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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지속 가능하고 싶다면 소농을 살려라
by 장경호
‘가족농’의 해, 가족농은 누구인가
국제연합UN은 올해 2014년을 「세계 가족농업의 해 2014 International Year of Family Farming」로 선정했다.
UN이 가족농업의 해를 선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동안 UN은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최우선의 가치로 제시하면서, 인류의 지속 가능을 위해 해결해야 할 핵심 과제로 에너지, 환경, 식량, 기아와 빈곤 등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해결 방법을 모색해 왔다. 지난 2012년 협동조합의 해 선정이나 올해 가족농의 해 선정 등도 이러한 노력의 연장선에 있다. 결국 UN이 가족농의 해를 선정한 궁극적인 이유는 인류의 지속가능성에 있음을 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UN은 왜 가족농업에 주목했을까? 이 점은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서 개설한 홈페이지 (www.fao.org/family-farming-2014/home)에 비교적 분명하게 설명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기아 및 빈곤 문제의 해결을 위해, 식량 위기의 해결을 위해, 그리고 생태 및 자원의 보전을 위해서는 가족농업과 소농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가족농업과 소농이 처한 문제해결을 위한 방법을 세계적인 논의와 협력을 통해 모색하겠다는 것이다.
UN이 말하는 가족농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가족농업의 해 선정 배경 및 이유를 꼼꼼히 살펴보면 단순히 ‘가족 단위의 농업경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UN이 말하는 가족농은 그 존재 형태가 나라별로 매우 다르다.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 농업 노동자와 영세 규모의 소농을 포함하는 것은 물론이며, 가족 단위 노동이 농업 노동의 중심을 이루는 중농에 이르기까지 매우 포괄적이다.
고용된 노동력이 농업 노동의 중심을 이루는 기업농이나 대농을 제외한 대다수 농민을 가리키는 광의의 개념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개념을 한국의 상황에 적용한다면 소수의 대농 및 부농을 제외하고 대다수 농민을 포괄하는 ‘중소 가족농’이라는 용어가 아마도 가장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UN이 말하는 가족농은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 농업 노동자와 영세 규모의 소농을 포함하는 것은 물론이며, 가족 단위 노동이 농업 노동의 중심을 이루는 중농에 이르기까지 매우 포괄적이다. 고용된 노동력이 농업 노동의 중심을 이루는 기업농이나 대농을 제외한 대다수 농민을 가리키는 광의의 개념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농업 위기는 곧 소농의 몰락
UN은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가족농 및 소농의 역할에 주목했지만 현실에서는 가족농이나 소농의 지속가능성이 우선적으로 위협받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확산은 전 세계곳곳에서 소수의 기업농과 대농에 농업 생산을 점점 더 집중시켰고, 가족농과 소농은 갈수록 농업 생산에서 배제되어 몰락의 길을 걸어왔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소농이 몰락했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한 소농의 몰락이 가장 전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20여 년간 한국의 농업을 지배한 이데올로기는 신자유주의 개방 농정이었다. 정부는 대외적으로는 시장 개방을 끊임없이 확대하고, 대내적으로는 농업 구조조정을 강력하게 추진해 왔다.
UR농산물 협상에 이어 2000년대에는 FTA(자유무역협정)가 동시다발적으로 추진되면서 정부 주도의 농산물 시장 개방은 더욱 확대되었다. 그리고 정부는 경쟁력이라는 미명하에 소수의 정예 농가들에 선별적으로 농지, 농기계, 시설 등 농업 자원을 집중시키는 농업 구조조정 정책을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표>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소농의 몰락.
이것은 농민의 빈곤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과정이었고, 소농이 빠른 속도로 몰락하는 과정이었다.
소농의 몰락은 농업의 해체와 더불어 농촌의 붕괴로 이어져 지역공동체가 파괴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1990년 농가 인구는 약 715만 명이었지만 최근에는 300만 명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지난 20여년 동안 60% 정도의 농민이 몰락했는데, 이들 대부분이 가족농 또는 소농인 것으로 추정된다. 농가소득의 증대보다 농가 부채가 더 빨리 증가했고, 도시와 농촌의 소득 격차도 갈수록 확대되었다.
