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노동시간 문제는 좀 이상하게 논의되고 있는 측면이 있다.
가령 정말 노동자가 원하는 때 쉴 수 있다면, 일 많을 때는 일주일에 70시간 정도 하고 대신 다음 주에 3~4일 연달아 쉬는 걸 더 선호하는 사람들 매우 많을 것이다.
즉 일이 많은 어떤 주에 일주일에 70시간 일하는 것 그 자체를 무조건 절대악이라고 몰아갈 건 아니다.
유럽도 주로 그런 식이다 (여기 대해선 페친이신 정승국 선생님이 잘 말씀해주셨다). 한국처럼 주당 근로시간 상한을 52시간 뭐 이런 식으로 정하는 나라는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가령 주 35시간 근로제라도, 어떤 주는 그보다 훨씬 많이 일하면서 한 달 내지 3개월 평균해서 그 근로시간을 지키면 된다.
물론 하루 근로시간 상한이나 주당 근로시간 상한이 있는 나라도 있지만, 그런 상한 없이 중간에 11시간 이상 휴식을 주어야 한다는 식으로 정하는 나라도 많다.
그런 나라 중 어떤 곳은 실제로 어떤 특정 주는 주당 70시간 이상을 일할 수 있는 나라도 많다.
즉 제도 자체로만 보면, 평균해서 근로시간 기준을 지키면 특정 주는 그보다 더 많이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자체를 무조건 나쁘다고 볼 건 아니다.
오히려 평균근로시간 자체를 줄이는 것 즉 현행 주40시간을 주35시간 등으로 줄이는 것이 사실은 더 중요할 수 있다.
문제는 앞서도 말했듯이 어떤 주에 바짝 일했다고 그 다음 주에는 원하는 때 연달아 쉴 수 있다거나 그런 보장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른바 포괄임금제 내지 간주근로시간제가 널리 퍼지면서, 바짝 일했을 때의 연장근로수당을 제대로 계산해주는 것도 아니고 바짝 일한 후에도 그냥 일반적인 근로시간 정도라면 포괄임금제 내지 간주근로시간으로 퉁쳐져 버리고 한 달 내지 몇 개월 평균 근로시간 총량규제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대기업이나 공공부문은 안 그럴 지 몰라도 중소기업들은 대부분 그렇다. 어떤 주에 바짝 일했으니 다음 주는 쉴 수 있다? 중소기업에겐 꿈같은 이야기다.
결론적으로 이런 거다.
제도 자체로만 보면 주 단위로 근로시간 상한을 엄격하게 정해둔 한국의 근로시간제도는 오히려 약간 경직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러다보니 그게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포괄임금제 등 온갖 편법을 통해서 어떻게든 빠져나갈 구멍을 만든다. 정부조차 그런 걸 용인했다. 대표적인 게 예전에 노동부가 행정해석으로 휴일근로시간은 주단위 근로시간 총량에서 제외시켰던 케이스다.
즉 휴일근로는 1주의 근로시간과는 별도였던 것이다. 이게 문제가 되다보니, 근로기준법에 '1주는 7일이다'라는 너무나 당연한 규정을 개정해서 넣을 정도였다. 개정안 이전에는 1주는 7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외국 사람들이 보면 코미디라고 할 것이다 ㅠㅠ.
솔직히 한국의 노동관련 각종 제도는 지나치게 복잡하고 유연성이 부족한 면이 강하다. 그러면서 온갖 편법이 난무한다.
근로시간만이 아니다. 임금체계도 복잡하다. 기본급과 통상임금이 다르다 (그러면서 연장근로수당이나 퇴직금 등등이 다 계산방법이 다르면서 복잡하기도 한 바람에 이 금액 계산을 놓고 그간 각종 소송 등이 벌어졌다).
게다가 최저임금 산입범위 문제도 있다. 최저임금에 통상임금인 정기상여금이나 복리후생비가 들어가면서, 기본급은 오히려 줄어들었고 그러면서 연장근로수당 중 50% 증가분만 통상임금 기준으로 계산해주고 원래의 100% 분은 줄어든 기본급으로 계산하는 편법이 지금 꽤 널리 퍼지고 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잘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럴 정도로 한국의 임금계산은 복잡하다 ㅠㅠ).
뭐 아예 포괄임금제를 통해서 연장근로수당을 별도로 계산하지 않는 경우도 많고, 노동자도 고정OT라는 일종의 편법을 선호하는 경우도 많다.
임금체계도 좀 더 단순화시키고 근로시간은 총량 자체를 줄이되 특정 주는 필요하면 더 일할 수 있게 하고, 뭐 이런 식으로 보다 단순하면서도 유연하게 제도를 정하면서, 그렇게 정해진 제도는 모두가 철저히 지켜야 한다. 그래야 제도에 대한 신뢰가 생긴다.
