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음 칼럼 : “교회, 너 바벨론아! 06”
성서의 지리적 배경은 공교롭게도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유럽 등 3개 대륙이 모두 만나는 지점이다. 그리고 세계 4대 고대문명 중 하나인 남쪽의 나일문명과 북쪽의 메소포타미아문명 사이에 있는 곳이다.
그런 이유로 남방의 이집트(애굽)와 아시리아(앗수르) 바빌로니아(바벨론) 알렉산드리아(헬라) 로마 등 북방의 고대 제국들이 영토 확장을 위해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지리적 역사적 배경 위에 있다. 당연히 성서는 이 고대 제국들에 결코 우호적일 수 없었다. 이런 이유로 우리의 성서는 그 강대한 제국들을 ‘인류를 파멸하는 악’으로 규정하고, 그 ‘이 세상의 것들’을 대체하는 ‘저 세상의 나라’ 곧 온 인류가 평화롭게 공존하며 사는 하느님 나라의 희망을 선포한다.
그리하여 구약성서는 하느님 나라의 반대편에 있는 악의 제국들로 애굽과 바벨론을 상정한다. 또 이 둘은 구약성서 사상의 큰 두 줄기인 출애굽과 바벨론 유수(幽囚)의 배경이기도 하다. 신약성서는 헬라제국 안티오쿠스2세의 잔혹한 지배(신구약 중간기)에 이어 등장한 로마제국의 식민지배라는 역사적 배경에 있었다. 그래서 신약성서는 당연히 이 ‘로마제국’을 ‘또 다른 바벨론’이라고 규정하며 항거한다.
구약성서 1부 출애굽에 이어 2부인 바벨론 포로 시기, 강제 이주된 당시 유대인은 바벨론의 세속도시 문명에 엄청난 충격을 받으면서, 자신들이 얼마나 좁은 우물 안의 개구리에 불과했는지 절감하게 된다. 현재에도 남아있는 바벨론 유적들을 통해서 우리도 알다시피 그것은 출애굽 이후 도착했던 가나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문화적 충격이었다.
그리고 이어 지중해 연안의 드넓은 영토를 혹독한 경제적 착취로 지배하면서, 바벨론의 영화를 그대로 따랐던 로마의 세속문명에 대해 우리의 초기 교회 공동체는 마치 ‘바벨론에 유수된 것’과 같이 절박한 심정이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때에는 당시 교회 공동체들을 ‘바벨론(=로마)에 있는 교회들’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벧전 5,13) “택하심을 함께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이와 함께 이 초기 교회들은 교회 밖의 세속 문명에 대한 씨름과 함께 교회 내부에 우후죽순 일어나고 있던 온갖 문제들과 또한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사도 바울을 어지간히 고통스럽게 했던 고린도교회가 그 대표격이었다. 이후 우리가 잘 아는 네로 황제로부터 본격적인 교회 대박해의 시대가 도래했고, 이어 요한 계시록이 기록될 당시 교회의 고통은 더욱 심각했다.
그때는 네로가 죽은 지 13년 후 등장한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였다. 당시 교회들이 “네로가 다시 살아났다!”고 탄식할 정도로 박해는 끔찍했다. 그래서 교회들은 도미티아누스를 ‘(악독한) 황제 네로’라고 불렀다. 그 말을 숫자로 표현한 은어가 우리가 잘 아는 ‘666’이다. /계속 (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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