정부의 집중적인 지원을 받은 소수의 정예 농가를 제외한 대다수 농민에게서 빈곤화의 추세가 확대되었는데, 최근에는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소득을 올리는 농촌의 절대 빈곤층이 23.7%로 크게 증가하였다. 그리고 농촌 절대 빈곤층 상당수가 고령의 영세 농가라는 점에서 고령화 및 빈곤화의 문제가 농촌의 지속 가능성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농업 붕괴가 먹거리 위기로
소농의 몰락은 농업의 붕괴로 끝나지 않는다. 농업의 몰락은 국민의 먹거리를 위험하게 만든다.
소농의 몰락은 식량자급률의 하락으로 이어졌는데, 1990년 약 43%에 달하던 식량자급률이 최근에는 약 23% 수준으로 거의 반 토막 났다. 식량자급률의 급락으로 초국적 자본이 지배하는 글로벌 푸드 시스템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다. 유전자변형식품, 화학 농업 및 공장식 축산, 수확후처리, 각종화학 첨가물 등 갖가지 화학으로 무장한 글로벌 푸드가 점점 더 우리의 밥상을 채우고 있다.
글로벌 푸드가 우리의 밥상을 지배하는 것과 비례하여 식원성食原性 질병도 빠르게 증가하면서 우리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아토피를 비롯해 비만, 당뇨 등과 같은 소아 성인병이 나타나는 것도 그 일부에 해당한다.
소농의 몰락은 농업의 붕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먹거리를 위험하게 만든다.
사회 전체로 보면 식원성 질병이 늘어나는 것도 문제지만 이를 소득 계층별로 구분해 보면 건강 불평등이라는 새로운 병폐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고소득층일수록 상대적으로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접근이 용이한 반면, 저소득층일수록 위험한 먹거리에 더 많이 노출되기 때문에 저소득 빈곤층 가구에 식원성 질병 피해가 집중되는 현상이 현저히 증가하고 있다. 이때문에 사람의 건강도 양극화되는 병폐가 늘어나고 있다.
소농의 몰락으로 1990년 약 43%에 달하던 식량자급률이 최근에는 23% 수준으로 반 토막 났다. 식량자급률 급락으로 초국적 자본이 지배하는 글로벌 푸드 시스템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다. 유전자변형식품, 화학 농업 및 공장식 축산, 수확후처리, 각종 화학 첨가물 등 갖가지 화학으로 무장한 글로벌 푸드가 점점 더 우리의 밥상을 채우면서 식원성 질병도 빠르게 증가해 우리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그리고 먹거리의 가격 파동은 서민층의 장바구니 부담을 키우고 있다. 소농의 몰락은 국내 농산물 생산 기반의 약화로 이어졌고, 이는 잦은 기상이변과 결부되어 먹거리의 가격 파동을 더욱 빈번하게 발생시키고 있다. 먹거리 가격 불안에 따른 피해는 상대적으로 저소득 빈곤층에 타격을 준다. 부자들이야 먹거리 가격 변동에 그다지 큰 영향을 받지 않지만 서민들에겐 장바구니 부담이 훨씬 더 크게 다가온다.
이처럼 식원성 질병의 증가, 먹거리의 양극화 및 건강의 불평등 확산, 농업의 몰락과 식량자급률의 급락, 먹거리 가격 파동의 증가 등은 우리의 밥상과 먹거리가 더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다. 우리의 먹거리가 지속 가능하지 않게 된 핵심적인 요인이 바로 소농의 몰락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 지난 20여 년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그나마 위안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농민들의 완강한 저항이 몰락의 속도를 조금이나마 늦추었다는 점이다. 시장 개방과 구조조정에 맞서 농민들은 격렬하게 저항했고, 그 결과 정부로부터 약간의 양보를 받아낼 수 있었다. 몰락의 흐름 자체를 뒤집지는 못했지만 농업과 농민을 지원하는 대책을 통해 구조조정의 속도를 다소 늦출 수는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의 식량자급률은 지금보다 더욱 낮아졌을 것이고, 우리 밥상과 먹거리의 위험은 더욱 커졌을 것이다.
