,
비쩍 마른 데다가
언젠가는 두 뺨의 주근깨가 말끔히 사라진다는 걸
도무지 믿지 못하는.
누구의 주목도 받지 못한 채,
세상의 눈꺼풀 위를 사뿐사뿐 돌아다니는.
깜짝 놀랄 만큼
엄마 혹은 아빠를 쏙 빼닮은 그 아이들이
식사를 하다가
책을 읽다가
혹은 거울 앞에서
트로이로 납치되어 간다.
어린 계집애들은 커다란 탈의실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아름다운 헬레나로 탈바꿈한다.
드레스 자락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온갖 탄성을 뒤로 한 채
왕실의 계단을 사뿐사뿐 오른다.
스스로가 공기처럼 가볍다고 느낀다.
안다, 아름다움이 곧 안식이며,
말투가 입술의 효용을 결정짓는다는 것을.
영감을 받은 무심함 속에서 몸짓들은
스스로의 외양을 조각한다는 것을.
사절단을 거부할 만한 가치가 충분한
그들의 아리따운 얼굴이
포위할 만한 가치가 충분한
새하얀 목덜미 위로 자랑스레 우뚝 솟아 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검은 머리의 남자들,
친구의 오빠들,
미술 선생님,
모두가 이 전쟁에서 전사하리라.
어린 계집애들은
웃음의 탑 꼭대기에서
끔찍한 대참사를 태연히 내려다본다.
어린 계집애들은
위선적이 감정에 도취되어
두 손을 꼭 움켜쥔다.
어린 계집애들은
한창 유행하는 탄식의 귀걸이를 주렁주렁 달고서,
작은 왕관을 쓴 채
불타는 도시의 폐허를 배경으로 무심히 서 있다.
창백한 얼굴에 눈물 한 방울 떨어뜨리지 않으며,
승리에 한껏 도취한 자태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실컷 즐기고 있다.
그들이 슬퍼하는 건 오직 한 가지.
언젠가는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
자, 이제 집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트로이의 어린 계집애들.
그림자
/ 쉼보르스카
내 그림자는 여왕의 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니는 어릿광대와 같다.
여왕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면
어릿광대는 벽을 향해 몸을 일으켜 세우다가
바보처럼 천장에 머리를 쿵 부딪친다.
이차원의 세상에서는 무엇으로도
그림자에게 고통을 가할 수 없다.
어쩌면 어릿광대에겐 내 왕궁이 불편할지도.
그래서 다른 역할을 원할 수도 있으리라.
여왕이 창밖으로 몸을 내밀면
어릿광대는 곧장 바닥을 향해 뛰어내린다.
모든 동작과 역할을 여왕과 분담했지만
공평하게 반반씩 나누진 못했다.
저 단순무지한 숙맥은 스스로의 의지로
광장된 몸짓과 허풍, 뻔뻔함을 택했다.
왕관과 지팡이, 왕실의 가운,
내게는 이 모든것들을 지탱할 힘이 없으니.
아, 앞으론 어깨를 움직일 때도 한결 가뿐하겠구나.
아, 앞으론 고개를 돌릴 때도 한결 홀가분하겠구나.
왕이여, 우리가 작별 인사를 나눌 때도,
왕이여, 우리가 기차역에 서 있을 때도.
왕이여, 언제나 이 시간이 되면
우리의 어릿광대는 철로 위에 길게 드러눕는다.
방랑의 엘레지
/ 쉼보르스카
모든 것이 내 것이지만, 내 소유는 아니다.
바라보고 있는 동안은 내 것이지만,
기억으로 소유할 수 없다.
가까스로 기억을 떠올린들 불확실한 뿐.
머리를 잘못 맞춘 여신의 조각상처럼.
사모코브*에 내리는 비는
멈출 줄 모른다.
파리의 정경은
루브르에서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지점까지
가물가물 희미하게 사라져 간다.
생마르텡*의 가로수 길.
그곳의 계단은 갈수록 페이드 아웃*
내 기억 속에서 '다리의 도시' 상트테르부르크는
고작 다리 한 개와 반쯤 남은 또 다른 다리의 영상.
가여운 움살라*에는
무너진 대성당의 잔해.
소피아*에는 얼굴 없이 몸통만 남은
가여운 무희가 있다.
눈동자 없는 그의 얼굴 따로,
동공 없는 그의 눈동자도 따로,
고양이 동공도 따로.
새롭게 재건된 협곡 위에서
카프카스*의 독수리가 날고 있다.
태양의 황금빛은 전혀 사실적이지 않고,
바위는 엉터리 모조품에 불과하다.
모든 것이 내 것이지만, 내 소유는 아니다.
바라보고 있는 동안은 내 것이지만,
기억으로 소유할 수는 없다.
헤아릴 수도, 저장할 수도 없는 풍경들
미세한 섬유질이나 모래알.
물방울의 개별적인 세밀함은 더한 법.
나는 나뭇잎의 뚜렷한 윤곽 하나
뇌리에 새기지 못한다.
한 번의 눈짓에 담긴
작별을 내포한 환영의 인사
넘치기도 하고, 모자라기도 한
한 번의 고갯짓.
*사모코브;불가리아에 있는 도시
*생마르텡;파리 시내에 있는 운하
*페이드 아웃(fade out);영화나 T.V.에서 화면이 차차 어두워져서 캄캄해지는 것. 방송이나 녹음에서는 소리가 점점 사라져가는 것을 뜻함.
*움살라;스페인 스톡홀름 북쪽에 있는 도시
*소피아;불가리아 수도
*카프카스;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있는 지역. 영어로는 코카서스caucasus라고 불린다.
무제
/ 쉼보르스카
그들은 철저하게 홀로 남겨졌다.
한마디 말도 없이
철저한 사랑의 부제 속에서 기대할 수 있는 건 오로지 기적뿐.
드높은 구름 위에서 바야흐로 천둥이 울리고, 바위가 굴러 떨어지는 놀라운 기적뿐.
이백만 종의 그리스 신화가 출판되었지만,
그와 그녀를 위한 구원은 어디에도 없다.
누군가가 제발 문가에라도 서 있어줬으면,
무엇이라도 좋으니 그저 잠시라도 나타나줬으면,
기쁜 소식도 좋고, 나쁜 소식도 좋으니,
어디에서 왔건, 어디로 가건 아무 상관 없으니,
미소를 남겨주건, 공포를 불러일으키건 개의치 않을 테니.
하지만 예상을 뒤엎는 일 따위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스스로도 '있을 법하지 않은 일'에 대한 기대는 일찌감치 버렸다.
부르주아의 연극에서처럼 이별은 아마도 끝까지 지속되겠지.
멀쩡한 하늘에 구멍이 뚫리고 한 줄기 서광이 비치는 기적은 절대로 없으리라.
만질 수 없는 벽을 뒤로 한 채
서로를 불쌍히 여기면서
지극히 상식적인 영상 외에는 아무 것도 비추지 않는
거울 앞에 하염없이 서 있다.
두 사람의 모습 말고는 아무 것도 투영되지 않는다.
