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마음 칼럼 : “교회, 또 하나의 생태계 1”
요즘 우리 한국교회의 온갖 문제들에 대한 원인을 하나만 꼽으라면 ‘교회론의 부재’라고 할 수 있겠다. 교회론의 기초 중의 기초인 ‘불가시적 교회’ 곧 한 분 머리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우주적인 하나의 교회’라는 개념조차 아예 없는 모습에 기함할 때가 많다.
그러니 개교회 이기주의가 팽배하다. 목사들이 오히려 교회일치운동이나 연합운동을 두려워한다. 다만 자기 자리나 서로 노릴 뿐이다. 이웃교회와의 연합과 협력을 가로막고 경쟁의 대상으로 보게 한다. 이런 반복음적 욕망이 가득한 자들일수록, 큰 덩치를 만든다는 건 이상한 일도 아니다. 목적과 방법이 철저히 세속적이어야만 어떤 기업이든 대기업으로 성장한다는 기업 경영학이 오래전에 ‘교회 성장학’에 도입된 것도 이젠 놀랄 일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자신들이 바라는 어떤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이 있을 것이다. 나는 50년이 훌쩍 넘은 나의 주일학교 시절을 많이 추억해 본다. 순수했던 어린아이의 눈에 비친 교회의 모습 말이다. 나의 기억 속의 고향 교회에는 당연하겠지만 언제나 나의 주일학교 선생님들이 있다. 그분들의 환대와 호의는 늘 한결같았다. 주일학교, 성가대, 교회당 청소, 꽃밭 가꾸기 등을 자원했던 그분들의 웃는 얼굴들이 지금도 선하다.
수많은 일 중에는 이웃교회들과 함께 하는 ‘주일학교 교사 연합회’나 ‘청년부 연합회’에 그분들을 따라다녔던 기억도 있다. 이후 중고등부, 청년부 연합회, 교회학교 연합회에 어느덧 내가 교회 아이들이나 형제 같던 동무들과 후배 동생들을 데리고 열심히 참석하고 활동했다. 말 그대로 순수 연합의 기쁨, 낯선 이웃교회 사람들과 만나자마자 금방 한 자매요 한 형제가 되는 놀라운 경험들로 그 어렸고 젊었던 우리는 참으로 행복했었다.
그런데 그에 비해서, 어느덧 교육전도사가 되어 이웃교회의 목사님 전도사님 장로님들한테 인사하러 처음으로 참석했던 ‘시찰회’의 기억도 있다. 먹지도 않은 아침밥이 체할 것 같은 묘한 분위기였다. 그리고 급변하는 세속사회와 함께 우리의 교회들도 너무나 다른 무엇이 되어 왔다.
가장 놀라운 변화는 성탄절 새벽이었다. 주일학교 선생님들을 따라 ‘새벽송’을 다닐 때는 이웃교회 사람들을 만나면 서로 반가워하며 메리 크리스마스, 할렐루야를 외치며 서로 반가워했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마치 외나무다리에서 적을 만난 듯 서로 경계하며 외면하는, 숨 막히는 정말 기이한 모습이었다.
각자도생, 합종연횡하는 요즘 교회들에게서 세상은 과연 구원을 희망할 수 있을까? 이런 시점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는 ‘교회론의 재확립’이다. “교회는 무엇인가?” 아니 “교회는 무엇이어야 하는가?”부터 다시 자문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인 우주적 교회’에 눈을 떠야 한다. 그로써 하나의 ‘교회 생태계’를 목표하는 개념과 사고의 대 전환이 있어야 한다. 어느 때보다 ‘우주적 그리스도론’이 절실한 때다. /계속 (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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