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농업 발전, ‘다양한 다양성’ 확보로 시작된다
뛰노는 생물도·농사방식도·참여주체도 무지개처럼 만발해야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최근 생태농업의 중요성 및 실천방안에 대한 논의가 만개하고 있다.
생태농업은 무엇일까? 친환경농업 방식 중 하나로 거론되기도 하고, 사실상 친환경농업 또는 유기농업과 같은 의미로 거론되기도 한다. 농촌진흥청 농업용어사전에선 “자연의 억제세력인 길항미생물(병원균을 막는 미생물), 공영식물(함께 자랄 시 다른 식물의 생육에 도움을 주는 식물), 생물농약(천적)을 활용하는 농업”이라 규정한다.
이러한 규정은 생태농업의 역할과 가치를 한정적으로 보는 규정으로, 전통농법·농생태학·생물다양성 중시 농법 등 생태농업의 다양한 측면을 놓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일까. 생태농업은 우리 농정에서 ‘n분의 1’ 취급당해왔다. 농정당국이 더는 생태농업을 ‘여러 농정 중 n분의 1’로 인식해선 안 된다는 인식하에, 최근 진행된 생태농업 관련 논의들을 소개한다.
친환경농업 제도, 외연을 확장하라
우선 제도상에선「친환경농어업 육성 및 유기식품 등의 관리·지원에 관한 법률(친환경농어업법)」과 친환경인증제의 개편 문제가 거론된다.
지난 12일 세종시 SB플라자에서 환경농업단체연합회 등의 주최로 열린 ‘고(故) 서종혁 박사 1주기 친환경농업 법제도 개선과제와 발전방향 토론회’에서 이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최동근 친환경농산물의무자조금관리위원회 사무국장은 1999년 친환경농산물 인증제가 도입되면서, 원래 친환경농업 목적인 ‘농업 환경보전’보다 점차 농산물 안전성에 집중하는 ‘산업’ 육성 관점이 강조됐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친환경농업 활성화는 정부가 ‘육성’해야 하는 산업이 아닌, 농민과 정부, 국민이 함께 지속가능한 사회와 농업체계를 구축하는 문제로서 접근해야 한다. 현행 친환경농어업법은 친환경농축산물을 ‘인증 농축산물’로 정의하고 있어 ‘인증’과 ‘생산물’ 중심으로 정책이 수립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비(非)인증 친환경농업이 정책 대상이 될 수 있도록 친환경농업의 외연을 확대하는 게 필요하다.”
인증제에 과도하게 집착하다간, 정작 인증 여부와 상관없이 생태농업에 종사하는 농민들의 노력을 외면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뜻이다. 최 사무국장은 이와 관련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유기농업은 가장 최상위 친환경농업 단계로 설정하되, 공익직불제의 선택형직불제 프로그램이나 농업환경보전프로그램 등에 참여하는 농가들의 비인증 친환경농업도 포괄해내는 인증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같은 토론회에 참석한 유병덕 한국유기농연구소 부소장은 ‘브랜드로서의 유기농업’이란 관점을 뛰어넘어야 진정한 유기농업이 가능하다는 취지하에 “친환경농어업법이 지금은 인증제도, 즉 브랜드 상표권 관리 수준에 머물러 있는데, 대한민국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효과를 발휘하도록 인증제도 밖으로 법의 적용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다”며 “브랜드 이용권(인증서)을 갖지 않은 생산자도 생물다양성 증진 등의 활동을 할 시 혜택을 입을 수 있도록 법이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품가치 이면의 진짜 중요한 가치
생태농업은 ‘다양성’을 기반으로 한다. 시공을 막론하는 농사방식의 다양성, 농지에서 자라나는 생물(농작물 및 농지 일대에 서식하는 동식물 등)의 다양성, 농사에 참여하는 사람의 다양성 등이 생태농업의 핵심이다. 따라서 생태농업은 제도 개선뿐 아니라 ‘다양한 다양성’이 발현될 때 발전할 수 있다.
