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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칼럼]

[한마음 칼럼] 나는 왜 농목으로 사는가? 61

by 농자천하/ 2020. 11. 21.

 

 

한마음 칼럼 : “농목으로 사는 이유”

교인들의 현실 곧 주변 지역사회의 현장을 돌아보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교회는 기독교 교회가 아니다. 그건 처음부터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자신의 독생자(獨生子)를 보내신 하나님’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교회다.

그렇게 세상에 보내지신 예수 그리스도님께서 다시 그 일을 사명으로 위임하신 예수님의 교회가 아니다. 그런 교회는 예수님의 이름을 명백하게 ‘명의도용’하는 자들일 뿐이다. 어느 교회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세상 속에’ 보내진 형태로 존재한다. 자신의 주변을 향해 눈길을 돌릴 줄 모르는 교회가 소위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말한다? 그건 처음부터 있을 수도 없고 또 있어서도 안 되는 괴물 기독교다.

매우 오래된 어느 농촌교회를 섬기면서 온갖 기이한 일들을 하도 많이 겪고는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어느 목사님. 이제는 조용히 가난하지만 소박한 목회로 사역을 마무리하려고 교회가 없는 어느 농촌 마을을 찾아가 조그마한 교회당을 임시 건물로 짓고 마을 주민으로 살기 시작했다.

그렇게 큰 근심 없이 은퇴할 줄 알았다. 하지만 갑자기 그 일대가 대기업의 공단 부지로 결정되면서 지역사회는 엄청난 변화를 맞았다. 수십억 원씩의 보상금으로 갑자기 거액을 손에 쥔 농민들에게 전국의 전문 노름꾼들이 몰려왔다. 목사님이 몇 년 동안 소통하며 같이 지냈던 마을 주민 중 하루아침에 패가망신하는 이들이 속출했고, 그들 대부분은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다. 그들의 원망과 한탄을 밤새 들어주면서 중독치유를 공부하였고, 치유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동행하는 사역에 휘말려 갖은 고생을 하였다. 그리고 다시 수년 뒤, 공장들이 하나씩 들어서면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마을에 몰려왔다. 그들이 당하는 억울한 일들을 해결하러 함께 쫓아다녔고, 매일 밤이면 늦은 시간까지 우리 말을 가르치며 고국에 송금하는 일부터 연애 상담까지 해줘야 했다.

그들이 점차 정착하면서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급증했다. 그런 신개발 지역에는 본래 지역 아동 보호시설과 같은 사회 시설은 가장 늦게 들어오는 법이다. 매일매일 거의 방치되는 아이들을 교회당에 모아 우리 말을 가르치고 밥을 해 먹였다. 수년의 고생 끝에 다행히 지역아동센터로 인가를 받았다. 불화 끝에 파탄에 이른 가정의 외국인 여성들과 아이들이 수시로 찾아오거나 피신해 왔다. 그들을 보호하고 상담하고 돌보고 보호센터나 취업 등의 대안을 마련해 주는 일이 계속되었다.

하루도 쉴 수 없는 아동보호센터의 일로 매일 음식 재료를 사서 나르고 저녁 늦게 퇴근하는 가정의 아이들을 밤늦은 시간까지 돌보며 하루도 쉬지 못하고 있었다. 소박한 농촌목회로 은퇴하려던 계획은 하룻저녁의 꿈이었다.

우리가 사는 지역사회의 그늘진 곳을 찾아가서 그곳 사람들이 끝내 인간성을 상실하지 않도록 희망의 등불이 되는 숙명, 이것이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교회다. /계속 (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