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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나눔

"낡아 해진 성서를 읽으며 예수를 커닝한다"/박충구

by 농민만세 2020. 9. 12.


https://www.facebook.com/100000108690563/posts/3761321853881401/

/ 박충구 교수

숨어계신 하나님

요즘 혼자서 예배드린다. 십자가를 가운데 세우고, 두 촛대에 조용히 불을 밝히고, 묵상 속에 나를 맡긴다. 하느님은 여전히 알 수 없다. 그의 존재는 밝히 드러나지 않는다. 성서를 읽으며, 성서에 담긴 예수의 삶에서 하느님을 겨우 엿볼 뿐이다.

예배에선 예배자 자신이 드러난다. 정의를 말하면서 불의가 있고, 사랑을 말하면서 미움을, 평화를 노래하면서 불화하고, 하느님 앞에서조차 불경하다. 엉킨 실타래 같은 자아가 드러날수록 더 부끄러워 침묵한다. 이사야의 심경이 이해된다.

낡아 해진 성서를 읽으며 예수를 커닝한다. 내게는 예수가 거룩하지 않다. 하느님보다 사람을 닮아서다. 다 드러나지 않는 하느님께 나는 깊이 감사한다. 하느님이 다 드러나면 사람은 감당할 수가 없을 것이다.

예수는 어디서 어떻게 하느님께 예배했을까? 시내 산도, 그리심 산도 아닌 곳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이 무엇일까? 온갖 누추함을 정화하고, 편협함을 깨뜨리고, 자기중심을 해체하는 것일까? 가난을 수용하는 것일까? 사랑의 하느님에게 전폭 의존해 사는 것일까?

예수를 따라 기도한다. 어디에나 계신 하느님 앞에 나를 통 채 드러내고, 죄스러운 우리가 그분의 용서와 사랑을 받아들이며, 서로를 용서하고, 먹고 사는 것을 하늘의 선물로 여기며, 유혹에 빠지지 않고, 예수가 품었던 생명과 평화를 따라, 시간 속에 생명이 담겨있는 동안 살아가기를 기도한다. 일상의 예배, 삶의 예배를 가르치신 예수를 생각한다.

예수는 왜 성전의 제사장과 반목했을까? 예루살렘 성전 해체를 선언했던 그의 심경은 어떤 것이었을까? 길잃은 양무리 같은 이들을 바라보며 슬퍼하던 예수의 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자신을 음해하던 이들의 속셈을 헤아리던 예수는 어떻게 평화를 지켰을까?

예수도 사랑의 하나님 앞에 엎드려 홀로 예배를 드렸을 것이다. 그리심산도 시내 산도 아닌 그곳은 어디일까? 피조세계에 묻어있는 창조주의 숨결을 따라 사는 삶 속에 예배가 있는 것이 아닐까? 제사장의 제단에 갇힌 하나님은 그리심, 시내 산의 하나님, 예수는 그런 하나님 예배를 가르치지 않았다.

ubi deus, ibi pax,
ubi amor, deus ibi est....

하느님 계신 곳에 평화가 있네,
사랑이 있는 곳에 하느님이 계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