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음 칼럼 : “당신은 이미 마을 목회자!”
그리고 ‘마을을 목회로 섬기려고 하는’ 목회자들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이웃이 살아가고 있는 지역사회의 현실 문제에로 눈길을 돌리는 기질을 갖고 있다. ‘주체인 자신의 주변에로 눈길을 돌리는 앙가주망(engagement)’이다. ‘앙가주망’이란 말은 특히 작가나 지식인들의 사회참여 또는 정치 참여를 가리키는 말인데, 주로 부조리한 현실을 타개하려고 사회 속으로 자신을 던져 넣는 자기구속(自己拘束)을 회피하지 않는 삶의 태도를 가리킨다.
나는 지금 계속해서 ‘기질’ 또는 ‘은사’라는 말을 쓰고 있다. 그건 그만큼 ‘사람 본성’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 주변과 이웃을 살피고, 나아가 그들이 처한 구조적 문제점을 발견하고, 그것의 해결 방안을 찾아내고, 또 구체적으로 솔선하여 실천하는 도전을 하면서, 자신을 거기 속박시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런 기질이 바로 세상의 구원자 우리 ‘갈릴리 예수님’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이처럼 자신의 역량들을 이웃에게 할애하여 나누고 함께 공존하려는 기질이야말로 우리의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절대 필요한 하늘의 은사이다. 적어도 자신에게 이런 기질이 없다면 마을목회 아니 아예 목회자가 되려는 꿈도 꾸지 마라. 어떤 새로운 환경이나 사람을 만날 때 자신의 것 먼저 계산이 되는 사람은 처음부터 아예 목회자가 되려고 나서지도 마라. 자신과 가족 나아가 한국교회 전체 불행의 씨앗이 된다.
이런 자들이 힘든 노동은커녕 무슨 노력을 별로 하지 않고도 남들에게 인사받으며, 지도자 노릇 가능하고, 게다가 세 치 혓바닥으로만 설교하고도 박수받으며 먹고 살 수 있는 줄 알고, 너도나도 신학교로 몰려와 목회자가 되었으니, 오늘날 한국교회가 이 꼴이 된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마을목회’가 세간에 화제가 되건 말건, 이미 자신이 보내심을 받은 마을에서 한 사람의 목회자로 교인들의 마을과 주민들의 현실에 자꾸 마음이 쓰이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마을 목회자’이다. 자신의 교인들에게 그렇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모습이요 그런 일을 실행하는 것이 주님의 교회라고 역설하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그곳에 보내어진 마을 목회자이다. 그렇지 못한 장로 권사와 교인들에 대한 실망으로 강대상에 혼자 엎드려 있다면 당신은 이미 훌륭한 마을 목회자이다.
사그라져만 가는 농촌 마을 속에서 가난을 스스로 면하기 어려운 교회를 탄식하면서 무엇이든 돌파구를 찾으려는 당신은 이미 마을 목회자이다. 자신의 남은 인생 그 교회에서 살 것도 아니면서, 교회의 자립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하려고 고심하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우리 주 예수님이 보내신 그곳의 마을 목회자이다.
이런 이야기에 혼자 쑥스러워진다면 당신은 이미 마을 목회자이다. 빛도 이름도 없이 오직 충성해야 하는 한 분만을 바라보며, 꺼져가는 등불 같은 농어촌과 도시 골목을 지키는 당신이 바로 갈릴리 주님의 제자이다. /계속 (聾)
쉰들러는 부패한 사업가였다. 그러나 거악이 인간의 목숨을 유린할 때 자신의 소유를 쏟아부어 그로부터 사람들을 구해낸 것은, 귀족도 정치인도 지식인도 더구나 고상한 종교인도 아닌 오스카 쉰들러였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대의를 실천하는 자, 그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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