질료(質料)*는 항상 경계를 풀지 않는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넓고도, 깊고도, 높기에
땅 위에서, 하늘에서, 사방 구석에서
타고난 운명을 사수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갑자기 방 안으로 뛰어든 노루 한 마리가
단숨에 우니베르숨*을 무너뜨릴 수도 있기에.
*질료; 형식 또는 형태를 갖춤으로써 비로소 일정한 사물을 이루는 소재(素材). 예를 들어 건축물의 경우 구조는 형태, 제목은 질료에 해당한다.
*우니베르숨Universum; 라틴어로 '온세상'이란 의미
금혼식
/ 쉼보르스카
언젠가 그들은 완전히 별개의 존재였고,
물과 불처럼 확연하게 구별됐었다.
서로의 다른 점을 맹렬히 공격하고픈 열망을 간직한 채
뺏기고 빼앗기를 반복하면서.
아주 오랫동안
그들은 서로를 꼭 끌어안고서,
내 것이 네 것이 되고, 네것이 내 것이 되었다.
한때 찬란히 작렬하던 번개가 자취를 감추고 난 후
서로의 품 안에서 투명한 공기가 될 때까지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꼭 끌어안고 있었다.
그러다 마침내 해답이 주어졌다.
어느 고요한 밤, 어둠 속에서, 침묵 속에서,
서로의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지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성별의 구분 따위는 점차 희미해지고, 비밀은 전부 불에 타버렸다.
흰 바탕 위에서 모든 빛깔이 자유롭게 섞이듯
공통된 성향 안에서 상반되는 기질들이 어우러졌다.
둘 중에 누가 두 배가 되고, 누가 사라져버렸는가?
두 사람의 몫의 미소로 웃음 짓는 것은 누구인가?
누구의 목소리가 두 개의 음성으로 갈라졌는가?
둘 중에 누가 동의했기에 고개를 끄덕이는가?
숟가락을 입가에 가져가는 건 누구의 의지인가?
누가 누구의 살가죽을 벗겼는가?
누가 살아있고, 누가 죽었는가?
서로의 손금이 복잡하게 얽혀 있으니, 누구의 손인가?
오랜 심사숙고 끝에 마침내 쌍둥이가 태어난다.
서로를 향한 친밀감, 그것은 가장 위대한 어머니.
둘 중 누구도 자신의 쌍둥이 아이들을 구별하지 못한다.
누구 누구인지 가까스로 기억해낸다
금혼식 날에, 이 기쁜 날에.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이
창가에 앉은 비둘기를 바라보고 있다.
야스오*의 강제 기아 수용소 / 쉼보르스카
어서 써. 써보란 말이야. 평범한 용지 위에 보통 잉크로:
그들에겐 식량이 지급되지 않았다고. 모두 굶어 죽었다고.
모두라고? 도대체 몇 명이나 되는데?
이곳은 거대한 초원이잖아. 한 사람당
얼마나 많은 풀잎과 잔디를 먹어 치웠을까?
어디 이렇게 써봐: 난 아무 것도 모른다고.
역사는 유골을 어떻게든 제로(0)의 상태로 결산하려 애쓰고 있다.
천 명에다 한 명이 더 죽어도, 여전히 천 명이라고 말한다.
그 한 명은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듯
어딘가로 감쪽같이 사라져버린다:
상상으로 임신한 태아, 텅 빈 요람.
한번도 펼쳐진 적 없는 철자법 교본.
저 혼자 웃다가, 소리 지르다가, 팽창하는 공기.
공허의 늪을 향해 내달리는 계단.
가지런히 정렬된,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미지의 공간.
우리는 육체가 되어버린 초원 위에 서 있다.
초원은 마치 매수당한 증인처럼 침묵을 고수한다.
태양 아래서 눈부시게 선명한 푸른 빛깔로.
숲 저편에 질겅질겅 씹을 수 있는 나무가 자라고.
그 나무에서 꿀꺽꿀꺽 들이킬 수 있는 수액이 뚝뚝 떨어진다.
눈이 멀지만 않는다면
일상의 풍경들은 매일매일 어김없이 배급되리라.
저 산 너머 영양 만점 도톰한 날개를 가진 새의 그림자가 비친다.
새들은 텅 빈 주둥이를 크게 벌린 채 쩝쩝 입맛을 다시고 있다.
낫처럼 생긴 초승달이 밤하늘에 슬며시 나타나
꿈속에 등장한 호밀빵을 쓱싹쓱싹 베어낸다.
이콘*에 등장하는 성인(聖人)의 검은 두 팔은
텅 빈 잔을 손에 든 채 허공을 휘젓고 있다.
가시 돋친 철조망의 날카로운 꼬챙이 위에는
인간의 육신이 꼬치 요리처럼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그들은 대지와 함게 노래를 부른다.
전쟁이 어떻게 그들의 심장을 꿰뚫었는지에 관한
아름다운 노래를
자. 어디 한번 써보시지. 이곳이 얼마나 고요하고 평화로운지.
그래, 알았어.
*야스오jasto: 폴란드 남부 카르파티 산맥 근처에 있는 도시로 이곳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유대인 거주 지역인 게토Getto가 있었으나 전쟁 막바지에 독일군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다.
*이콘: 동방 정교에서 예수 그리스도나 성인들을 그린 초상화. 폴란드는 카톨릭 국가이지만 러시아의 영향을 받아 이콘을 허용했으며, 특히 제일의 카톨릭 성지인 쳉스토호바의 '검은 성모 마리아상'이 유명하다.
우화
/ 쉼보르스카
옛날 아주 먼 옛날에 어부들이 바다 깊은 곳에서 유리병을 낚아 올렸어요.
그병에는 종이 쪽지가 들어 있었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써 있었답니다:
"사람들이여, 나좀 구해주세요! 나 여기 있어요. 대양이 나를 파도에 싣고서
무인도에 갖다 버렸답니다. 모래사장에 나와 도움을 기다리고 있어요, 서둘러
주세요. 나 여기 있을께요."
"이 쪽지에는 날짜가 누락되어 있군. 틀림없이 이미 늦었을 거야. 유리병이 얼
마나 오랫동안 바다를 떠다녔는지도 모르는 일이고."
첫번째 어부가 말했습니다.
"게다가 장소도 적혀 있질 않군. 대양이 한둘도 아니고, 어디를 말하는 지 통
알 수 없잖아."
두번째 어부가 말했습니다.
"늦은 것도 아니고 멀리 있는 것도 아니야. '여기'라는 섬은 언제, 어디에나 존재하는 법이니까."
세번째 어부가 말했습니다.
불현듯 어색한 분위기와 함께 침묵이 흘렀습니다. 보편적인 진실이란 원래 다
그런 법. 생각하기 나름이니까요.
발라드
/ 쉼보르스카
이 노래는 살해당했다가, 갑자기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
어떤 여인에 관한 발라드.
건전한 의도로 씌어졌고,
한 자 한 자 종이 위에 정성껏 기록되었다.
커튼을 활짝 열어젖힌 창가에서,
혹은 희미한 등불 아래서, 그 일은 벌어졌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대문이 굳게 닫히고,
살인자가 계단을 막 뛰어 내려가는 순간,
그녀는 뜬금없이 적막에 놀라 깨어난 생명체처럼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며,
마치 반지에서 빠져나온 보석처럼
견고하고, 단단한 시선으로 천천히 구석구석을 살핀다.
