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갈릴리 칼럼]

[한마음 칼럼] 교회, 너 바벨론아! 02

by 농민만세 2023. 3. 4.

한마음 칼럼 : “교회, 너 바벨론아! 02”

“교회, 너 바벨론아!” 이 통렬한 일갈은 유년 시절에 어머니 손 잡고 다니던 교회 부흥회에서 들었던 말이다. ‘이 아이를 주의 종으로 바쳤답니다’는 권사님의 부탁으로 어머니와 어린 나는 새벽기도 후에 부흥강사 목사님으로부터 뜨거운 안수기도를 받곤 했었다.

목이 잔뜩 쉬어 ‘걸걸’ 거리는 목소리로 그 목사님은 저녁 집회 때마다 ‘교회, 너 바빌론아!’를 반복하면서, 땀과 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와 기도를 하셨었다. (하여튼 나는 주일학교 유년 시절의 이런 기억들이 마치 환등기에 비친 정지 화면들처럼 기억에 남아있다) 하긴 그때가 60년대 말이었으니 온 나라가 농업 중심의 봉건주의적 사회경제구조를 공업 중심의 자본주의적 경제구조로 바꾸려고 온통 들썩이던 때였다.

아마도 세상은 물질 중심의 가치관으로 요동치며 급변하기 시작했을 테고, 사람 중심 곧 인본주의적인 유교적 가치관과 사회 통념들은 오히려 산업사회로의 변화와 발전을 가로막는 원흉으로 싸잡혀 정죄 받던 때였을 터이다. 그러니 오죽했으랴. ‘오직 헌신’의 사명과 ‘오직 기도’의 영성으로 진짜로 부르심을 받아 주의 종이 되어 사셨던 그 옛 목사님들의 눈에, 그런 세속 사회의 급변화에 물들어가는 교회의 모습이 얼마나 세기말의 현상으로 보였을지 충분히 짐작된다.

당시 기억의 한 장면. 토요일 새벽까지 이어진 부흥회의 마지막 설교를 마치자, 날이 훤히 밝아왔다. 아마 내 기억으로는 금요일 새벽에 마치기로 약속한 부흥회가 하루 더 연장되었던 것 같다. 일주일간의 부흥 집회를 인도하신 목사님은 울먹이며 인사를 하셨다. “내가 여러 교회 부흥회를 다녔는데, 이번처럼 주의 은혜가 많았던 적은 처음이다. 이렇게 가려니 갓 나은 송아지를 두고 떠나는 어미 소의 심정이다.” 그러니 부디 이 은혜를 식히지 말아야 한다는 당부였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어머니도 분명히 기억하고 계셨다.

그 목사님은 설교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교회, 너 바빌론이여! 회개하라!’ 하면서 강대상 옆 화분대를 번쩍 들어 바닥에 내리쳤는데, 그만 그대로 박살이 나버렸다. 몹시 당황하시며 우리 목사님한테 ‘이거 미안해서 어떡하냐?’ 하시니, 우리 목사님은 괜찮다고 하시면서 그 목사님의 다친 손을 걱정하셨었다.

이런 기억들은 마침내 신학교에 다니면서 더욱 생생하게 혼자 기도할 때마다 늘 재생되곤 했다. 그런데 요즘은 저 말을 무슨 사이비도 아닌 기독교 이단 종파라는 이들이 우리를 향해서 하는 말인가 보다. 본래 그들은 태생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는 거다. 처음부터 그냥 자기 자신으로 시작한 게 아니라 기독교라는 본류에 대한 ‘아류(亞流)’로 시작한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교회, 너 바벨론아!’라는 이 통렬한 말은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부패하고 강퍅했던 당시 교회를 향하여 쓴 한 논문의 내용이었고, 요한계시록에서 지금도 울려 나오는 목소리이다. /계속 (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