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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칼럼]

[한마음 칼럼] "어르신 문해교실 실패기"

by 농자천하/ 2019. 6. 22.

 

어르신 문해교실 실패기

부임 초에는 인근 마을 아이들 공부방과 어르신 문해교실을 계속했었다. 마을 어르신들께 어떻게 하면 성서의 이야기들을 맘껏 들려드릴 수 있을까 고심을 거듭했다. 마침내 생각해 낸 것이 교회학교 교육자료인 ‘융판 그림 설교’였다.

컴퓨터는 물론 컬러 TV도 없던 시절에 그것은 최상의 시청각 교재 중 하나였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시절부터 주일학교 교사 노릇을 아주 열심히 해왔는데, 특히 여름성경학교를 맞으면 온갖 시청각 자료들을 전부 따라 만들어 아이들을 가르쳤다. ‘융판 그림 설교’란 보플 거리는 검정색 융 헝겊을 판지에 펼쳐 세워놓고 그 위에 그림 조각을 붙였다 떼었다 하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각교재이다. 총천연색으로 그린 그림 조각 뒤에 거친 사포를 작게 잘라 붙여 놓으면 융판에 쉽게 달라붙고 떨어진다.

잔뜩 먼지 앉은 오래된 상자를 열어보니 일일이 그리고 만들어 사용했던 많은 자료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마을 어르신들한테 가장 큰 인기를 끈 건 할머님들의 처지와 비슷한 ‘룻의 이야기’였다. 아브라함 이야기도 상당한 시청률(?)을 기록했다. 한 편씩 이야기를 마칠 때마다 아쉬워하며 아낌없이 박수쳐 주셨다. 어떤 어르신이 어찌나 감격하셨는지 자기도 모르게 외치셨다. “‘태조 왕건’보는 거 같네!!” 마침 어느 TV 방송국에서 인기 높았던 사극을 막 종영한 때였다.

여세를 몰아 우리는 ‘어르신 문해교실’을 시작했다. 대도시 서점을 수소문하여 초등학교 1~3학년 교과서를 구해왔다. “읍내 버스 타는 데서 ‘남면’이라는 글자만 알아도 좋것슈. 남면 가는 게 어떤 거유? 하고 평생을 물어보고 타는 게 엥간 속상허유.” “난 헌금봉투에 내 손으로 내 이름 좀 써봤으면 원이 읎것슈.” “막 시집 와서 우리 영감한테 글자 모른다고 구박당한 게 안적도 섭섭하유.” 하시며 잔뜩 기대에 부풀어 참여하셨다.

그런데 웬걸?! 첫 시간부터 어르신들은 마구 쏟아지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다들 고개를 이리저리 휘청거리며 주무시는 게 아닌가! 미리 사다가 냉장고에 넣어둔 아이스크림을 꺼내 하나씩 드리니 갑자기 말짱해지셔서 또 한바탕 이야기꽃을 피우다 말씀하신다. “‘태조 왕건’이나 또 해 주시우!” 그렇게 융판 그림 이야기를 몇 번씩 반복하며 겨우 버텨낸 우리의 한글교실은 두 학기를 간신히 채우고 그만 중단하고 말았다.

당신들의 이름 세 글자를 손수 쓰시게 되었고, ‘남면’이라는 글자는 이제 분명히 알아보게 되자 급격히 의욕이 떨어지셨다. 게다가 공부만 시작하면 다투는 목소리가 높아지셨다. 쉬운 글자도 못 쓰는 걸 보고, 받침 없는 글자나마 읽고 쓸 수 있는 두어 분이 속 터진다고 자꾸 가르쳐 주려고 참견하기 때문이었다. “그깟 글자 쬐끔 더 아는 게 벼슬인겨?!” 매 주일 꾹꾹 눌러 이름을 써놓으시는 헌금 봉투를 볼 때마다 그 일이 생각난다. 그때 왜 ‘우열반’ 나눌 생각을 못 했던지. 그저 건강히 오래 살아 주십시오!



/계속 (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