허공을 떠도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마룻바닥 위를
삐걱대는 판자 위를, 침착하게 한 걸음씩 내딛는다.
범행 후에 남겨진 모든 흔적들을
아궁이에 넣고 활활 태운다.
사진 한 장 남기지 않고 철저하게.
서랍 밑바닥에 들어 있던 구두끈까지 모조리.
그녀는 목을 졸리지 않았다.
그녀는 총에 맞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죽음이 그녀를 잠시 엄습했을 뿐.
그녀는 살아 있음을 알리는 신호를 보낼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사소한 일 때문에 눈물을 흘릴 수도 있다.
심지어는 쥐를 보고 겁에 질려
비명을 지를 수도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모방하고 가장할 수 있는,
우습고도 하찮은 일들은
이렇게나 많다.
다들 일어나기에 그녀도 일어난 것이다.
다를 걸어다니기에 그녀도 걷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매일매일 조금씩 자라는 머리카락을 빗질하면서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포도주를 마시며 / 쉼보르스카
그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러곤 내게 '아름다움'을 부여한다.
나는 그 아름다움이 마치 내 것인 양 당연히 받아들인다.
별을 꿀꺽 삼켰으니 행복하기 그지없다.
그의 눈에 비친 누군가의 잔영에서
내 자신의 그림자를 발견하도록
스스로에게 허락한다.
나는 춤을 춘다, 춤을 춘다.
느닷없는 날개짓에 온몸을 전율하면서.
탁자는 탁자, 포도주는 포도주다.
술잔은---- 술잔은 뭐더라?
술잔은 탁자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나는--- 몽상적인 환영이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추상적이고,
뼛속까지 비현실적이다.
하고 싶은 말을 그에에 전부 털어놓는다.
수과(瘦果)*의 별자리를 타고나서
사랑에 목숨을 거는 개미들에 관해서.
맹세하노니, 붉은 포도주가 흩뿌려진
새하얀 장미가 노래를 부른다.
웃음을 터뜨리며 조심스레 머리를 숙인다.
위대한 발명품을 재차 확인하고 점검하듯이.
나는 춤을 춘다, 춤을 춘다.
내 외양을 벗어내고, 내 존재를 풀어준
피부 거죽이 경악할 정도로 아름답게.
갈비뼈로 빚어낸 이브, 거품으로 만들어진 비너스,
주피터의 머리에서 나온 미네르바가
나보다 오히려 더 사실적이다.
그가 나를 바라보지 않는 틈을 타
나는 벽에 비친 내 그림자를 찾아 헤맨다.
순간 내 눈에 들어오는 건,
그림을 떼어낸 자리에 뾰족하게 튀어나온 쇠못 한 개.
*수과(瘦果) ; 민들레나 메밀 들 건조과 식물의 열매로, 겉으로는 씨처럼 보이지만 속에 또 하나의씨를 갖고 있다.
루벤스의 여인들
/ 쉼보르스카
힘이 아주 센 여자 거인들, 암컷 무리.
덜컹대며 굴러가는 커다란 술통처럼 온전히 벌거벗은 여인들.
그 여인들이 무참히 짓밟힌 침대 위에 보금자리를 틀고,
먼동이 틀 때까지 입을 벌린 채 잠들어 있다.
동공은 근육 저 깊은 곳으로 자취를 감췄다.
누액(漏腋)이 샘솟는 분비샘을 통해
누룩이 서서히 스며들어간다. 온몸의 혈관 속으로.
바로크의 딸들, 케이크 반죽이 반죽 통 안에서 한없이 부풀어 오른다.
욕조에선 수증기가 솟아오르고, 와인은 붉게 빛난다.
뭉게구름이 만들어낸 살진 새끼 돼지가 하늘 위를 질주한다.
관능의 신호를 알리는 트럼펫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진다.
오, 코끼리처럼 풍만하고 거대한 여인들이여.
알몸이 되었을 때 오히려 두 배로 팽창한 여인들이여.
격렬한 체위에서 오히려 세 배로 부픈 여인들이여.
오, 기름진 사랑의 양식이여!
그 여인들에겐 말라비틀어진 여동생들이 있었다.
날이 채 밝기도 전에 그 애들은 잠에서 깨어났다.
아무도 보지 못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화폭에서
비쩍 마른 소녀들이 거위처럼 가지런히 열을 지어 어디론가 떠나가는 것을.
전형적인 추방자의 모습.
밖으로 튀어나온 갈비뼈, 왜소한 참새를 쏙 빼닮은 손과 발.
소녀들은 견갑골을 움직여 낼갯짓을 해보려 애쓴다.
13세기라면 그 애들에게 황금빛 후광을 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나 슬프도다, 17세기는 말라깽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이곳에서 태양은 둥글게 원을 그리며 한없이 비대해져간다.
하늘을 온통 점령해버린 건
오동통한 천사들과 포동포동 살이 오른 신들.
턱수염을 기른 포이보스,* 그가 땀에 젖은 준마들 타고,
뜨겁게 타오르는 침실을 향해 맹렬히 달려가고 있다.
*포이보스; 그리스 신화에서 태양의 신 아폴론을 부르는 이름.
헤라클레이토스*의 강에서는
/ 쉼보르스카
헤라클레이토스의 강에서는
물고기가 물고기를 낚는다.
물고기가 날카로운 물고기로 물고기의 내장을 도려낸다.
물고기가 물고기를 만들어내고, 물고기가 물고기 안에서 산다.
물고기가 무리 지어 다니는 물고기 떼를 피해 도망친다.
헤라클레이토스의 강에서는
물고기가 물고기를 사랑한다.
너의 눈동자는 이른바 천상의 물고기처럼 황홀하게 빛난다.
나는 너와 함께 공동의 해협을 유유히 헤엄치고 싶다.
물고기 떼 가운데 가장아름다운 한 쌍의 물고기가 되어!
헤라클레이토스의 강에서는
물고기가 물고기를 상상하고, 물고기가 물고기를 창조한다.
물고기가 물고기에게 좀더 천천히 헤엄을 치자고 부탁한다.
헤라클레이토스의 강에서는
나는 최소한 나무 물고기, 바위 물고기와는 구별되는
개별적인 물고기, 독립적인 물고기이다.
매 순간 나는 은빛 비늘을 가진 아주 작은 물고기들에 대해 기록한다.
어쩌면 그것은 물고기가 아니라 어둠일 수도 있다.
눈을 깜빡하는 바로 그 찰나에 번쩍하고, 빛을 발하는 순간의 암흑.
*헤라클레이토스 Heracloeitos ;기원전 6세기경에 활동한 것으로 알려진 그리스의 자연철학자. "사람은 같은 강물 속에 두 번 몸을 담글 수는 없다. 두번째 강물은 이미 전혀 다른 물이기 때문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쉼보르스카는 헤라클레이토스가 남긴 명언에서 착안하여 이 시를 썼다.
