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음 칼럼 : “농목으로 사는 이유”
어느 날, 충남노회의 전 노회장으로 우리와 같은 태안 서산 지역 서부시찰회의 이웃교회 장로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미 여러 번 읍내에서 따로 만나자고 요구하던 터였다.
그래서 ‘담임 목회자가 있는 이웃교회의 장로나 교인을 따로 만나는 일은 덕스럽지 못한 일이다’며 사양했었다. 그러자 그는 노회와 시찰회의 일이니 거듭 만나자고 하였고, 나는 노회 임원도 더구나 시찰위원도 아닌데 그럴 일이 뭐겠냐고 하던 것이었다. 하지만 벌써 일곱 번째 전화였기에 더는 안 되겠다 싶었다. 이유는 뻔했다. 당시 시무 장로는 몇 번 충고했지만 듣지 않고 벌인 일로 큰 어려움을 겪다가 결국 교회를 자진 이탈해 있었다.
그리고는 주변 장로들한테 ‘목사가 장로를 내쫓으려고 한다’고 거짓을 말하고 있었는데, 그러면 일부 장로들이 자기 일처럼 달려들어 지목된 목사를 강하게 압박하는 일이 적잖이 일어나는 일이었다. 약속 장소로 가보니 그래도 전 노회장이었던 그는 무례하지 않으려 애를 쓰며 맞아 주었다. 자리에 앉자 한참을 다른 이야기로 자꾸 말을 돌리기에, 내가 먼저 말했다. “나를 만나자고 한 이유를 잘 압니다. 그냥 솔직하게 이야기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전후 사정을 다 이야기했다. 그러자 그는 고맙다면서 물었다. “그러면 그냥 단도입적으로 물어보겠습니다. 목사님은 그 장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장로님, 나는 지역사회에서 그에 대해 대놓고 하는 욕설도 많이 들었고, 덕분에 그 장로와 같은 목사 아니냐는 막말도 들었습니다. 우리 교인들도 왜 그런 이를 주일예배 때마다 기도시키냐고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부족해도 교인들이 합법적인 투표로 세운 장로입니다. 면직이나 은퇴하지 않은 이상 교회의 공식 치리회인 당회의 회원이고 시무 장로입니다. 나는 변함없이 그리 대했습니다.”
“그러면 그 장로가 본 교회를 나와 저렇게 다른 교회를 떠돌고 있는데, 어쩌면 좋겠습니까?” “지금 당장이라도 다시 교회로 돌아와서, 주님께서 허락하신 남은 생애를 함께 겸손히 신앙생활을 하기를 바랍니다. 직접 물어보십시오. 나는 그에게 이런 말을 여러 번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깜짝 놀라면서 내 손을 덥석 잡고 말했다. “제대로 몰라 죄송합니다. 그리도 말썽 많은 장로한테 다시 들어오라고 하는 목사님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자칫 우리가 큰 실수를 할 뻔했습니다.”
그리고 굳이 사양하는데도 ‘자리를 옮겨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누구를 좀 만나 오해를 풀 일이 남았다’고 했다. 나는 그 장로와 만나게 하려는 것인 줄 알고 말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나는 그 장로님과 수시로 전화하고, 자주 만나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다시 한번 그런 줄 몰랐다고 하면서, 하지만 그래도 함께 갈 데가 있다고 팔을 잡아끌었다.
더는 사양할 말도 마땅치 않아 앞장선 그를 따라 도착해 보니 읍내의 어느 유명한 중식당 2층이었다. /계속 (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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