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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신학연구소/교회와 협동조합

교회에서 협동조합 만들기?! /1

by 농민만세 2015. 9. 5.

 

교회에서 협동조합 만들기?! /1

교회에서 웬 '협동조합'이냐?는 질문을 종종 듣습니다.

2012년은 세계 협동조합의 해였고, 우리 나라에서도 '일반 협동조합​' 관련 법안이 발효되었습니다. 이후 이 협동조합이야말로 '교회'가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사회운동 중 하나라고 보았고, 지금까지 고군분투, 실로 어렵사리 '한마음살림협동조합'을 설립 -> 법인 등기를 마치고 이제 사업자 등록을 앞두고 있습니다. 참으로 멀고 먼 길을 혼자서 걸어왔습니다. 물론 이제부터가 시작이기도 합니다. 뭐든 그렇지만 설립하는 일만큼 <경영>해 가는 일이 중요하니 말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남들 다 하는 일인지 모르지만 그 동안의 경험을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1. 교회와 협동조합 (1)

 

이에 대하여 이미 여러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의 관심이 고조되어 왔고 많은 전문적인 논의가 있어왔습니다. 나는 한 사람의 농촌 마을 목회자로서 그런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 어떤 이유로 교회의 협동조합 운동에 관심을 두고 실천하게 되었는지를 그 배경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첫째, 그것은 나의 목회 현장 곧 우리교회가 세워져 있는 지역사회에 대한 채무감 때문입니다. 수십 년 동안 극단적일 만큼 지역사회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 채 지속적으로 상식을 넘어서는 지탄과 욕설의 대상이 되고 있던 우리교회의 현실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15년 동안, 전반기 5년은 지역사회의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을 위한 공부방 - 컴퓨터교실 - 온갖 현장학습 - 악기교실 - 작은 도서관 - 중학교 동아리 활동 지원 등을 실시하였습니다. 교회 승합차를 아동보호 차량으로 개조하여 정식으로 등록하였고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간식과 점심을 먹여가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서울의 교회들 도움을 받아 축호전도 의료선교 경로잔치 등(물론 교인 수 늘리려는 전도는 아니었습니다) 거의 안해 본 것 없을 정도로 진력하였습니다. '이런 교회에 왔으니 너도 똑같은 ㄴ 아니냐!'고 대놓고 쌍소리를 하고 교회당 문을 발로 차고 멱살을 잡고 품고 다니는 부엌ㅋ도 꺼내 보여주며 억울함을 토로하는 일들이 있었지만 아무 소리 않고 그저 머리 숙여 인사하면서 3년째가 되니, 주민들이 모인 자리에서 교회에 대한 욕설들, '씨ㅂㄴ의 교회' 또는 '도ㄷㄴ 교회'라는 신랄한 욕설이 난무하던 것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대략 다음 5년은 교회 내부 사람들을 바로 세우는 일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겠지만 보통의 상식으로는 믿지 못할 일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터졌고 그런 일들이 누적되어 심각한 부정맥을 앓게 되어 만 2년 동안 누워서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주일 예배를 시작하기 전 차량 운행을 하고 온 것만으로도 체력이 완전히 바닥 나서 부들부들 떨면서 간신히 강단을 붙잡고 표시내지 않으며 버텼습니다. 팔과 손 발, 온 몸에 보이던 핏줄이 싹 사라지고 병든 중학생 아이의 몸처럼 되었습니다. 교회당과 목사관은 날로 피폐되어 비가 줄줄 샜지만 모두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고, 그런 건강 상태로 수리 수선하며 벼텼는데 지붕에서 두 번 떨어지고 골절과 부상이 계속 되었습니다.

지난 5년은 생각도 하지 않았던 교회당을 이전하게 되면서 이제는 기억력까지 급격히 나빠질 만큼 모든 역량이 소진되었지만, 교회를 자신들의 뒷간처럼 여기던 자들이 스스로 이탈하게 되고 평화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역 주민들이 적극 응원해주실 만큼 지역사회와의 관계도 급속히 개선되었습니다. 12년 전 도시 교회의 도움으로 200명 분의 음식을 마련하고 경로잔치를 열었는데 주민들이 대놓고들 외면하고 막말을 해 댄 덕에 이웃 어르신 단 한 분 참석을 했을 정도였는데, 200명이 훌쩍 넘는 주변 4개 마을 어르신들이 성황리에 참석해 주시는 경로잔치를 벌써 두 번이나 치르면서 꿈을 꾸는 것 같았습니다. 농촌목회? 그저 버티는 게 이기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겪으면서 마음은 더욱 급해졌습니다. 40여 년의 역사 동안 우리교회는 200명이 넘는 청년들과 젊은 교인들을 도시로 내보냈고, 지난 15년 동안만 해도 40명이 넘는 청년들과 젊은 교인들을 도시로 내 보냈습니다. 6~70년 씩 농촌에서 살아오신 지역 주민들이 이제 교회를 찾아나온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고 남은 교우님들은 한 해가 다르게 연로해지고 있고, 더구나 유동 인구가 거의 없는 농촌지역의 면소재지라는 특성 등으로 그야말로 <일몰 교회>의 전형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교회는 그 주변 지역사회의 원주민들의 교회가 되어 '지역사회의 교회'가 되지 않으면 그 존재 이우가 없는 것이라는 '지역사회 선교적 관점'으로, 첫째는 "교회를 이대로 사라지게 놓아 둘 수만은 없다, 무엇이든 어떻게든 해야 한다"는 것과 또 하나는 "남아 있는 교우들을 그저 이대로 둘 수만은 없다"는 쫓기는 마음을 가지고 그냥 한 주 두 주 살 수는 없었습니다.

