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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칼럼]

[한마음 칼럼] 나는 왜 농목으로 사는가? 55

by 농민만세 2020. 10. 10.

한마음 칼럼 : “농목으로 사는 이유”

기왕 이야기가 나온 김에 ‘장로’에 대하여 확실히 정리해 두면 좋겠다. 본래 주교(主敎) 중심의 교회였던 중세 이전의 교회에서 장로는 주교-장로-사제-부제 등 4대 성직 직제 중 하나였다. 물론 여기에서 장로는 현대 개신교의 장로와 달리, 대도시 교회를 관할하는 주교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그 지역의 원로 사제들을 지칭하는 성직이었다.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사제였던 아타나시우스와 심각한 신학적 갈등 관계에 있으면서 그 지역 교회들로부터 상당한 지지와 존경을 받고 있던 아리우스가 바로 장로 사제였다. 당시 분열되어 있던 로마 제국을 다시 1인 황제체제로 통일시키기 원했던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니캐아 신조가 제정되면서, 교회 체제 역시 1인 교황체제로 점차 바뀌었고 점점 장로 사제직은 사라졌다.

우리 장로회 교회의 헌법에서는 ‘말씀과 가르침을 겸하고 교회를 치리하는 장로(목사)와 그것을 겸하지 않고 치리만 하는 장로’로 규정되어 있다. 이 장로회 교회 체제는 종교개혁 당시 주교제와 회중제의 단점들을 극복하기 위해 제네바의 칼뱅으로부터 시작되어 발전된 ‘대의제(代議制)’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장로교회가 사라지고 있다’는 탄식 소리가 들린다. 이는 장로회 교회라는 가장 기본적인 정체성에 장로회 교회 목사와 장로들이 너무 무지하기 때문이다. 우선 우리나라 감리회 교회에 ‘장로’가 있다는 것이 매우 기이한 일이다. 그것은 먼저 장로회 교회가 여성 장로를 세우지 않으려는 이유로, 감리회 교회의 고유 직분인 ‘권사’를 임의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이후 장로회 교회가 유독 많은 우리나라에서 권사는 장로 아래에 있는 계급으로 인식되었고, 감리회 교회에서도 마침내 ‘장로’들을 세우게 되었다. 하지만 감리회 교회에서의 장로는 권사와 함께 ‘감독으로서의 목사’에게 목회적인 협력을 하는 직분이다.

그러나 장로회 교회에서의 장로는 당회-노회-총회 등 3대 독립 치리회(治理會) 중 하나인 당회의 회원으로서 교회에 대한 치리권과 노회에 교인들의 대의원으로 파견되도록 교인들이 민주적 투표로 세우는 직분이다. 장로회 교회에서의 목사는 감리회 교회처럼 ‘감독으로서의 목사’가 아니라 한 사람의 ‘장로로서의 목사’로서 노회에서 세워 교회(당회)에 파견한 자로서, 교인들의 대의원인 장로들과 당회를 구성하여 치리권을 행사하게 되어 있다.

이런 교회의 제도들은 모두 초기교회로부터 발전되어 온 것들이다. 우리 장로회 교회의 장로들에 대한 대표적인 성서 구절은 (딤전 5,17)이다. “잘 다스리는 장로(일반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목사 장로)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그리고 사도 요한도 (요이 1,1; 요삼 1,1)에서 자신을 ‘장로’라고 부르고 있다. 이런 장로회 체제를 잘 이해하여야 서로 존중하며 민주적으로 성장하는 교회를 이루어 갈 수 있다. /계속 (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