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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나눔

코로나19 사태가 드러낸 진실들

by 농자천하/ 2020. 5. 10.

https://www.facebook.com/100000108690563/posts/3395461840467406/

/박충구 전 감신대 교수


코비드-19 사태가 드러낸 진실들

1.우리의 삶에는 불확실성이 있다는 사실

2019년 12월 31일 공식적으로 인지된 코비드-19 감염병을 누구도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했다. 우리 삶에는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인류사회는 일차적으로 정체모를 바이러스의 출현에 대한 예고를 받았다. 사스나 메르스 바이러스의 출현이 일종의 예고편이었던 셈이다. 향후, 코비드-19보다 더 강력한 바이러스의 출현 역시 충분히 예상되는 일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생각하면 두렵다. 우리가 생명 세계의 안정성을 파괴하면 할수록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질 것이다. 예컨대 지구온난화가 새로운 병원균을 불러올 수도 있고, 대기 오염이 박테리아를 더욱 위해한 박테리아로 증식시킬 수도 있다. 불안한 미래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하여 문명사적 성찰과 과학적 연구가 요구된다.

2. 우리 삶은 자연과 이웃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국가, 인종, 성, 성적 취향, 경제적 능력, 지적 축적 등의 다양한 차이를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생명 구조 안에서 상호 의존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코비드-19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차이와 구별을 무시한다. 다만 그가 누구든지 관계를 통하여 전염된다. 우리가 생각하던 재래의 관계 구조를 재편성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우리 인류사회를 몰아 넣었다. 코비드-19 감염 현실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 트럼프 정권이 발원지를 중국 우한으로 확정하고 중국에게 책임을 묻는 태도는 매우 미성숙한 짓이다. 코비드-19는 국적과 국경을 가지지 않는다. 따라서 감염병 극복을 위하여 인류사회가 연대해야 옳다. 이 기회를 이용하여 돈을 벌려한다든지, 자국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려는 시도와 같은 것은 인류 공동성을 파괴하는 일이다.

3. 개인이나 집단의 책임성이 강력히 요구된다는 사실

얽혀있는 우리 생명의 얼개를 생각한다면 한 사람의 무책임한 행동이 다수의 사람들의 생명의 질을 바꾸거나 심지어는 죽음까지 초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태원 감염 사례는 개인의 무책임한 사고, 행동 양식이 그만의 삶의 영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나의 사고, 나의 행위는 다른 사람의 생명에 큰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이러한 관계 구조를 인식하며 살아야 한다는 당위 앞에 서게 되었다. 그 어느 시대보다도 책임의 윤리가 강력하게 요구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이 사실을 받아들일 때에만 코비드-19 사태의 조기 종식과 감염병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개인의 자유로운 행동이 타인의 죽음을 초래하는 경우 이에 대하여 책임을 묻는 새로운 법적 조치들이 강구되어야 한다.

4. 코비드-19는 사회 경제적 취약층과 노년의 생명에 치명적인 위협이라는 사실.

생존 조건을 충분히 갖춘 사람은 없다. 다만 가진 것 없는 이들이나 약 25%의 치사율을 보이는 65세 이상의 노약자들을 배려하는 국가 사회의 정책이 강력하게 시동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생존의 희망을 포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게 나올 것이 분명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코비드-19 이전에 자살율이 OECD국가 중에서 콜롬비아 다음으로 높았다. 삶을 예찬하고 긍정하는 문화보다 죽음으로 몰아가는 문화가 강한 사회라는 의미다. 이런 우리 사회에서 코비드-19는 삶의 어두운 그늘 아래 있는 이들을 더욱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고 있다. 정부는 특단의 대책을 세워 이들에게 정신적, 물질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5. 만병 통치 종교의 거짓 선전이 드러나는 계기가 왔다는 사실

