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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칼럼]

[한마음 칼럼] 교회, 너 바벨론아! 09

by 농민만세 2023. 4. 22.

한마음 칼럼 : “교회, 너 바벨론아! 09”

그러니 우리는 이렇게 묻는다. “과연 오늘의 우리 교회들 그러니까 목사들과 장로들 그리고 교인들은 하느님의 나라/질서/통치/풍토가 하늘에서처럼, 하늘의 질서와 방식으로 이 ‘땅’에도 진짜로 이루어지시기를 목적하고 교회당에 모이는 걸까? 아니면 그걸 매우 그럴듯하게 표면에 내세워 강조하면서 결국은 자신들의 번영과 성공을 목적하는 걸까?”

물론 어디에도 완전한 교회는 있을 수 없지만, 최소한 그것을 가장 우선하여 갈구하는 모임일까 아닐까? 이를 그냥 분별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외식(外飾) / 연기(演技) / 자기 연출’ 기능을 첨예하게 발달시켜 왔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마 7,16)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마 7,20)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하신다.

그러니 수십 년 목사요 장로요 또 교인으로 살아온 그들의 일상에서의 가치관과 태도를 보아야 한다. 위선적인 가면이 아니라 그들 일상생활 속의 평범한 ‘먹고 마시는’ 일들로 분별해야 한다. 나아가 우리 인간의 가장 적나라한 면인 ‘금전적 상식’을 보면 된다. 목사이든 장로이든 특히 교회 재정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는가를 살펴보면 그 나무와 뿌리의 정체를 알 수 있다. 대부분의 교회 재정 사고는 교회 재정을 ‘공짜 돈’으로 당연하게 여기는 비상식에서 온다.

분별해야 하는 대상이 교회라면 그들의 공개된 예배나 친교 모임이 아니라 매우 적나라하게 그들의 ‘재정’이 어떻게 관리되고 또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보면 된다. 물론 이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누구든 그 교회의 세례교인이라면 그걸 요청할 권리가 있다. 만일 거부하면 그들을 떠나라.

신학교에서 한창 ‘종교개혁사’를 배우고 있을 때, 우리는 거의 매일 밤늦도록 도서관을 지키고 공부하다가 학교 관리 집사님이 피곤한 얼굴로 올라오셔야 기숙사로 내려가곤 했다. 캄캄한 밤길을 걸어 내려가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었다. “지금껏 교회는 갱신된 적이 없는 거구나. 다만 분열되었을 뿐!” 미안하지만 교회는 갱신되지 않는다. 기독교는 결단코 회개하지 않는다. 끝없이 포장할 뿐.

오늘날 교회들은 정말로 자신들의 ‘구원’을 갈망하는 걸까? 교인들은 정말로 자신들의 구원 문제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걸까? 설교가 생업인 목사들은 자신의 구원 문제에 매여 설교하는 걸까? 만약 그들이 ‘번영’을 목표하는 거라면 요한 계시록은 이렇게 말씀한다. “음녀 바벨론의 딸들, 너희가 바벨론이다!”

헌금이 넘쳐나는 큰 교회들은 미안하지만 결/단/코/ 교회일 수 없다. 적어도 그들은 이걸 각오해야 한다. 헌금이 모자라는 작은 교회라도 그들의 번영을 꿈꾼다면 역시 결단코 교회일 수 없다. 다만 교회다움을 지켜낼 가능성이 조금은 있을 뿐이다. 지금껏 교회들은 아니 모든 종교들은 크든 작든 모두 ‘은과 금’에 취해 망해 왔다. /계속 (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