소농을 정책의 중심으로
유전자변형식품, 화학 농업, 공장식 축산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먹거리 안전성 위협과 생태계의 교란 및 파괴, 농축산물 및 식품의 세계화로 인한 화석연료 의존도 증가 등은 먹거리, 에너지, 기후, 생태계 등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주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러나 지구촌 인류의 식량과 먹거리를 지배하고 있는 글로벌 푸드 시스템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악화시키는 메커니즘으로 작동되고 있다. 글로벌 푸드 시스템을 장악하고 있는 초국적 자본은 이러한 메커니즘을 자신들에게 더 많은 이윤과 권력을 보장해 주는 황금 같은 기회로 인식한다. 그렇기 때문에 농업과 먹거리, 기후 및 에너지, 생태계 등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푸드 시스템의 근본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
소농의 지속가능성은 식량자급률을 높이는 선순환으로 나타난다. 여기에 농업 생산을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전환하여 농업의 지속 가능한 토대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한 정책 과제이다. 이를 위해서는 소농에 친화적인 생태계를 확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학교급식을 비롯한 공공급식, 로컬푸드, 슬로푸드 등의 사회적 수요를 확대하고,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 등 사회적 경제의 행위 주체를 활성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새로운 대안 모델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병행됐으나 아직은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부분적인 성과에 머물고 있는 한계도 분명히 존재한다. 예를 들면 기후변화협약, 생물다양성협약 및 바이오안전성의정서, 로컬푸드, 슬로푸드, 푸드마일리지 등과 같은 사례들이다. 그런데 국제적으로 혹은 지역사회 차원에서 시도되었던 대안적 사례와 모델들은 모두 소농 및 가족농을 농업 생산의 중심 주체로 설정하고 있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의 지속 가능성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UN도 가족농 및 소농의 역할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소농을 지원하고 육성하는 방안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비록 늦기는 했지만 다행히 우리 사회에서도 최근 농업과 먹거리의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조금씩 커지면서 소농과 가족농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소농 및 가족농의 몰락을 포함하여 농업의 위기, 먹거리의 위기, 건강의 불평등 등과 같은 사회적 병폐들을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인식의 지평도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식량주권과 먹거리 기본권 등과 같은 패러다임의 전환에 대한 공감대도 확대되고 있고, 친환경 무상급식이나 로컬푸드 등과 같은 자발적인 실천 사례와 모델들도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여전히 한국의 농업 정책은 소수의 정예 농가에 집중되어 있다. 대다수 소농과 가족농은 여전히 지속가능하지 않은 상태에 놓여 있다.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과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소농과 가족농을 정책의 중심부로 끌어들이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반드시 필요하다.
소농, 지속 가능한 농업의 주체
농민이 지속 가능해야 농업도 지속 가능해지고, 이는 지역과 공동체 그리고 우리 사회 전체를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소농의 사회경제적 조건을 지속 가능한 조건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글로벌 푸드 시스템의 한계를 극복하고 먹거리, 에너지, 기후, 생태계를 지속가 능하게 할 수 있는 소농에 대한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전환을 위해서는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이 농산물의 가격 안정과 농가 소득의 보장이다. 일부에서 제시하고 있는 기본 소득이나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도도 결국은 가격의 안정과 소득의 보장이라는 정책으로 구성되는 것이다. 2013년에 제정된 인도의 국민식량보장법 역시 식량 주권과 빈곤문제의 해결 및 소농의 지속 가능을 복합적으로 고려한 제도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다음으로 소농에 대한 사회 안전망의 확충이 필요하다. 가격 및 소득은 소농이 지속 가능하기 위한 경제적 조건을 마련하는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정책 과제이다. 그러나 공공서비스를 비롯한 사회적 안전망이 도시보다 상대적으로 매우 열악한 농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사회적 조건을 마련하는 것도 시급한 정책 과제이다.
소농의 지속가능성은 식량자급률을 높이는 선순환으로 나타난다. 여기에 농업 생산을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전환하여 농업의 지속 가능한 토대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한 정책 과제이다. 이를 위해서는 소농에 친화적인 생태계를 확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학교급식을 비롯한 공공급식, 로컬푸드, 슬로푸드 등의 사회적 수요를 확대하고,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 등 사회적 경제의 행위 주체를 활성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UN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자. 그리고 그 메시지를 받아들이자. 거기에 우리 사회를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길이 존재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식의 전환이고, 패러다임의 교체이다.
※필자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 건국대 경영경제학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울대학교 농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산업경제학과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농업과 농촌 문제에 대한 연구와 강연 등의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으며, 『종자, 세계를 지배하다』(2014, 시대의창)를 엮었다.
TAGS: 2014여름호, 가족농의 해, 소농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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