쓰는 즐거움
/ 쉼보르스카
이미 종이 위에 씌어진 숲을 가로질러
이미 종이 위에 씌어진 노루는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가?
자신의 입술을 고스란히 투영하는 투사지 위에 씌어진 옹달샘,
그곳에서 이미 씌어진 물을 마시러?
왜 노루는 갑자기 머리를 쳐들었을까? 무슨 소리라도 들렸나?
현실에서 빌려온 네 다리를 딛고서
내 손끝 아래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고요"-이 단어가 종이 위에서 버스럭대면서
"숲"이라는 낱말에서 뻗어나온 나뭇가지를
이리저리 흔들어놓는다.
하얀 종이 위에서 도약을 위해 웅크리고 있는 글자들,
혹시라도 잘못 연결될 수도 있고,
나중에는 구제 불능이 될 수도 있는
겹겹으로 둘러싸인 문장들.
잉크 한 방울, 한 방울 속에는
꽤 많은 여분의 사냥꾼들이 눈을 가늘게 뜬 채 숨어 있다.
그들은 언제라도 가파른 만년필을 따라 종이 위로 뛰어 내려가
사슴을 포위하고, 방아쇠를 당길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
사냥꾼들은 이것이 진짜 인생이 아니라는 걸 잊은 듯하다.
여기에선 흑백이 분명한, 전혀 다른 법체계가 지배하고 있다.
눈 깜빡할 순간이 내가 원하는 만큼 길게 지속될 수도 있고,
총알이 유영하는 찰나적 순간이
미소한 영겁으로 쪼개질 수도 있다.
만약 내가 명령만 내리면 이곳에선 영원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리라.
내 허락 없이는 나뭇잎 하나도 함부로 떨어지지 않을 테고,
말발굽 아래 풀잎이 짓이겨지는 일도 없으리라.
그렇다, 이곳은 바로 그런 세상.
내 자유 의지가 운명을 지배하는 곳.
신호의 연결 고리를 동여매어 새로운 시간을 만들어내고,
내 명령에 따라 존재가 무한히 지속되기도 하는 곳.
쓰는 즐거움.
지속의 가능성.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소멸해가는 손의 또 다른 보복.
풍경
/ 쉼보르스카
이것은 나이 지긋한 거장이 만들어낸 풍경.
나무는 유화 물감 아래 굳건히 뿌리를 내렸고.
오솔길은 목적지까지 정확히 뻗어 있다.
잎사귀가 위풍당당 서명을 대신한다.
지금은 틀림없는 오후 다섯 시.
오월은 부드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억류되었다.
그러므로 나 또한 망설이며,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섰다.
내 그리운 이여,
나는 물푸레나무 아래 서 있는 순박한 시골 처녀이기 때문이다.
내가 널 두고 얼마나 멀리까지 떠나왔는지 봐라.
내가 걸친 새하얀 모자와 노란색 치마를 들여다보고,
그림 밖으로 뛰쳐나기지 못하게
얼마나 단단히 바구니를 움켜잡고 있는지도 살펴봐라.
낯선 운명을 어떻게 꿋꿋이 견디어 냈는지.
삶의 비밀들로부터 어떻게 벗어났는지 샅샅이 감상하라.
설사 네가 부른다 해도 내 귀에는 들리지 않으리니.
만약 들었다 해도 몸을 돌려 되돌아가진 않으리니.
정녕 있을 수도 없고, 해서는 안 될 그 행위를 저질렀다 해도
이제 네 얼굴은 내게 한없이 낯설게만 여겨지리라.
나는 10킬로미터의 반경 내에서 세상을 알고 있다.
나는 모든 종류의 고통을 다스리는 데 필요한 약초와 주문을 알고 있다.
신神은 여전히 내 정수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나는 변함없이 기도를 한다. 갑작스러운 죽음은 맞지 않게 해달라고.
전쟁은 형벌이고, 평화는 포상이다.
수치스러운 꿈은 사탄에게서 비롯되었다.
자두 속에 씨가 박혀 있듯 내 안에는 당연히 영혼이 깃들어 있다.
나는 심장의 유희를 알지 못한다.
내 아이의 아버지, 그 사람의 나체를 알지 못한다.
구약 성서의 위대한 시편을 읽으며,
그 뒤에 잉크 자국으로 얼룩진 무수한 습작 노트가 존재하지 않을까
그런 의심따윈 단 한번도 품어본 적 없다.
내가 하고픈 말들은 늘 문장 속에 가지런히 보관되어 있다.
내 사전엔 절망이란 없다. 왜냐하면 그건 내 몫이 아니니까.
내게 맡겨진 임무는 오로지 '스스로를 보존하고 유지하는 일뿐'
내가 걸어가는 이 길을 네가 가로막는다 해도,
네 두 눈을 네가 물끄러미 쳐다본다 해도,
절망의 가장자리를 따라 아슬아슬 너를 지나치리라.
우리 집은 오른 쪽에 있고, 나는 근처 지리를 구석구석 꿰뚫고 있다.
집으로 향하는 층층다리와 안으로 통하는 입구가 어디에 있는지도 안다.
그 안에는 미처 화폭에 담기지 못한 또 다른 삶이 펼쳐지고 있다.
안락의자 위로 뛰어 오르는 고양이.
주석으로 만든 주전자에 빛을 드리우는 태양.
테이블 너머, 뼈만 앙상히 남은 한 남자가 앉아
시계를 고치는 중.
사진첩
/ 심보르스카
가족 중에서 사랑 때문에 죽은 이는 아무도 없다.
한때 일어난 일은 그저 그뿐, 신화로 남겨질 만한 건 아무것도 없다.
로미오는 결핵으로 사망했고, 줄리엣은 디프테리아로 세상을 떠났다.
어떤 사람들은 늙어빠진 노년이 될 때까지 오래오래 살아남았다.
눈물로 얼굴진 편지에 답장이 없다는 이유로
이승을 등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마지막에는 코에 안경을 걸치고, 장미 꽃다발을 든
평범한 이웃 남자가 등장하기 마련이다.
정부의 남편이 갑자기 돌아와
고풍스러운 옷장 안에서 질식해 죽는 일도 없다!
구두끈과 *만틸라, 스커트의 주름 장식이
사진에 나오는 데 방해가 되는 일도 없다.
아무도 영혼 속에 *보스의 지옥을 품고 있지 않다!
아무도 권총을 들고 정원으로 나가진 않는다!
(어떤 이들은 두개골에 총알이 박혀 죽기도 했지만, 전혀 다른 이유에서였다.
그들은 야전 병원의 들것 위에서 사망했다.)
심지어 무도회가 끝난 뒤 피로로 눈자위가 거무스레해진
저 황홀한 올림머리의 여인조차도
네가 아닌 댄스 파트너를 쫓아서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아무런 미련 없이.
이 *은판 사진이 탄생하기 전, 아주 오래 살았던 그 누군가라면 또 모를까.
내가 아는 한 이 사진첩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사랑 때문에 죽은 이는 아무도 없다.
슬픔이 웃음이 되어 터져 나올 때까지 하루하루 무심하게 세월은 흐르고,
그렇게 위안을 얻은 그들은 결국 감기에 걸려 죽었다.