지난 17일 경상남도 주최 ‘2021 국제생태농업포럼’의 사전행사로 열린 ‘생태농업이란 무엇인가?’ 토론회는 ‘다양한 다양성’이 논의된 자리였다. 우선 생물다양성과 관련해, 임점향 한국논습지네트워크 대표는 “우리나라에선 논의 유기농 인증 여부나 논에서 농약이 검출되냐, 안 되냐 위주로 유기농업 여부를 따지는데, 일본에선 두루미나 황새가 오가는 논의 가치를 매우 높게 친다”며 “우리나라 정부는 두루미·도요새·황새 등 각종 철새들이 오가는 논의 공익적 기능을 중시하면서, 생물다양성 확보 농법에 대한 지원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남 밀양 다랑협동조합 농민 김진한 씨는 다랑논의 논생물다양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김씨는 “경지정리된 논은 수로가 단절돼 있어 논에서 다양한 생물을 만나기 어려운 반면, 다랑이논의 경우 물길이 살아있어서 논에서 각종 생물들을 볼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며 “농사라는 게 경제적으로 돈이 되느냐, 상품가치와 교환가치가 있느냐는 식으로만 이야기되는데, 그 이면에 숨어있는 다양한 가치를 소비자들에게 알려내는 게 향후 농사지으며 해야 할 역할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시공간 넘나드는 ‘농사방식의 다양성’
박광래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연구사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가는 ‘농사방식의 다양성’을 이야기했다. 박 연구사는 구시대의 것으로 치부돼 온 전통농업이, 오히려 미래 생태농업 발전을 위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걸 한 권의 책을 통해 강조했다.
박 연구사가 소개한 책은 20세기 초 미국 농무부 공무원 프랭클린 히람 킹 박사가 조선과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3국을 여행한 뒤 남긴 <4,000년의 농부>라는 책이다. 킹 박사는 이 책에서 ‘자원순환’을 핵심으로 삼는 동아시아 3국의 전통농법이 4,000년 이상의 세월 동안 농토를 비옥하게 유지시켜 왔고, 그러면서도 엄청난 인구를 먹여살려온 점에 주목했다. 킹 박사가 특히 주목한 것은, 인간의 똥을 비롯한 동물의 배설물부터 떡갈나무 잔가지, 낙엽 등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버리지 않고 철저히 자원으로 활용해 왔던 동아시아 농민들의 지혜였다.
박 연구사는 “공공화장실의 경우 미국에선 ‘버리기 위한’ 분뇨를 모으는 곳인데, 동아시아 3국에선 ‘활용하기 위한’ 분뇨를 모으는 곳이었다”며 “킹 박사는 서양인들이 소중한 비료로 활용할 수 있는 각종 오물과 배설물을 그냥 버리고, 이를 정화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물을 사용하며 자원을 낭비해 온 걸 비판하는 반면, 모든 것을 자원으로 순환시키는 농법을 추구해 온 동아시아 농민들의 노력을 ‘문명화된 인류가 가장 주목해야 할 기술’이라 평가했다”고 밝혔다.
농사방식의 다양성 추구에 있어 ‘시간초월’ 못지않게 ‘공간초월’도 중요하다. 공간초월 측면에서 강조되는 게 세계 각국의 농생태학 실천사례다. 김정열 비아캄페시나 동남동아시아 국제조정위원은 2011년 아시아 농민 농생태학 회의 참석차 인도를 방문했을 때 목격한 ‘무비용(Zero budget) 농법’ 실천 농가 사례를 소개했다. 김 국제조정위원은 “해당 농가에선 소의 똥오줌, 사탕수수에서 추출한 자글리, 대두박을 섞어 발효시킨 뒤 관주나 땅에 뿌려 미생물을 활성화시키며 농사짓고 있었다”고 언급했다.
‘참여주체 다양성’ 강조하는 농생태학
20세기의 ‘산업형 농업’은 사실상 자본(식품·농자재·종자 관련 대기업)에 의해 주도된 반면, 농민(특히 소농, 여성농민 등)이 주체로 서기 어려운 농업이었다. 그런 면에서 참여주체의 다양성 및 농민의 주체적 실천을 강조하는 농생태학의 정신은, 20세기 산업형 농업의 대항마로서 중시될 수밖에 없다.
김정열 국제조정위원은 이러한 관점에서 “페미니즘(여성주의) 없이 농생태학은 없다. 농생태학은 여성농민이 중시해 온 토종씨앗과 생물다양성이 현재 농업의 기반이 됐음을 강조하면서, 여성농민이 인류 농업에 기여해 온 바를 높게 평가한다”며 ‘개별적 존재의 고유성’이 농생태학의 핵심 기조 중 하나임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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