사실 이 문제는 이 직면해야 했던 문제다. 목사가 하나님을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선전하거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적 축복을 부어주는 존재로 가르쳐온 신화적 논리들은 아주 미성숙한 신자들에게만 먹혀 들어갈 것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하던 코비드-19에 걸려 28만 명의 생명들이 이미 죽임을 당했고, 앞으로도 무수한 사람들이 죽음을 겪을 것이다. 생명이 위협받고 있는 이 정황에 대하여 우둔한 목사들이 남의 일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재앙”이라는 허튼 소리를 하거나, “믿는 자는 하나님이 지켜 주신다”는 거짓 약속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목사들의 혀끝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2차 대전 당시 홀로코스트를 겪은 이들은 알고 있다. 따라서 신앙을 가진다는 것을 전능하신 하나님의 지켜주심과 축복을 믿는 것이라고 더 이상 설교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종교를 빙자하여 초능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믿게 만든 거짓 하나님은 코비드-19 사태에서 부도나신 하나님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생활도 진지하게 점검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지옥으로 만드는 존재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다. 나치의 출현도,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도 결국 인간이 초래한 것이다. 독일인들이 히틀러 같은 자를 그들의 지도자로 선택한 것이 무수한 생명이 살상 당하는 결과를 초래했던 것처럼, 우리가 편안함과 호화스럽고 사치한 삶을 살기 위하여 자연을 고문한 결과 새로운 변종 병원체가 생겨나는 것이라고 나는 보고 있다. 하나님도 어쩔 수 없어 하신다.

6. 어느 길을 가야 할까?

몇 가지만 생각해도 가슴이 답답하다. 소위 선진국 국민들이 자기들만 잘 살려고 당분간 몸부림칠 수는 있겠으나 가난한 대륙이 무너지면 그들도 결국 무너지게 될 것이다. 오염된 도시를 떠나 산 속으로 피신해도, 머지않아 그 산 속도 오염될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므로 종교는 이제 축복장사 그만 하고, 오히려 삶의 의미를 생명 경외의 윤리를 통해 찾도록 그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나는 본다. 부자들이나 가진 자들, 대형 교회 목사들은 망해도 당분간은 잘 살겠지만, 그래서 문명사적인 반성 없이 “그대로!”를 외치며 평소와 다름없는 메시지를 남발할 수도 있겠으나 그런 짓은 시간 속에서 무의미한 것이 될 것이라고 본다. 어쩌면 그런 행위는 제도적 종교의 종말을 더욱 재촉하는 짓일 수도 있다고 본다. 거짓으로 판명된 자리에서 계속 거짓을 주장하는 격이 될 것이므로 그렇다.

나는 코비드-19 사태에 대하여 “우연의 계기“가 생명을 도말하는 사건을 초래하기도 한다는 호트(John Haught)의 통찰도 염두에 둔다. 인류사회가 겪게 될 불운한 사건은 인간의 책임이든지, 아니면 우연의 계기가 불러오는 것일 수도 있다고 그는 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내세우며 보호와 돌봄의 필연성을 믿으라 하는 허설은 자연과학적 세계관과 역사를 소화하지 못하는 허약한 신화적 신념이 될 수도 있다. 우연의 계기에서 다가오는 인류사적 불행이 있다면 결국 하나님의 전지전능한 존재는 존재하지 않던가, 아니면 인류의 비극을 바라보면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무능한 하나님이든가, 유능함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안 하는 아파테이트 하나님일 수밖에 없다. 이런 자리에서 우리가 믿을 수 있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 나는 허황된 추상적 관념이 만든 전능하신 분이 아니라, 사람이 궁여지책으로 설정하여 만든, 우주를 설계하고 자신의 뜻대로 이끌어가는 분이 아니라, 생명을 사랑함으로 생명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고 괴로워하시는 하나님, 곧 자기 아들이 죽어가는 현장을 무능하게 바라보던, 그리하여 자기 자신도 함께 십자가에 달리는 그 사랑의 하나님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자신들만 영생과 복락을 누리려는 종교의 구성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함께 얽혀진 생명세계 안에서 생명을 살아가는 동안 다른 생명들을 따스하게 배려하고 사랑하며 사는 일, 그것이 코비드-19의 위협 속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삶의 과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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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의 거짓과 참을
기독교 설교의 사기성을
판별하는 기준, 홀로코스트 신학

홀로코스트 이후의 신학,
신학적 질문과 고민들을
아예 모르거나 관심도 없다면

그게 바로 가짜 사이비 기독교
순진한 자들의 욕망을 후려먹는
전형적인 사기범들의 수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