*만틸라; 스페인이나 멕시코 등지에서 머리와 어깨를 덮는 여성용 대형 스카프.
*보스; 히로나뮈스 보스(Hieronymus Bosch 1450~1516) 네델란드 출신의 대표적인 플랑드르 화가. 20세기 초현실주의의 선구로 평가받는 보스의 작품들은 '광기와 부조리로 가득 찬 지옥도'라 일컬어지고 있다. 다양하게 변모되고 합성된 기괴한 동물들과 식물들이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으며, 그의 작품의 근간을 이루는 어두운 해학은 당신의 종교적 배경과 관련된 상징 체계와 연관을 맺고 있다. 대표작으로 등이 있다.
*은판 사진; 은판銀板에 찍는 초창기 사진술을 말함.
웃음
/ 쉼보르스카
언젠가 바로 나였던 그 소녀.
나는 물론 그 애를 안다.
소녀의 짧은 생애를 담고 있는
몇 장의 사진을 나는 갖고 있다.
몇 줄의 시구를 쓸 수 있을 만큼
유쾌한 연민도 느끼고 있다.
몇몇 사건들 또한 생생히 기억한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나와 함께 있는 이 남자가
웃음을 터뜨리며 나를 꼭 끌어안을 수 있게,
오로지 한 가지 추억만 회상하련다.
작고 못생긴 소녀의
어린 시절 풋사랑을.
이야기를 들려주마.
소녀가 어떻게 그 대학생을 사랑했는지.
소녀는 그가 자신을
쳐다봐주기를 원했다.
이야기를 들려주마.
그를 만나기 위해 어떻게 달려갔는지.
멀쩡한 머리에 붕대를 감고
오, 무슨 일이야.
한마디라도 물어봐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세상 물정 모르는 조그만 계집아이가
어떻게 알 수 있었으랴.
만일 팔자가 좋아
오래오래 살 수만 있다면
결국엔 절망조차 득이 된다는 사실을.
소녀에게 과자라도 사 먹으라며
돈 몇 푼 쥐어줄 수 있었을 텐데.
소녀에게 영화라도 보러 가라며
돈 몇 푼 쥐어줄 수 있었을 텐데.
얼른 물러가지 못하겠니, 내겐 시간이 없다구.
이미 불은 모두 꺼져버렷다는 걸
너도 알잖아.
아마 넌 이해하겠지,
벌써 오래전에 문은 닫혀버렸다는걸.
문고리를 잡아당기지 마.
웃음을 터뜨리던 그 남자.
나를 끌어안던 그 남자.
그는 먼 옛날, 너의 그 대학생이 아냐.
네가 왔던 그곳으로
되돌아가는 게 제일 좋을걸.
난 네게 아무것도 빚진 게 없다구.
그저 평범한 여자일 뿐인걸.
언제쯤 타인의 비밀을 누설하면 되는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그렇게 우리를 쳐다보지 말라구.
마치 죽은 자의 눈처럼
비정상적으로 크게 부릅뜬
그런 눈으로.
기차역
/ 쉼보르스카
내가 N시(市)에 가지 않은 그 일은
정확히 시간 맞춰 일어났다.
발송되지 않은 편지가
내게 미리 예고를 해주었고,
예정된 시각에 너는 가까스로
역에 오지 않을 수 있었다.
기차가 3번 플래홈으로 들어왔고,
많은 사람들이 내렸다.
나의 부재(不在)는 인파 속에 섞여
출구를 향해 걸어간다.
황망함 속에서
별빛 여인들이 서둘러
나를 대신했다.
그중 한 여인을 향해
내가 모르는 어떤 사람이 달려갔지만
그녀는 그를 알아보았다
그것도 당장에.
내 것이 아닌
트렁크가 분실되었을 때,
두 사람은 우리의 입맞춤이 아닌
낯선 입맞춤을 서로 나누었다.
N시의 기차역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라'는 시험에
훌륭하게 통과했다.
전체는 있어야 할 그 자리를 고수하고 있고,
세부적인 사항들은 지정된 철로를 따라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심지어는 미처 약속되지 못한 만남조차
정확한 타이밍에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철저하게 우리의 현존이 미치는
범위 밖에서.
있음 직한 개연성을 상실한
파라다이스에서.
어딘가 다른 곳에서
어딘가 다른 곳에서
사소하기 짝이 없는 이 낱말 조각들이
실은 얼마나 커다란 울림을 가지고 있는지.
살아 있는 자
/ 쉼보르스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살아 있는 자를 포옹하는 것, 감싸 안는 것.
그를 붙잡을 수 있는 건
오직 심장의 박동뿐.
우리의 모계 혈통을 이어받은 거미들이
그를 보자마자 혐오감에 줄행랑을 쳤기에
게걸스러운 거미들에게 통째로 잡아먹히는 일은 없으리라.
그의 머리가 집행 유예를 받은 아득한 옛날부터,
우리의 어깨에 기대어 쉴 수 있는
특권을 허락했다.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천 가지도 넘는 이유 때문에
우리는 그의 숨소리에
열심히 귀 기울리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중세의 기적극*은 야유와 조롱 속에 막을 내렸다.
범죄는 철저하게 진압되었다.
여성들의 전유물인 공포에 대한 상속권은 박탈당했다.
오로지 손톱들만 살아남아
반짝이다가, 점점 닳아 소멸될 뿐.
그들은 알고 있을까.
이 손톱이 막대한 재산 가운데
마지막으로 남겨진 은화 한 닢이란 사실을.
우리를 보면 도망쳐야 한다는 사실조차
그는 까맣게 잊고 말았다.
목덜미 위에 돋아난
천 개의 눈을 부릅뜬 공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는 미처 알지 못한다.
그 모습은
가까스로 이 세상을 향해 두발을 내디딘 듯
힘겹게만 보인다.
우리 모두가 그랬듯.
우리의 모습 그대로.
뺨 위에는 속눈썹이
애원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쇄골 사이에는
회한에 젖은 땀방울이 시냇물처럼 고여 있다.
지금 우리가 쳐다보고 있는 바로 그 모습 그대로
그는 조용히 잠들어 있다.
시효가 만료된 죽음과의 포옹 속에서
그는 믿음직스럽기 그지없다.
*기적극; 예수나 성도에 의한 기적을 소재로 한 중세의 종교극.
태어난 자
/ 심보르스카
그러니까 이 여인이 그의 어머니다.
작은 키의 여인.
회색빛 눈동자를 지닌 생명의 근원,
몇 년 전 그를 태우고
물가로 떠내려온 조각배.
그는 그 조각배에서 탈출했다.
세상으로,
영원이 아닌 이곳으로.
나와 함께 불꽃을 뛰어넘은
그 남자를 출산한 여인.
그녀는 완제품이 아닌
미완성의 그를 선택한
유일한 여인이다.
내겐 이미 친숙한 그의 살갗을 가져다가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그의 뼈대에다 동여맨 장본인이다.
철저하게 혼자의 힘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 짙은 회색빛 눈동자를
그녀는 스스로 고안하고, 만들어냈다.
그 여자, 그 남자의 알파.
