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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민신문
[취재수첩] 가짜 농부가 사라지려면
“나도 벼농사를 짓는 농민이지만, 한 필지만 내 소유고 나머지는 남의 땅입니다. 농민들 절반은 경작할 농지가 없어 빌려서 농사짓거나 0.5㏊ 이하를 가진 소농입니다. 그런데 고위공직자 10명 중 4명이 농지를 가지고 있는 게 말이 됩니까.”
최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전국농민회총연맹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 자리에서 만난 농민단체 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농사짓는 사람만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는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이 헌법에 버젓이 있는데도 농지가 투기 대상으로 전락해버렸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경실련에 따르면 고위공직자 1862명 가운데 38.6%인 719명(배우자 소유 포함)이 농지를 가지고 있었다. 전체 311㏊, 1인당 평균 0.43㏊ 규모다. 이 가운데는 평당가액이 100만원을 웃도는 농지도 더러 있었다. 실제 농사짓는 농지는 평균 평당가액이 7만∼8만원선이다.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더라도 평당가액이 15만원을 넘으면 농사를 짓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한다. 고위공직자가 농사를 짓고자 농지를 소유했을 리 만무하다. 국토계획과 경제정책을 집행하는 권한을 가진 이들에게 농지란 개발 이후 막대한 시세차익을 가져다줄 백지수표였던 셈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문제는 농지법에 있다. 농지법은 ‘농지는 자기의 농업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자가 아니면 소유하지 못한다’고 규정해놓고도 비농민이 농지를 소유할 수 있는 예외조항을 16개나 뒀다. 법 제도 변천을 거치며 농지 소유 규제를 풀고, 비농민의 농지 소유를 확대해온 탓이다.
1994년 농지법 도입 당시에는 상속으로 농지를 취득해 소유하는 경우 정도만이 경자유전 원칙의 예외였다. 하지만 이후 농지 소재지 거주 요건이 폐지되면서 도시에 사는 사람도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발급받아 농지를 가질 수 있게 됐고, 주말 영농을 목적으로 도시민도 0.1㏊ 미만의 농지를 취득할 수 있게 됐다. 농업을 연구하는 바이오·벤처 기업 연구소, 직업 탐색을 하는 대학생에게도 농지 소유가 허용됐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농지를 편법·불법으로 취득하는 사례가 허다하다.
농지는 경자유전의 원칙과 식량주권을 지키고자 헌법에서 보호하는 특별한 토지다. 농사짓지 않는 이들이 농지를 소유한다면 농지의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농업의 공익적 기능이 제대로 발휘될 수 없다. 법의 허점을 이용해 농지를 취득하거나 가짜 농부 행세를 하며 대규모 농지를 소유하는 현실을 더는 내버려두면 안 된다. 농지 소유제도의 중심에는 농민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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