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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칼럼]

[한마음 칼럼] 나는 왜 농목으로 사는가? 51

by 농민만세 2020. 9. 12.

한마음 칼럼 : “농목으로 사는 이유”

이렇게 어려운 농촌교회가 새 예배당을 적잖은 예산의 부담을 지면서 마련하고, 교회 이름까지 바꾸며 새 역사를 시작했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다. 당연하지만 이 일은 그냥 순조롭게 될 수 없는 일이었다. 지난 40여 년 동안 누적되어 쌓인 산더미 같은 일들과 힘겹게 싸워 넘어섰다는 것이니 말이다.

교회에서 그것은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문제이니 얼마나 많은 갈등과 반목, 거짓 선동과 정신적 괴롭힘을 넘어선 것이겠는가? 사람의 모임인 이상 모든 교회에는 어떤 모양으로든 일종의 권력 구도가 만들어지고 그 정점에는 그 교회를 처음 시작한 장로나 권사가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들 중 기독교 신앙 안에서 진솔한 회심을 경험하면서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들은 표면적이고 습관적으로 갈고 닦은 신앙 행태로 다른 교인들을 지배하게 되는데 이런 자들과 한통속이 될 수 있는 목회자가 부임하면 꽤 평화로운 교회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목회자는 그러지 못하고 이들과 지배력을 놓고 갈등하게 되거나, 이를 바꾸어 보다 더 진정한 교회 곧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 앞에서 모든 교인이 서로 섬기는 교회가 되도록 노력하게 된다.

이런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될 리가 없다. 기존 교인들은 자신들이 새로 들어온 목회자에게 밀려난다고 공연한 위기의식을 갖게 되고, 마침내는 조직적으로 목회자를 음해하고 반목하게 된다. 목회자들은 여기에서 두 개의 갈림길에 선다. 하나는 이런 이들이 원하는 대로 추겨주며 생활비 걱정 없이 지내거나 아니면 ‘발에 묻는 먼지를 털어버리고(?)’ 다른 교회로 이임해 버리거나. 그런데 이 둘 말고 또 하나의 길을 선택하는 목회자들도 있다. 그것은 그처럼 교회의 본질에서 심하게 어긋난 현실을 바꾸기 위해 끝까지 가보겠다는 결심하게 되는 경우다.

다른 교회로 이임해 본들 함께 겸손히 주님과 교회를 섬기는 교인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교회는 어디에고 있을 리 없으니, 기존의 교회를 바로 세우는 일에 자신의 신명을 바치겠다고 하는 목회자들도 있다는 말이다. 이런 목회자를 만나게 되면, 아니 주님께서 이런 목회자를 그 교회에 보내셨다면 그 교회 교인들은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자신들의 온갖 부조리를 포기하고 변화되거나 아니면 언젠가 그 교회를 스스로 떠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주님께서 선교하고 계신 지역사회에 엄청난 폐해를 끼치면서 복음 전파를 가로막고 있는 자들이라면 어떻겠는가? 그런 자들의 뻔뻔한 기만에 악용되는 교회 간판을 떼어서 차라리 주님의 얼굴에 먹칠하는 일을 막아야 할 지경이라면 어떻겠는가?

그런 이들은 교회를 바꾸려는 주님의 인도하심에 온갖 모양으로 저항하다가 결국은 교회 외부의 힘을 끌어다 목회자를 내보내려고 하게 된다. 이는 거의 무슨 공식처럼 일어나는 일들이다.  /계속 (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