주변의 어떤 동료들은 그럽니다. "그 교회가 그래도 이 목사가 은퇴할 때까지는 그럭저럭 버틸만 하지 않느냐? 그러다가 은퇴하면 되지 무슨 일을 그렇게 만들어 고생을 사서 하느냐?" 또 어떤 이는 아예 "왜, 우리들 다 죄인 만드냐?" 합니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 무슨 일도 할 수 없는 게 가장 두렵습니다.

 

어떻게 하면 교우들과 지역 주민들을 살 맛나게 할까? 그걸 성서가 가르치는 대로 할 수 없는 걸까? 물신숭배에 쩔어 살지 않고 몸과 마음 모두 건강히 살다가 건강히 가는 그런 것을 나눌 수는 없는가? 그것의 전형, 예수님 방식으로 살고 죽기를 함께 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는 걸까? 기실 그렇지 못한 것은 비단 가난해서, 몸이 아파서 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정녕코 서로 자신처럼 아끼며 이해하고 서로 위하고 돌보며 함께 살아가는 것을 훈련하지 못해서 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교회가 이 지역사회에 세워진 책임, 그 빚을 다 해야 한다는 명쾌하고 쉬운 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성서 이곳 저곳에서 숱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고 말입니다.

 

그래서 협동조합을 붙잡았고, 서울로 천안으로 대전으로 부여로 부천으로 심지어 고흥까지 다니며 이론을 공부하고 현장을 둘러 보았습니다. 하지만 어디에도 나의 이 농촌 현장에 딱 맞는 모본은 없었습니다. 고군분투, 교우님들이 질릴 정도로 만 2년이 넘도록 매 주일 협동조합을 이야기했습니다. 협동조합 창립총회 공고를 냈다가 미루기도 여러 번, 그래도 많은 진전이 있어서 지난 겨울을 지내면서 드디어 교우님들 30여 명이 설립에 동의하며 1차로 도장을 찍어 주셨습니다. 요즘 세상에 더구나 농촌에서 누가 내민 종이에 도장을 찍어준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는 분은 알 것입니다.

드디어 2015년 1월 25일 창립총회를 열고, 금년에 제대로 시작한 농사 준비/농사 공부에 쫓기면서, 설립 신고 서류를 작성하는 데만 2개월, 지난 3월 27일 충남 도청에 설립 신고를 마쳤고, 4월 22일 설립 신고필증을 받았습니다. 엄청난 농삿일(할 줄 몰라서 더 심각했음)에 시달리면서 교회 일, 그리고 충남노회협동조합, 전국 마을목회운동, 갈릴리신학대학원에서의 현장목회 연구 등에 쫓기면서, '이걸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건가?' 묻고 또 물으면서, 법무사 비용을 아끼려고 우여곡절 끝에 법인등기 서류를 마련하여 지난 8월 31일로 <한마음살림협동조합>이 법인으로 출발하였고, 사업자 등록을 앞두고 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이것입니다. 함께 어깨동무하고 살맛을 나누며 살아갈 이웃들의 도움이 실로 절실합니다.....

 

 

그리고 나의 개인적인 목표는 이것입니다. 최소한 3년 후에는 이 어설픈 목사직을 진짜로 내려놓고 장로로 집사로 충성하기! 생각만 해도, 제대 날짜 앞둔 군인 아이처럼 행복해집니다...

 

 

 

 

 

 

 

 

 

 

 

 

 

 

한참 걸리겠지만 나머지 글은 다음과 같이 쓰겠습니다.

2. 교회와 협동조합(2)

3. 기독교를 넘어 예수교?! 등....

하지만 이건 결코 전도용 글쓰기가 아니라는 게 중요합니다 ㅡ,ㅡ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