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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칼럼]

목회자 신세? 1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by 농자천하/ 2021. 1. 30.

 

위 사진은,
[제 67호 기독신보] 1917년 3월 14일 자 사설이다. 내용은 아래와 같다.



사설 : "어렵고 또 어려운 일 (2)"


/ 글쓴이 : 한석원(일본 관서학원 신학 졸업생)
/ 1917.3.14. 기독신보


서양 선교사들의 생활 정도를 보고 교인들은, 목사는 돈 잘 내는 사람으로 알았다가 지금 와서는 조선 목사들은 돈(헌금) 내라고 재촉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자기들의 생각과 반대가 된지라, 이런 것이 원인이 되어, 그전에 선교사 있을 때에는 돈을 주었는데 지금 조선 목사있는 후로는 돈을 내라고 하니 이것이 별로 기쁜 일 될 것이 없는지라,

이런 것이 원인이 되어 의례히 목사를 초빙을 하는 곳에서도 선교사만 의지하기도 하고, 또한 목사를 초빙할지라도 지배를 받을만한 자격을 원치 아니하고 지배를 할만한 자를 특별히 구하는 것이니 이는 다름 아니라 '돈 주고 상전 살 것이 없다' 함인듯 하더라.....

담임목사를 초빙하여 자기들이 신령상 유익을 받고자 할진대 그 목사에 대하여 신령상 능력을 양성할만큼 지급하여 섬기는 것이 마땅한 일이 될 것이요, 만일 그 목사로 하여금 생활 상에 은근한 곤란을 당하게 할 것이면 이것이 누구의 책임이 되겠느뇨.

차마 말하기가 오롯이 부끄러운 일이지마는 아니 말할 수 없어서 붓으로 간하노니, 어떠한 곳에서는 목사로 하여금 뜻없는 금식을 하게 하였다는 사실이 있다하니 추측컨대 그렇게 되었을 것이라고 하겠노라. 가령 15원을 지급하는데 그것도 매 월삭이면, 어김없이 지급이 될 것이면 그 목사로 하여금 한 달에 한 번씩만 돈 구경을 시키지마는 이렇도 못한 것을......


어렵디 어려운 농촌교회에서 20년을 넘겨 최선을 다했다. 15년 전부터 사례비를 한 푼도 올리지 않고 동결, 4년 전부터는 그나마 어렵다 모자란다는 말에 그마저 10~20만원의 명절 상여금 등을 자진 삭감했고, 오래 전 중단된 얼마 간의 퇴직적립금도 이제는 당연히 없는 것으로 여긴다. 아이들 학비는 직장에 나가는 아내가 빚을 지며 숨막히는 이자를 혼자 짊어졌다.

그렇게 모으고 모은 5천만 원을 교회당 이전 공사에 쏟아 붓고, 거기에 시급히 돌아가는 공사비가 모자라 중단시킬 수 없어 2천5백만 원을 카드 빚으로 얻어 건축헌금하고, 목수들과 직접 일하며 새 교회당을 겨우 세웠다.

교인으로서의 기초적인 모습조차 전혀 갖추지 못한 채 수십 년 흘러 온 교회. 이토록 벅찬 교회당을 누가 다시 세우자고 했던가? 책임도 지지 못할 일을 벌려놓고 마을 주민들 말대로 '건축헌금 아까워서' 온갖 시비를 걸더니, 노회유지재단에 완전 귀속시키자 그들은 자진 이탈하겠다고 매주일 온 교회와 마을을 시끄럽게 했었다.

주변의 어떤 교회 목사는 건축헌금 3백만 원 감당하느라 '죽는 줄 알았다'고 하던 데, 농촌교회의 사계비로 당연한 일이었을 거다. 그렇게 건축헌금을 하지 않으려는 뻔한 수작으로 온갖 문제 일으킨 몇 명의 교인들이 떠나고 드디어 교회가 안정되었지만, 우여곡절은 그치지 않았다.

부임 초기에 공무원이던 젊은 집사가 재정관리를 맡고 있었는데, 거의 매 주일 더하기 빼기도 틀리는 걸 보고는 '교회 재정관리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도와 주겠다고 했더니, "왜 목사가 재정 장부를 보여달라고 하냐?"고 버럭 성질을 내는 걸 보고 기가 막혀 할 말을 잃었던 적도 있다.

그리고 지금껏 매 주일 헌금을 합산하여 수기 장부에 기록하고 우체국 통장에 입금하는 일조차 제 때에 제대로 되지 않고 있었다. ('믿거나 말거나'라는 제목으로 시리즈 칼럼을 써야겠다) 여러 번 가르치고 촉구했지만 (믿거나 말거나)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매년 연말이면, 1년치 장부와 며칠씩 씨름하며 컴퓨터에 입력하기를 반복했었다.

그러다가 지난 3년 정도, 너무나 지쳐서 일절 관여치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 많지 않은 사례비 지급도 제대로 안 되고 연일 재정 모자라 큰 일이라고 하고, 또 아내가 겨우 이자를 갚고 있던 빚을 그대로 둘 수 없어서 정말 큰 고민 끝에 우선 학교 버스 운전을 시작했고, 마침내 물류 회사에 25톤 화물차 기사로 취업을 단행하였었다.

제법 목돈인 노회 상회비도 몇 번 대신 부담하고 교회차 수리비 주유비도 청구하지 않고 그러다가, 연말 결산도 제대로 안 되니 더 이상 그대로 둘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한 3년치 재정 장부를 가져다가 몇 주 동안 한꺼번에 컴퓨터에 입력하였다.

이게 무슨 일? 그리도 예산 모자란다고 애를 태우던 때부터 매달 수백만 원씩 이월되고 있던 게 아닌가. 차라리 장부 정리를 하지 말걸, 정말 모자랐던 걸로 알고 말걸, 온갖 마음에 시험이 들어찼다. 아무리 어려워도, 목사 자신도 이 어려운 농촌교회를 한 사람의 집사가 되어 함께 섬기면서 그냥 은퇴할 때까지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살았는데, 또 바보된 것이었으니.

배신감? 자괴감? 이런 걸 또 마음에서 삭여내야만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를 할 수 있으니, 그 마음 씻어내려고 초등학교 텅빈 운동장에서 매일 밤 늦게까지 걷고 또 걸어야 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지금도 그 일이 현재 진행이라는 거다. 부끄러움도 없는 건지, 밖에 나가서는 무슨 연합회 회장도 많이 하는 데. 도대체 이게 뭔지, 나는 지금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이럴 때마다 마음 속에서 누군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거 같으니 어쩔. "으이그~ 이눔아. 너를 향한 내 심정, 쬐금이라도 좀 알긋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