그는 왜 내게 그녀를 보여주었을까.
그 남자은 그렇게 태어났다.
다른 모든 이들처럼
이 세상에 첫발을 내디뎠다.
언젠가는 죽게 될 나와 마찬가지로.
진짜 여인의 아들.
육신의 깊은곳에서 막 허물을 벗고 나온 신참내기.
오메가를 향한 방랑자.
매 순간
사방에서 자신의 부재(不在)를
위협당하는 존재.
그의 머리
그것은 시간에 순응하는
벽을 향해 사정없이 부딪쳤다.
그의 행동
그것은 보편적인 평판에서 벗어나려는
일종의 도피였다.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이미 그 길의 절반을 지나왔다는 걸.
그러나 그는 내게 그 사실을 전혀 말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이분이 내 어머니야"
오직 이 한마디만 했을 뿐.
인구조사
/ 쉼보르스카
언젠가 트로이 대제국이 우뚝 서 있던 그 언덕에서
일곱 개의 도시가 발굴되었다.
한 편의 서사시를 노래하려면 도시 하나면 충분치 않을까.
나머지 여섯 개는 필요치 않다.
그것들이 과연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육보격의 시는 완전히 붕괴되어버렸다.
갈라진 틈바구니에서 허구가 아닌 논픽션의 벽돌이 삐죽 튀어나온다.
무성 영화처럼 고요한 침묵 속에서 와르르 벽이 무너져내린다.
대들보가 붕괴되고, 솨시슬이 끊어진다.
마지막 한 방울의 수분까지 남김 없이 말라버린 녹슨 주전자.
다산(多産)을 기원하는 부적, 과수원의 씨앗들.
우주비행사가 달에서 가져온 화석처럼
직접 손으로 만져야만 확인 가능한 두개골들.
태고의 흔적들이 퇴적물처럼 우리 옆에 빼곡히 쌓여간다.
공급 과잉으로 넘쳐날 지경.
무지막지한 지역 주민들이 원주민의 역사 속으로 난폭하게 쳐들어왔다.
고기 자르는 기다란 칼을 양손에 든 유목민들.
헥토르의 용맹에 결코 뒤지지 않는 무명용사들.
수천 명의 개별적인 얼굴들.
매 순간 처음이고 마지막인 그 얼굴들.
제각기 범상치 않은 한 쌍의 눈을 가진 얼굴들.
이런 사실을 모른 채 살아가는 동안은
한결 편했다.
공간도 훨씬 넓었고,
추모의 감정도 훨씬 풍부했다.
과연 그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들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
인구 밀도가 유달리 낮았던 어떤 시대를 골라 거기에 전부 파묻어줄까?
아니면 그들의 금세공 기술을 인정하고 한껏 칭찬해줄까?
최후의 심판은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우리, 삼백만 명의 판사들 앞에는
각자 해결해야 할 사적인 문제들이 산재해 있기에.
말주변이라곤 전혀 없는 군중들과
무수한 가차역들, 야외 경기장의 특별관람석, 다양한 행진과 시위들.
이국땅의 수많은 거리들, 계단과 벽들.
무수한 기차역들, 야회경기장의 특별관람석, 다양한 행진과 시위들.
이국땅의 수많은 거리들, 계단과 벽들.
우리들은 백화점에서 새로운 물 주전자를 구입하면서
그렇게 영원히 서로를 스쳐 지나간다
호메로스*는 현재 통계청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퇴근 후 집에 가서 그가 뭘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호메로스Homeros : 고대 그리스의 시인으로 영웅 서사시인 의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작품의 탄생 연대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분분하나 대체로 기원전 9~8세기로 추정되고 있다. 두 서사시는 고대 그리스의 국민적 서사시로서 문학의 고전이라 불리고 있으며, 헬레니즘 시대를 거쳐 중세와 근세에까지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피에타*
/ 쉼보르스카
영웅이 탄생한 작은 마을에서
동상을 바라보며, 그 커다란 규모에 찬사를 보내라.
텅 빈 박물관 문간에서 훠이훠이 암탉 두 마리를 쫓아내라.
어머니가 살고 있는 곳을 알아내라.
문을 두드려라. 삐걱대는 대문을 밀어젖혀라.
어머니는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말끔히 벗어 넘긴 머리에, 밝은 시선을 던지리라.
폴란드에서 왔노라고 당당히 말하라.
어머니께 인사하라, 분명하게, 큰소리로 안부를 물어라.
그렇다, 그녀는 그를 매우 사랑했다. 그렇다, 그는 늘 그대로였다.
그렇다, 그날 그녀는 감옥을 둘러싼 담벼락 옆에 서 있었다.
그렇다, 그녀는 총격 소리를 들었다.
녹음기와 사진기를 가져오지 않은 걸 후회하라.
그렇다, 그녀는 언젠가 그 기계들을 본 적이 있다.
그녀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그의 마지막 편지를 읽었다.
텔레비전에 출연해서 오래된 자장가를 불렀다.
한번은 영화를 찍다가 눈부시게 빛나는 조명 때문에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다.
그렇다, 기억은 여전히 그녀를 감동시킨다.
그렇다, 그녀는 약간의 피로를 느낀다. 그렇다, 하지만 곧 사라질 것이다.
일어나라, 감사의 인사를 전하라, 작별하라.
복도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여행객들을 스쳐 지나가면서
그곳을 떠나라.
*피에타 Pieta: 예수의 유해를 무릎에 안고 비탄에 잠긴 성모 마리아를 그린 그림 또는 상(像)
1960년대의 영화
/ 심보르스카
저기 서 있는 성인(成人) 남자, 땅을 딛고 선 인간.
10만 개의 신경 세포.
300그램의 십장과 그 안에 담겨진 5리터 가량의 혈액.
무려 3백만 년 동안 끊임없이 생성되어져온 개체.
초기에는 어린 소년의 모습이었다.
어린 소년은 아주머니 무릎 위에 머리를 포겠다.
그 어린 소년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무릎은 또 어디로 사라졌을까.
어린 소년은 이미 너무 커버렸다.
아, 그는 더 이상 어린 소년이 아니다.
이 거울들은 잔인한 데다가, 아스팔트처럼 매끄럽기까지 하다.
어제 그는 고양이를 차로 치어 죽였다. 그래, 그건 꽤 괞찮은 아이디어였어.
이 시대의 끔삑한 지옥으로부터 고양이를 해방시켰으니
자동차에 타고 있던 소녀가 속눈썹을 깜빡이며 그를 바라본다.
이건 아니야, 그녀는 그가 원하던 무릎을 갖고 있지 않았다.
실제로 그가 바란 건 모래사장에 길게 누워 마음껏 숨을 쉬는 것.
그는 세상과 아무런 연관성도 갖지 못했다.
자신이 손잡이가 부서진 주전자 같다고 여겼다.
귀퉁이가 깨진 것도 모른 채 여전히 물을 길어 나르는 가엾은 주전자---
이것은 사뭇 경이로운 일이다.
고난을 무릅쓰고 묵묵히 제 몫을 다하는 누군가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은.
