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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나눔

목사 후보생 선발에 특히 개신교는 목숨 걸어야 산다, 아이고,, 이거 남의 얘기가 아니다ㅜ,ㅜ

by 농민만세 2020. 8. 26.

https://www.facebook.com/100002765695774/posts/2810405015728327/

/ 이주혁 의사

-- 의사는 공부 잘 하는 애가 해야 된다고? --

전략

오히려 시험은 지독하게 많은 부작용을 양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걸 통과해서 올라온 사람은, 보상심리를 갖고 빠득빠득 반사 이익을 얻어내려고 기를 쓰게 된다. 사법고시를 치고 연수원을 거쳐 여러 '평가'를 거쳐 고위직에 올라온 검사장들과 사법 농단 판사들이 무엇을 했는가? 그들은 늘 보상 심리에 쩔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것을 받아내려는 욕망만 키웠다.

시험만이 가장 적합한 사람을 뽑을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그 '시험 패스'가 자신에게 부여한 지위를 특권으로 단정하고 봉사는 커녕 멀쩡한 사람조차 더 이기적으로 변화시켜 버리곤 하지 않았는가?

오로지 시험만으로 가치 있는 자리를 약속하는 그런 우리 사회의 시스템은, 사교육비, 과외비 지출과 세습, 불공정, 기타 교육이 마땅히 요구해야 할 인격과 품성은 외면하는 채 점수와 경쟁에만 매몰시키는 사회를 만들어 왔다. 지옥도 이런 지옥도가 없다.

그걸 통과해서 '쟁취한' 사람들에게 우리는, 대체 어떤 인격과 인품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중요한 자리일수록 더 더 공동체를 생각하고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려 노력하는 인물을 찾아내는 데 심혈을 기울여야 되는 것 아닌가? 우리의 시스템이 통째로 잘못돼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나는 묻는다.
누가 의사를 하는 게 맞는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IQ 160 이상인 그런 사람 필요 없다.
그런 사람은 연구소에 들어가서 실험이나 연구를 해야 한다. 의사는 아픈 환자를 보면서 그에 공감하는 능력이 필요하지 머리가 수재일 필요가 없다.

의과대학 공부. 6년동안 죽어라 외우는 것만 시켰다.
해부학 시작하자 마자 인체 곳곳의 구조물들 암기 시작해서 약리학에서 암기, 생화학에서 암기, 발달과정과 병태생리와 치료 방법과 메커니즘과 모든 것이 암기였다.
친구들끼리 얘기하곤 했다. 이건 그냥 외워서 쓰는 기계가 되라는 거네 우릴 보고..

그런 기계적인 의과 교육 과정도 지금 많은 부분 개선되고 있으나, 나는 의사 선발에서 암기 능력과 시험 점수만을 요구하는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사는 누가 해야 하는가? 시험 거부를 하고 거꾸로 챌린지를 SNS에 날리는 학생들을 보며 아연실색하는 시민들도 많이들 묻는다. 저런 사람들이 장래 의사가 되면 어떻게 하느냐면서.
내 생각은 이렇다.
급우들의 추천을 넣는 것이다.

초등학교때부터 기재하는 것이다. 담임선생이 아이들한테 써서 내도록 한다.
예컨대 급우들을 위하는 마음. 몇 점?
이주혁 10점 만점에 5점.
아픈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
이주혁 10점 만점에 2점.
도시락 못 챙겨운 친구와 나눠 먹는 태도. 양보하는 태도.
이주혁 10점 만점에 4점.

친구들이 준 점수가 이렇다면. 이주혁은 의대에 지원하기 힘들어지는 것이다. 이런 예뿐 아니라 여러 가지 시스템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근데 예컨대 이주혁이 수학 점수가 좋다. 그러면 수학 학자가 되도록 길을 열어주는 게 맞다. 그게 사회의 시스템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공공의대 신입생을 뽑는 방식에 대해 말들이 많다.
나의 요점은 이렇다. 높은 점수 = 높은 지위. (무엇이든 할 수 있어)
이런 등식을 빨리 해체시켜야 한다. 이런 등식이 존재하는 한 우리 사회는 높은 지위에 올라갈수록 더 윤리적으로 무감각해지기만 한다. '한낱' 검사장이 얼마나 국민과 정의를 무시하는지 돌이켜 생각해 보라.

하물며, 아픈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가 어찌 높은 점수만으로 선발될 수 있단 말인가? 높은 인격과 품성을 가진 이들이 필요한 것이다. 사회에서 그런 시스템을 짜 놓지는 않고, 그저 시험 선발 과정만 만들어놓고 '의사들이 왜 저럴까'라고 한탄을 해 보았자 늦은 것이다.

또 하나, 한국의 의료가 발전되었다고들 하지만, 치료의학에서만 그렇다.
질병 관리의 또 하나의 축인 예방의학에서 우리는 굉장히 뒤떨어져 있다.

예방의학을 발전시키려면 공공 보건이 중요해진다. 공공 보건은 공무의 영역이기도 하다. 즉 반 이상의 의사들이 준공무원처럼 근무하는, 그런 형태로서 국가 보건의료 판을 아예 다 새로 짜야 한다.

공공의대는 그 발가락 끝자락 만큼의 비중밖에 안 되는 시작점에 불과하다. 서둘러서 될 일도 아니다. 100년 대계를 세우고, 우리 뒤의 세대를 위해 몸 전체를 다 바꾸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