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갈릴리 칼럼]

[한마음 칼럼] "마을을 교회 삼고...?"

by 농민만세 2022. 10. 22.

한마음 칼럼 : “마을을 교회 삼고...?”

정말 고맙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요즘 들어 ‘마을목회’라는 말을 진보 보수 교단을 가리지 않고 함께 사용하고 있다. 우리 교단 총회의 표어나 어떤 보수 교단의 신문에서도 <마을을 교회 삼고, 주민을 교우 삼아>라는 반가운 말이 보인다. 지난 3년 넘게 농사, 협동조합 창업, 지역 선교 등으로 쌓인 빚을 청산해야만 하는 생존형 노동을 피할 수 없어서 전혀 관심을 두지 못했는데 그새 몰라보게 바뀐 것이었다.

나 자신과 교회의 울타리를 일단 내 마음속에서 완전히 걷어내던 2015년, 새해를 지나며 겨울 두세 달 동안 늦은 밤이면 하루도 빠짐없이 혼자 예배당에 엎드려 있었다. 그러다 힘들면 거의 미친 사람처럼 교회당 안을 밤새도록 걷고 또 걸었다. 또다시, 한 번 더, 벼랑 끝에서 홀로 길을 찾아 만들기 위해 어디로든 한 발자국을 허공으로 내디뎌야만 했다. 그리고 이른 봄, 가까이에 있는 1천 3백여 평의 밭을 임대하고 본격적인 농사일에 뛰어들었다. 내가 아예 마을 주민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 함께 살아가는 마을 사람이 되자는 것이었다.

그런 ‘마을 목사’로서의 정체성은 ‘내가 어디에 보내심을 받았는가’를 자각하는 데 있는 것이니 오히려 전에 없던 사명이 충만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앞서 길을 내며 걸어간 몇몇 선구자들은 대부분 숨어 있는 절박한 상황에서, 나에게는 한 마디의 표어가 절실했다. 무엇이든 자신이 실천하고 있는 일에 대해 그야말로 단숨에 말할 수 있어야 하니까.

여러 날을 고민하며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마을을 교회로, 주민을 교우로?’ 이건 마을을 정복하고 장악하겠다는 오해가 있을 것 같으니 탈락. ‘마을을 교회처럼, 주민을 교우처럼?’ 이것도 상대방을 존중하고 소통하려는 게 아니라 뭔가 일방적인 활동으로 보이니 탈락. ‘마을을 교회같이, 주민을 교우같이!’ 그렇게 여기고 섬겨보자는 것으로 느껴져 가장 오래 붙들고 있었는데, 이 ‘섬긴다’는 말의 느낌도 상대방에게 무슨 은혜를 베푼다는 자기 우월적인 어감이 있는 것 같아 탈락.

결국은 마을과 주민을 대하며 사는 목사로서의 정체성도 잃지 않고, ‘우릴 구해줘? 너희나 잘해!’라는 소릴 들을 게 뻔한 부작용도 피하고, 더구나 정복하고 장악하려는 의도를 숨기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경계심을 갖지 않도록 나는 이렇게 나의 길과 그 성격을 나 자신을 위해 단 두 마디로 줄여야 했다. “마을을 교회 삼고, 주민을 교우 삼아!”

함께 같은 노동을 하며 같은 자리에서 그냥 ‘예수님 믿고 살아가는 한 사람’이라는 진심을 알도록, 그래서 내가 그냥 살아가는 모습만으로 전도가 되도록, 그냥 나의 노동과 생활 속에서 마을과 주민들의 삶의 애환들에 대해 ‘내가 전심으로 신앙하고 사는 나의 도(道; 고전 1,18)’로 이야기할 수 있게 하려는 것, 이것이 내가 바라는 최대치였다.

그렇게 일상에서 전도하는 단 한 사람의 진솔한 교인이 그만큼 너무나 절실한 형편이었다는 말이다. /계속 (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