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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칼럼]

[한마음 칼럼] 나는 왜 농목으로 사는가? 10

by 농자천하/ 2019. 10. 27.



한마음 칼럼 : “왜 농목으로 사나? 10”


주일예배에 늦게 오는 교인을 챙기느라 ‘대표 기도’ 시간에 보니까, 많은 어르신들이 고개를 들고 눈을 뜨고 있어서 깜짤 놀랐다는 것이었다. 물론 기도할 때 반드시 눈을 감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다른 교회에서는 볼 수 없는 일이아닌가. 무슨 일인가 싶어 다음주일부터 살펴보았는데 너무나도 기이하고도 기막힌 일이 매주일 일어나고 있었다.


거의 모든 노인 교우님들이 당시 시무 장로와 은퇴 전도사가 기도하는 것을 노려보듯 바라보는 것을 당연히 여기고 있었다. 저녁 예배 때 승합차 운행하며 진지하게 물어 보니, 솔직한 이야기들을 했다. “청산유수같이 기도만 하면 뭐한대유?” “기도 잘하네 하는 이들, 동네에서는 에지간히 교회 욕 보이는 사람들 아닌감?” “그네들이 기도하는 소리가 하도 듣기 싫어 교회 오기 싫을 때가 많더만유!” “우덜두 동네에서 다 듣는 얘기가 있슈!”


만 4년 동안의 지역아동센터를 어쩔 수 없이 접게 되었고, 군청에 지역사회 기관으로 정식 등록하여 지원을 받으려던 시도도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특별 기도회 모임도 그만 두고는 ‘신자학교’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심방을 가면 인상을 잔뜩 쓰고  ‘뭐 하러 왔슈? 사람들이 기도 받으러 나한테 오는 데?!’라는 권사님이나, 한 밤중에 교회 온풍기 기름을 통에 받아 손수레로 실어가고 사택 연탄을 수십 번씩 자기 집으로 실어나르고는 겨우 스무장 가져 간 거라고 우기는 당시 시무 장로가 예상대로 또 나무라는 말을 했다. ‘교회는 기도가 살아야 한다’느니, ‘교회에 기도 소리가 멈추면 안 된다’느니. 그 권사님은 아예 집 앞에 도착한 승합차에서 내릴 생각도 않고 시트를 마구 두드리고 차 바닥을 구르며 소리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제 풀에 지칠 때까지 그대로 기다려야 했는데, 그후 새벽기도회에서 그 권사님은 설교 시간에 노골적으로 고개를 벽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사택에 거의 매일 아침마다 그 시무장로가 출근하기 시작했다. 아이들 아침 밥 챙겨 학교에 보내기도 바쁜 시간에, 그 좁은 사택 거실에 들어와 앉아 한창 청소년기를 살고 있는 아이들이 아닌 말로 방음도 전혀 안 되던 화장실에 들락 거리는데 자꾸만 붙잡아 세워놓고 말을 걸었다. 아내에게는 커피를 타 와라, 설탕은 몇 숫갈을 넣으라고 시켰다. 나의 인내심은 점점 한계점에 이르고 있었다. 두어 주간 그러더니 아니나 다를까 주일 예배 직전에 승합차를 운전하고 와서 성의를 갈아입느라 정신이 없는데, 방에 들어와 앉았다. 한참을 무어라고 혼자 기도하더니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새벽기도 때마다 하나님이 교회당을 건축하라고 하신다나 뭐라나. 그리고는 “이따가 예배 광고 시간에 교회당 건축하기로 했다고 하고, 나를 건축위원장에 임명한다고 하시우!” 이게 뭔말?! 나는 단칼에 잘랐다. “교회당 건축같이 중대한 일을 제직회 결의도 없이 시작하라고요? 그렇게는 못합니다!” /계속 (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