그런데 한국은 거꾸로다. 온갖 복잡하고 까다로운 제도 하에서 오히려 유연성도 없으면서 각종 편법만 난무한다. 그나마 노조가 있고 법을 신경써야 하는 대기업이나 공공부문은 낫지만, 그런 거 없는 중소기업은 제도의 혜택은 거의 못 보면서 편법의 피해만 입는다.
즉 이런 복잡한 제도와 편법을 허용하는 관행이 안 그래도 심각한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더 강화시키는 측면이 있다.
제도는 보다 단순하고 유연하게 하되 그걸 철저히 지킨다는 상호신뢰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신뢰가 거의 없는 한국에선 제도개선 내지 변경 자체가 어렵다.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니까.
노동문제만이 아니라 다른 것도 비슷한데, 그러다보니 제도에 대한 논의보다는 누구 나쁜 놈 아니 네가 더 나쁜 놈 뭐 이런 식의 논의만이 판치는 게 현재의 한국이다 ㅠㅠ.
주 69시간 논란이 과장된 측면이 있다니까, 그럼 과로사를 조장하는 주69시간이 아무 문제 없다는 거냐는 반론이 있어서.
주69시간이 아무 문제없다는 거 아닙니다. 사실 지금의 주64시간도 당연히 문제가 있지요. 하지만 이건 상시적으로 주69시간이든 주64시간이든 하는게 원래는 아닙니다. 일이 많은 어떤 주에만 그렇게 한다는 것이고, 그렇게 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3,4일을 연달아 쉬면서 3개월 또는 6개월 평균은 주당 40시간을 맞추라는 게 원래의 취지입니다.
즉 평균근로시간을 지킨다는 전제 하에, 어떤 특정 주에는 주64시간이든 주69시간이든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고, 이건 유럽 같은 외국에서도 그렇게 하는 나라 많다는 겁니다. 유럽의 경우 일많은 어떤 주는 주당 78시간이 가능한 곳도 제법 있습니다 (다음 근로일까지 11시간 휴식을 보장하면 되니까 하루 근로시간이 최대 13시간입니다. 이걸 6일하면 주당 78시간이지요).
이런 극단적인 경우를 기준으로 그것만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건, 오히려 평균근로시간 내지 총량의 과도함이라는 더 핵심적인 문제는 시야에서 사라지게 만듭니다. 사실 나는 평균노동시간을 오히려 주35시간 등으로 줄이는 게 더 중요하다는 입장입니다. 노동시간 총량을 줄이는게 더 중요하지, 어떤 특정 주에 69시간 하는 것만 강조하는 건 오히려 문제의 핵심이 아닌 곁가지에만 집중하면서 핵심을 놓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언급했듯이 지금도 어차피 64시간까지는 가능한데, 그렇다고 지금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게 아니잖아요.
게다가 이 64시간 탄근제는 문재인 정부 때 단위기간 확대 등 그 적용이 강화된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64시간은 별 문제없고 윤석열 정부의 69시간은 절대악인 것처럼 떠드는 게 좀 웃긴다는 게 솔직한 제 심정입니다.
물론 계속 말했듯이, 현실은 주69시간이든 주64시간이든 다 문제입니다. 원래는, 주64시간이든 주69시간이든 근로자대표와 노동자 개인의 동의를 얻게 되어 있거니와 그렇게 빡세게 일하고 나면 그 다음주든 언제든 노동자가 3,4일 정도 연달아 쉬면서 평균노동시간은 주40시간을 맞추어야 합니다. 이게 정확하게 엄격히 지켜진다면 사실 어떤 주는 주당 70시간 하고 그 다음 주에 연달아 3,4일 쉬는 걸 선호하는 사람들 제법 된다니까요. 문제는 실제로는 빡세게 일한 다음 주에는 연달아 3,4일 쉰다든지 평균노동시간을 주40시간으로 제대로 맞춘다든지 뭐 그런게 현실에선 별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지요 ㅠㅠ.
사실 유럽의 경우 주78시간도 가능하다고 했지만, 유럽에서 이런 탄력적 근로시간제 도입은 대부분 평균근로시간 단축과 함께 도입된 것입니다. 즉 주당 평균노동시간을 주40시간에서 주35시간 등으로 줄이면서 그 대신 어떤 주에는 이를 초과해서 일할 수 있게 한 것이지요. 노동시간 총량을 줄이는 대신 특정 주의 초과근로를 허용한 일종의 절충안이었는데, 한국은 총량을 줄이는 논의 없이 특정 주의 초과근로를 허용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라는 게 더 핵심적인 문제이고, 이는 문재인 정부든 윤석열 정부든 별 차이 없습니다.
정말 문제의 핵심이 뭔지를 생각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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