집은 이제 다 지어졌다. 문고리엔 아름다운 조각이 새겨졌고, 나무에는 어린 가지가 접목되었다.
이제 곧 서커스단이 공연을 시작하리라.
이 '완벽한 전체'는 현재 상태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싶다.
'조각'과 '부분'이 결합되어 지금의 자신이 만들어졌음은 까맣게 잊은 듯.
sunt lacrimae renum(이것은 존재가 흘린 눈물)* 마치 접착제처럼 끈적끈절하고, 견고한 액체.
이 모든 것들은 단지 부수적인 배경일 뿐, 언제나 본질에서 한 발짝 비껴나 있다.
그의 내면에는 극심한 어둠이 있고, 어둠의 한가운데에 예의 그 어린 소년이 있다.
무엇이든 그에게 해주소서, 유머의 신이여.
어떻게든 그에게 웃음을 주소서, 유머의 신이여.
*sunt lacrimae renum(이것은 존재가 흘린 눈물); 기원전 1세기에 활약했던 고대 로마의 서정시인 베르길리우스가 남긴 위대한 서사시에 나오는 "사물 또한 눈물을 흘린다"는 구절을 인용한 것. 베르기리우스는 애국적인 정서와 종교적 경건함, 풍부한 교양, 완벽한 시적 기교로 '시성(詩聖)이라 불렸으며, 특히 단테가 에서 그를 안내자로 삼은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병원에서 작성한 보고서
/ 쉼보르스카
누가 그를 만나러 갈까. 우리는 성냥개비로 제비뽑기를 했습니다.
내가 당첨됐네요. 나는 식탁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병원의 면회 시간이 점점 가까워오고 있었습니다.
문안 인사에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손을 꼭 잡아주고 싶었지만, 그는 오히려 제 손을 뒤로 뺐습니다.
뼈다귀를 감추고, 절대로 내놓지 않으려는 굶주린 강아지처럼.
그는 죽는다는 사실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듯 했습니다.
그런 처지에 놓인 사람에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통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합성 사진 속의 인물들처럼 우리의 시선은 스치고, 엇갈렸습니다.
그는 그만 가달라고도, 곁에 있어달라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식탁에 함께 앉았던 사람들 중 그 누구의 안부도 묻지 않았습니다.
볼레크, 너에 대해서도 톨레크, 너에 대해서도, 롤레크, 너에 대해서도*
갑자기 머리가 아파오네요. 죽는 자는 누구이고, 애도하는 자는 누구인가요?
나는 유리컵에 꽂힌 세 송이의 제비꽃에 관해,
현대 의약품의 놀라운 효력에 관해 찬사를 늘어 놓았습니다.
태양에 대해 주절주절 떠들다가 불을 껐습니다.
아래로 뛰어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이 있다는 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와락 열어젖힐 수 있는 문이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아직도 너희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건, 또 얼마나 기쁜 일인지.
병원 냄새는 내게 구토를 불러일으킵니다.
*볼레크Bolek, 톨레크Tolek, 롤레크Lolek는 우리나라의 철수, 민수, 영수처럼 폴랜드에서 흔한 남자 이름이다.
철새들의 귀환
/ 쉼보르스카
그해 봄, 철새들은 또다시 너무 일찍 돌아왔다.
이성(理性)이여 기뻐하라, 본능 또한 실수를 저지를 수 있음에.
본능이 꾸벅꾸벅 졸며 방심하는 사이, 철새들은 눈 속에 추락하여
어이없이 죽음을 맞는다.
정교한 인후(咽喉)와 예술적인 발톱,
건실한 연골과 진지한 물갈퀴,
심장의 배수구와 창자의 미로,
갈비뼈 사이의 가지런한 통로와 열을 지어 곧게 뻗은 근사한 척추,
공예품 박물관에나 어울릴 듯 멋들어진 깃털,
참을성이 다소 부족해 보이는 부리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게
지극히 황당한 죽음을 맞는다.
이것은 애도의 노래가 아니라, 단지 분노의 표현일 뿐.
눈부시게 깨끗한 순백의 천사,
구약 성서 시편에 자주 등장하는 주인공,
땀구멍을 지닌 나는 연(鳶),
공중에서는 한없이 자유롭고 개별적이어서
우리 손에는 도무지 잡히지 않는 무한한 존재,
아리스토텔레스의 고대극처럼
근육과 근육의 시간과 장소의 일치속에 긴밀하게 이어져 있고,
힘찬 날갯짓으로 환호를 보내는 경이로운 생물체가
바닥으로 곤두박질한다.
그러곤 자신만의 고풍스럽고, 소박한 태로로
미수(未遂)로 그치고 만 무기력한 시도를 바라보듯,
아무렇지도 않은 담담한 얼굴로 비둘기의 최후를 응시한다.
안경원숭이*
/ 쉼보르스카
나는 안경원숭이, 안경원숭이의 아들.
안경원숭이의 손자이며, 안경원숭이의 증손자.
두 개의 커다란 동공과
그 밖에 꼭 필요한 요소들이 결합된 조그만 피조물.
계속되는 진화와 끊임없는 변형으로부터 나는 기적적으로 구출되었죠.
내 고기가 기막힌 맛을 내는 것도 아니고,
내 모피 가지고는 털목돌리 한 개를 만들기도 부족하니까요.
내 침샘이 다른 동물들처럼 행운의 부적으로 쓰이는 것도 아니고,
내 창자로 음악회에 사용할 현악기의 줄을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나는 안경원숭이,
인간의 손가락 위에 산 채로 덩그러니 앉아 있습니다.
친애하는 주인님, 안녕하세요.
내게서 아무것도 빼앗아갈 필요가 없으니
그 대가로 무엇을 주실 건가요?
주인님의 너그러운 아량으로 어떤 보상을 베푸실 건가요?
나는 돈으로 살 수 없을 만큼 고귀한 존재.
당신의 미소를 똑같이 흉내 낸 대가로
얼마나 많은 상금을 하사하실 건가요?
관대하신 주인님,
너그러우신 주인님,
그 어떤 피조물에게도 가치 없는 죽음은 없다는 사실을
과연 누가 증언해줄까요?
행여 당신들이 해줄 건가요?
스스로에 대해 알고 있는 이 모든 사실들은
별이 총총한 이 밤이 지나면 금세 잊혀져버릴 것을.
가죽이 통째로 벗겨진다든지, 뼈가 뽑히거나 깃털이 갈기갈기 찢기는
끔찍한 불행을 간신히 모면할 수 있었던
우리들 중 몇몇 원숭이만이
가시와 비늘과 송곳니와 뿔을 감히 동경할 수 있었답니다.
단백질의 착상으로 만들어진
그 밖의 다른 것들을 소망할 수 있었답니다.
친애하는 주인님, 우리는 당신의 꿈입니다.
일시적이나마 당신의 결백을 입증할 수 있는 백일몽입니다.
나는 안경원숭이, 내 아버지와 할아버지도 다 안경원숭이.
다른 짐승들의 절반밖에 안 되는 조그만 몸집을 가진 피조물.
하지만, 전체를 놓고 보면 무엇 하나 모자란 게 없는 완벽한 존재.
