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음 칼럼 : “교회, 너 바벨론아! 05”
나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 유년 주일학교 시절의 선생님들과 부장 집사님이 있다. 이제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볕에 그은 얼굴이나 모습이 선명한 주일학교 부장 선생님은 박 집사님이셨다. 남루하고 얇은 회색 점퍼를 입고 그날도 주일학교 예배 설교를 하셨는데 성서 본문은 (마 15,8)이었다.
어떻게 그것까지 기억하냐고 하겠지만, 그만큼 강렬한 일이 있었다. 그날 부장 선생님은 그 본문 내용을 (요 3,16) 노래 곡조에 맞추어 반복하여 따라 부르게 하셨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왁자지껄 떠들던 아이들도 이 찬송만 시작하면 어느새 집중하여 정말 목이 터지도록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부르곤 했다.
부장 선생님을 따라서 우리가 금방 외워 부른 노래 가사는 이것이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마는, 마음은 멀도다. 마태복음 15장 8절!” 노래 끄트머리를 곡조에 맞추려니 급하게 ‘십오장 파알~절!’이라고 하느라 처음에 아이들은 제대로 끝을 맺지 못하곤 했다. 그리고 이어진 부장 집사님의 설교는 내가 지금도 기억하는 유년 주일학교 시절의 몇몇 설교 중 하나이다.
집사님은 저 본문의 내용을 사뭇 심각하게 설명하셨는데, 마침내 눈시울이 붉어져서 말을 잊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간신히 설교 마무리 기도를 하셨는데 ‘입술로만 공경하고 마음이 먼 자’가 바로 자신이라고, 그만 대성통곡을 하셨다. 그날 이후로 학교와 교회를 3~40분씩 긴 제방 둑길을 걸으며 혼자 부르곤 했는데, 50년이 지난 오늘까지 마음 속으로 부르는 찬송이 되었다.
이런 기억도 있다. 목소리가 남자 같았던 여자 선생님이 설교하셨는데, 아마 부활주일을 앞둔 고난주일이었나 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고통을 겪으시는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단상에 굵고 긴 대못과 무거운 망치를 올려놓으셨다. 그리고는 ‘예수님이 얼마나 아프셨을까, 한 번 내 손에 못을 박아 보고 싶다’고 하며 손바닥에 못을 세워 잡고는 망치로 ‘꽝!’하고 내려치셨다. 놀란 아이들의 비명은 피가 나는 손을 움켜잡고 너무나 아파서 그만 주저앉아 엉엉 우시는 선생님의 울음소리에 묻히고 말았었다.
5학년 여름방학을 앞두고 나는 교회당에서 못되게 장난치는 친구와 다툰 뒤, 몇 주일 교회에 가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여름성경학교가 시작되는 날 이른 아침, 그 선생님이 나 하나를 데리러 먼 길을 걸어 찾아오셨다. 후회스러운 마음을 안고서 교회당을 향해 앞장서서 제방 둑길을 걸을 때, 선생님은 몹시 마음이 기쁘셨던지 줄곧 아이처럼 신나게 여름성경학교 교가를 부르며 따라오셨었다. “흰 구름 뭉게뭉게 피는 하늘에, 아침 해 명랑하게 솟~아오른다”
머지않아 그 선생님은 다른 교회의 전도사님이 되셨고, 나는 그날 이후로 그야말로 독실한 어린 기독교인이 되었었다. 무언가 그 시절과는 너무나 다른, 교인과 교회들이 되고 말았다는 건 비단 나만 느끼는 일일까? /계속 (聾)
(요 5,23)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요 8,4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는 오직 내 아버지를 공경함이거늘 너희가 나를 무시하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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