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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칼럼]

[한마음 칼럼] 교회, 또 하나의 생태계 9 - 과도한 정의를 꿈꿨다

by 농자천하/ 2023. 2. 18.

한마음 칼럼 : “교회, 또 하나의 생태계 9” - 과도한 정의를 꿈꿨다

그런데 요즘 이야기의 주제는 ‘교회, 또 하나의 생태계’이다. 이야기의 줄거리를 한마디로 말하면 이런 거다. ‘이 세계 속의 모든 교회는 서로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어야만 다 함께 살아남을 수 있다.’

그래서 처음부터 자연 생태계 관련 전문 자료들까지 미리 찾아 공부한 다음 이렇게 시작한 이야기였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하느님의 창조 세계 안에는 교회가 어찌해야 하는지에 대한 유비(比喩)도 놀랍도록 충분히 담겨 있다. 그러면서 특히 소위 큰 교회라는 것들일수록 ‘자신들도 하나의 전체 생태계의 일부분’일 뿐이라는 관점을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걸 쓰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처럼 ‘교회’라는 말만 꺼내면 할 말이 너무도 많아서 이야기가 제대로 진전되지 않는다. 저 위 문장을 읽고 또 어떤 자들은 “하나님의 교회인데, ‘살아남느니’ ‘생존한다느니’ 하는 말을 왜 쓰느냐?!”고 하겠다. 하긴 예전에 ‘눈에 뵈는 게 없던’, 그러니까 안하무인도 은사인가 싶던 어떤 목사라는 게 그렇게 말한 적도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보라, 지금 우리는 벌써 ‘교회로 살아남는 일’이 목숨줄 같은 때를 살고 있다.

그동안 나는 한편 ‘교회주의자’ 또는 ‘교회절대주의자’라고까지 자처하며 한 사람의 목회자로 정말 치열하게 살아왔다. 무슨 은혜인지, 나는 그렇게 살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온갖 문제들이 충돌하는 교회들을 목회해 왔다. 교회들은 끔찍할 만큼 본질에서 아예 엇나가 있었고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 같은 것은 아예 생각지도 않은 채 기막힌 인간 군상들이 수치도 모르고 막춤들을 추고 있었다. 교회는 무슨 거듭난 신자들이나 또는 그런 은총을 기대하는 교인들의 모임이 아니라 너무나 정말 너무나도 생래적(生來的)인 인성들이 난무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그따위 것들이 ‘그리스도 예수교/기독교’라는 간판을 걸어놓고 십자가를 내세우고 감히 예수님의 이름까지 함부로 부르고 있다면 그거야말로 가장 심각한 <명의도용>이 아닐 수 없다며 전쟁을 벌여 왔다. 그야말로 명의도용을 당장 중지하고 다른 종교 이름을 사용하거나 아니면 진짜 그리스도 예수교로 바뀌거나. 하지만 이제 나는 이 모든 일에 대해서 아주 근원적인 회의(懷疑)를 하고 있다. 나는 지나치게 순진했고 ‘너무나 과도한 정의’를 추구했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목적 하나로 존재하는 게 과연 교회인 거라면, 그야말로 우리에게 있어서 그 교회보다 더 우선시 되는 건 있을 수 없다. 목사든 장로든 어떤 교인이든 더구나 노회든 총회든, 그 누구도 교회를 흔들 수 없다. 사유화하거나 수단으로 삼을 수 없다. 그런 일을 최악의 범죄로 다루고 처단해야만 지금도 앞으로도 교회는 교회로서 살아남는다.

여기에 말하는 ‘교회’란? 순전한 교인 몇 명이라도 정말 예수님을 높여 모시고 서로 섬기며 사는 에클레시아 곧 민회(民會)이다. /계속 (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