먼 옛날 나는 너무나 가벼워서 가느다란 나뭇가지 위를 사뿐히 뛰어오를 수도 있었고,
하늘 위로 튕겨져 감상적인 돌멩이 때문에
한 번, 또 한 번,
자꾸 밑바닥으로 추락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안경원숭이.
스스로 너무나 잘 알고 있답니다.
안경원숭이가 될 수밖에 없었던 본질적인 당위성에 대해서.
*안경원숭이; 동인도 제도에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진 원숭이류의 동물. 안경을 쓴 것처럼 동그랗고 큰 눈이 특징이다.
일요일에 심장에게 / 쉼보르스카
내 심장아, 정말 고맙다.
보채지도, 소란을 피우지 않아서.
타고난 성실성과 부지런함에 대해
그 어떤 보상도, 아첨도 요구하지 않아서.
너는 1분에 70번의 공로를 세우고 있구나.
내 모든 수축과 이완은
바다 한가운데로
조각배를 밀어내듯
세상의 주위를 맴돌고 있구나.
내 심장아, 정말 고맙다.
한 번, 또 한 번,
나를 전체에서 분리시켜주어서.
심지어 꿈에서조차 따로 끄집어내주어서.
내 심장아, 정말 고맙다.
내가 잠에서 깨어날 수 있게 해주어서.
비록 오늘은 일요일,
안식을 위해 마련된 특별한 날이지만,
내 갈비뼈 바로 아래쪽에선
휴일을 코앞에 둔 분주하고, 일상적인 움직임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곡예사
/ 쉼보르스카
공중그네에서 공중그네로.
묵소리가 멈춘 뒤 갑자기 찾아든
죽음과도 같은 적막 속에서,
느닷없이 놀란 공기를 헤집고 관통하면서,
또다시 추락의 타이밍을 비껴난
육신의 무게보다 한 템포 더 빠르게.
그는 솔로였다. 아니 솔로보다 더 작고, 부족한 존재였다.
절름발이였기에, 날개를 잃어버렸기에.
이 모든 결핍은 더욱더 크나큰 장애가 되어
마침내 그는 깃털 하나 없이 적나라한 시선 속에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풀쩍, 하늘 높이 날아오를 수밖에 없었다.
힘겹지만 가볍게,
끈질긴 민첩함으로,
치밀하게 계산된 영감 속에서,
너는 아느냐, 비행의 순간을 낚아채기 위해
얼마나 오랫동안 숨죽이고 기다려야 했는지.
너는 아느냐, 자신이 지닌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머리에서 발끝까지 얼마나 치밀한 전략을 세워야만 했는지.
너는 아느냐,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느냐.
그가 얼마나 절묘하게 자신의 체형을 짜 맞추고 조립했는지를
흔들리는 세상을 손아귀에 포착하기 위해
그는 계획에 맞춰 새로이 제작된 양팔을 앞으로 곧게 뻗었다.
바로 그 순간, 벌써 화살처럼 저만치 달아나버린 그 짧은 찰나에
그의 두 팔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고 위대했다.
다산을 기원하는 구석기 시대의 페티시즘*
/ 쉼보르스카
위대한 어머니는 얼굴이 없다.
무엇 때문에 위대한 어머니에게 얼굴이 필요하겠는가.
얼굴은 충실하고, 정숙하게 몸의 일부로 머무르질 못한다.
얼굴은 몸에게 훼방을 일삼는 신성치 못한 존재다.
육신의 장엄한 일치와 조화를 방해할 뿐.
위대한 어머니에게 아름다운 얼굴은
한가운데 눈먼 배꼽이 새겨진 볼록한 배와 다름 아니다.
위대한 어머니는 발이 없다.
위대한 어머니에게 무엇 때문에 발이 필요하겠는가.
대체 어디를 헤매고 다닌단 말인가.
세상의 소소한 이야기들 속에 느닷없이 끼어들 일이 뭐가 있겠는가.
위대한 어머니는 이미 자신이 원하던 그곳으로 떠났다.
거기서 살갗을 팽팽하게 긴장시킨 채 열심히 보초를 서고 있다.
그래, 저기 저 너머에도 또 다른 세상이 있는가? 뭐, 아무래도 좋다.
그곳은 풍요와 축복의 땅인가? 그렇다면 더욱 좋다.
아이들이 어딘가를 향해 분주히 달려가고 있다.
고개 들어 뭔가를 바라보고 있는가? 훌륭하다!
그들이 잠들어 있는 동안에도 세상은 여전히 존재한다.
터무니없을 만큼 온전하게, 그리고 지극히 현실적으로.
그들이 등을 돌려도 여전히, 변함없이 존재한다
세상으로선 이 정도면 최선을 다한 것이다.
위대한 어머니는 간신히 두 개의 손을 가지고 있다.
가슴 위에 가지런히 포개어져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두 개의 가느다란 손.
이 손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생(生)을 축복해야 한단 말인가.
무슨 이유로 넘치게 축복 받은 자들에게 또다시 은총을 베풀어야 한단 말인가.
이 손이 맡은 역할은 오직 하나.
하늘과 땅이 존재하는 한
무슨 일이 생겨도,
설사 아무런 재난이 일어나지 않는다 해도,
묵묵히 견뎌내는 것,
자신에게 허락된 본분을 지키며, 지그재그로 엇갈린 본연의 자세를 고스란히 유지하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아름다운 자태에 마지막 미소를 보태는 것.
*페티시즘 ; 일종의 물신 숭배로 나무나 돌 따위에 마력이 있다고 믿고,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원시 종교의 한 형태.
1996년 노벨상 수상자인 쉼보르스카의 시적 세계를 살펴보면 합리주의적 인식론과 이원론적 존재론을 근간으로 하는 서양철학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관계, 존재의 해체와 공존에 대한 사유를 발견하게 된다. 이 논문은 동아시아 철학자들을 대표하며 인류의 보편적인 사상으로 여겨지는 비스와와 쉼보르스카의 저작들을 "노장철학"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노좡의 철학을 염두에 두고 쉼보르스카의 시를 읽을 때, 시인의 천진난만한 시각을 발견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그녀는 습관이나 편견 없이 사물의 본질을 통찰할 수 있다. 쉼보르스카의 시는 자연의 관점에서 자연을 보는 것뿐만 아니라 자연의 눈으로 인간을 이해하려는 그녀의 노력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녀는 인간 본연의 자기중심주의에서 탈피하여 가장 작은 것, 가장 평범한 것, 일상적인 존재를 인식하는 것으로 시야를 확장합니다. 그녀는 더 이상 인간을 창조의 주인으로 보지 않고 자연이라는 거대한 유기체의 일부로 봅니다. 여기에 자연과의 공존을 추구하고 생태적, 자연친화적인 관점을 지닌 그녀의 겸손한 세계관도 엿볼 수 있다. 자신에 대한 편견 없이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반성하고 명상하는 눈으로 자신을 이방인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돌린다.
Szymborska는 사람과 모든 피조물, 동물과 식물이 하나가 되고 통제도 종속도 없는 사람 없이 모두가 평등해지는 이상적인 세계에 대한 Lao-Zhuang의 꿈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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