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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칼럼]

[한마음 칼럼] 나는 왜 농목으로 사는가? 60

by 농민만세 2020. 11. 14.

 

한마음 칼럼 : “농목으로 사는 이유”

이처럼 어이없는 직종이 또 있을까? 자신의 품삯도 건지지 못하는 노동을 일평생 해야 한다면 그 누가 그런 직업에 종사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근대화 이후 지금까지 수천 수백만 명의 생계형 소농민들이 그렇게 살아왔다면 그것을 누가 쉽게 믿을 수 있겠는가?

이러니 농민들은 자식들만큼은 어떻게 하든 일단은 도회지로 내보내려고 기를 써야 했다. 도시에서 번듯한 직장이나마 가지고 살게 하려면 대학은 나와야 하니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농토를 야금야금 팔아야 했다. 그리고 겨우 남은 논밭에서 그야말로 ‘죽자 살자’ 농사를 지어야 했다. 도회지에 사는 자식들의 전셋집을 조금이라도 늘려줘야 하고 손주들 고등학교 대학교 학자금을 대줘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혹여라도 자식들에게 가정적으로나 사업적으로 무슨 일이 덜커덕 생기기라도 하면 그나마 남은 땅마저 팔고 그 논밭을 다시 임대하여 또 죽자 하고 농사를 짓는다. 단 몇백만 원의 ‘목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뿐 아니다. 점점 바뀌는 기후로 해마다 병해충 피해는 극심해지니 농약값과 부대 시설비용은 점점 늘어난다. 엄청난 양의 비료와 퇴비를 넣지 않고는 고추 마늘 농사를 지을 수 없다. 토양은 점점 더 과영양상태가 되어 산성화되니 해마다 석회를 뿌려야 한다. 그에 비례하여 소요되는 노동력은 더 늘어난다.

그 누가 알겠는가? 우리나라의 농토가 이렇게 소농민들의 전적인 희생으로 지금껏 지켜져 왔는 줄을.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많은 지원금은 기업형 농업법인이 아니면 사실 소농민들과는 거의 상관이 없다. 한해 한해 농협에서 빌려서 쓰고 갚고를 반복하면서 점차 늘어가는 채무뿐이다.

이것이 전국의 농촌교회 대다수 교인의 현실이다. 그리고 이들의 자녀들이 6~70년대의 산업화 도시화 물결에 대거 도회지로 이주하여 오늘날 번 듯한 도시 교회들의 밑바탕이 된 것이다. 그런데도 그동안의 한국교회는 이런 농어촌교회들을 제대로 돌아보기는커녕 거론하기조차 부담스러운 짐으로 여겨 다만 얼마의 농촌 목회자 생활비를 지원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더 그럴듯한 ‘해외 선교’에 밀려 점점 더 줄어들었다.

대도시의 웬만한 대형교회들에 당장 전화해서 ‘농어촌선교’ 또는 ‘국내선교’ 담당자를 바꿔 달라고 해 보라. 그게 무슨 말인가 하고 의아스러워할 것이다. 한국 개신교 교단 중 가장 큰 장자 교단이라고 자부하는 우리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P.C.K)의 경우만 하더라도 지금까지 총회 농어촌부를 폐지했다가 반발에 못 이겨 다시 설치하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농촌교회의 현장에 보내어진 목회자들 중 이런 농촌 현실을 끌어안고 온갖 방법을 고심하며 실천해 보다가 주저앉은 이들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 부지기수다. 교인들과 교회의 지역사회 현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교회? 과연 복음 사역을 위임받은 교회라 할 수 있을까?    /계속 (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