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음 칼럼 : “농목으로 사는 이유”
식당 주차장에 주차 후, 2층으로 함께 오르는데 복도에서 지인을 만난 그가 잠시 지체하며 내게 먼저 들어가라고 손짓을 하였다. 그가 가리키는 별실의 문을 열었는데 가운데에 커다란 원형 식탁이 놓여 있었고 주변 지역 교회의 장로들 7~8명 정도가 둘러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언뜻 보아도 분위기가 꽤 살벌(?)했다. 그중에 잘 알고 지내던 이가 얼른 일어나 인사하며 한쪽에 따로 마련된 빈 의자에 앉으라고 했다.
순간 낌새를 알아채고 ‘어라? 이거 봐라?!’하는데, 지난 30여 년 온갖 목회 경험을 또 한 번 뒤엎는 일이 일어났다. 둘러앉은 이들 중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읍내 교회의 장로가 탁자를 손으로 쿵쿵 치며 이렇게 고함쳤다. “요즘 젊은 목사 ㄴ들이, 뭣도 모르고 까불어! 어디서 배워 먹어서, 장로를 우습게 알고 말여! 응!?”
정말이지 이십 대 중반부터 시작한 목회 30여 년을 일거에 엎어 버릴 상황이었다. ‘이게 뭐 하는 짓들?! 장로면 자기 교회나 겸손히 섬길 일이지?!’하려는데, 그 순간 나를 먼저 만나 이야기했던 이가 다급하게 문 안으로 뛰어들며 제지했다. “그게 아녀!! 내가 먼저 만나 얘기 다 들었어! 우리가 크게 실수하는 거여!” 그리고 자신이 제대로 알게 된 사실들과 함께 자신이 놀랐다는 이야기까지 설명하였다. 그러자 험악했던 분위기가 영문을 알 수 없도록 갑자기 반전되었다.
‘장로 내쫓으려는 목사인 줄 알고 강력히 항의하려고모였다’ ‘그런 목사님인 줄 몰랐다’ 그리고, ‘사실 그가 나쁜 ㄴ인 걸 우리가 다 안다’ ‘여기 직접 당한 사람도 있다’는 말까지 하며 급히 음식을 주문했고, 우리는 화기애애하게 식사를 나누었다. 먼저 사정을 파악해 준 장로가 정말 지혜로웠다. 이후 그 장로들과는 오히려 각별한 사이로 지냈다.
(딤전 5:17) "잘 다스리는 장로(일반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목사로서의 장로)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몇 년 뒤, 이웃교회의 목사가 그 교회 시무장로의 일로 속을 썩이고 있었다. 농촌교회 자활 자립에 대해 그도 고민하며 실천하는 보기 드문 목회자였다. 어느 모임에서 돌아오는 길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그 장로 때문에, 전 노회장 장로가 만나자고 하더라고요.” “만나셨나요?” “어쩌겠어요. 목사가 무슨 힘이 있다고요.” “읍내 ㅇㅇ 중식당이었지요?” “예.” “2층, 복도 끝?” “예!” 그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둥근 식탁이 놓인 별실이요?” “예!!” “주변 교회 장로들 7~8명이 있었고요?” “아니, 그걸 어떻게?!” “......” 우리는 그냥 서로 씁쓸한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물론 이런 일을 만났을 때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역지사지. ‘오죽했으면, 그렇게까지 할까?’하는 것!
지난 20년, 사실 이렇게 많은 분의 도움이 있었다. 이런 일은 우리 장로님한테도 있었는데, 남의 교회 장로들 이야기는 그만하겠다. /계속 (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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