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쟁(諫諍)과 봉박(封駁) ] - 노회 홈페이지 게시
제목 : ‘자립대상교회 활성화 공모사업’ 유감
우리 교단에서는 약 15년 전, 교회별로 지원금을 주고받던 ‘미자립교회 교역자 생활비 지원상황’을 대대적으로 수정 보완했다. 어떤 일관적인 기준이 없다 보니 본의 아니게 교역자 생활비 지원을 아예 받지 못하는 교회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미자립교회’라는 말도 ‘자립대상교회’로 바꾸었다. 우리교단 전국의 자립대상교회 현황을 노회별로 파악한 뒤 대도시 노회들이 지원금을 모아 보내면, 받은 노회에서 지교회의 상황에 따라 최대한 평준화하여 지급하는 대대적인 정책 전환이었다.
물론 덕분에 우리처럼 ‘교역자 생활비 지원금’이 아니라 ‘지역사회 선교비 지원’을 받던 교회들은 지역사회 선교를 진행할 수 없게 되었고, 더구나 도시교회가 농어촌교회의 지역사회 전도를 찾아가 돕던 유기적 협력 관계도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몇 년 뒤, 대도시의 몇몇 교회들에 직접 전화했는데, ‘국내선교’나 ‘농어촌선교’ 담당 부서나 담당 교역자가 아예 없어진 것을 알았다. 자신들이 부담해야 하는 지원금을 자기들 소속 노회로 보내면 되는 것이었으니 그리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지원이라도 받으며 농어촌교회를 지켜내고 있는 목회자들의 엄청난 고충은 생략하겠다. 다른 분들처럼 나도 이미 여러 번 이의를 제기했고, 그건 목회자 후보생 정책부터 전부 손 봐야 하는 일이니 누구도 해결 못한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우리는 '교역자 최저 생활비'를 간신히 자체 지급하는 엄연한 '자립교회'이다. 하지만 과연 그게 교회 자립이냐? 자신의 지역사회를 선교는 할 수 있어야 교회 자립 아니냐? 교역자 생활비를 위해 교회가 존재한단 거냐?는 속상한 말도 생략하겠다.
지원금을 농어촌 노회로 보내는 노회야 상대적으로 간단하지만, 그것을 지교회에 분배해야 하는 노회들에서 일어나는 우여곡절들도 더는 말하기 피곤하다. 그건 관련자들의 인간 성숙도라거나 공사(公私) 구분의 상식 정도와 관련된 것이니까.
마침내 '교역자 생활비 평준화' 정책도 매우 현실적인 문제로 한계를 맞게 된다. 이제는 농어촌 도시 할 것 없이 모든 교회가 급격한 성장 하락세를 피할 수 없게 되면서 지원금을 낼 수 있는 여력 자체가 없어질 거라는 게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니까.
그래서 총회 정책은 또 한 번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그것은 '거점형 농어촌교회 자립 모델 개발' 정책이라고 할까. 뭐 그런 것이다. 말하자면 이제는 농어촌교회들의 지속적 자립을 위해서 어떤 수익사업, 그러니까 아예 '창업'을 해 보라는 것이다.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던 '협동조합운동'에 대해서 전에 없는 관심이 고조된 것도 그런 맥락인 거 같다. 우리 기독교 고유의 가치를 선교적 차원에서 실천하는 도구로서의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 등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는 걸 얼마 전에 알았다.
그래서 온갖 시도와 실패를 거듭한 경험자로서 나는 이것을 계속 일깨워야 한다. “그게 '창업'이라는 건 생각은 하는 거냐?!”고. 이 '창업'이라는 말, 도전하다가 제 발등 진짜로 몇 번 찧어본 일이 없는 이들은 그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할 거다.
어쨌든 요즘은 약간 소강상태가 된 거 같아 다행이다. ‘자립대상교회 활성화 공모사업’이라니?! 회사 법인은커녕, 협동조합은커녕, 자영업 사업자등록도 해본 적이 없는, 아니 그런 게 뭔지도 아예 모르는 더구나 농촌교회 교인들과 목사들한테?
몇 년 전, 내가 아주 잘 아는 어느 후배 목사님이 그랬다. “그동안 오래 기도했고요, 대전에 카페 교회 하려고 세를 얻었습니다.” 나는 너무나 놀라서 물어보았다. “커피 내리는 건 배우셨고? 완전히 숙달은 되셨나?” “아? 이제 배워야죠!” 아이고.
자립대상교회 활성화 공모사업을 진행하려면 사전에 먼저 목회자와 교인들 창업 교육부터 해라. 일반 창업교육 전문가들은 강의하러 와서 기절할 게 분명하니 강사 섭외는 알아서들 하고. 나는 지금 7전 8기, 여덟 번째 창업에 도전하고 있다.
교회의 가치를 더 확장시키면서 그것을 실천해 보려고. 물론 인적 물적 자원이 거의 전무한 채 자연감소만 하고 있는 농촌교회가 정말이지 더 이상은 어디로도 반 발자국도 내디딜 수 없는 이 한계상황 때문이다. 쉬운 길이 있다면 누가 마다하랴.
본래 개인 창업이라는 게 한번 시작하고 망하고 빚더미, 또 도전하고 빚더미, 그리고 빚 갚으려고 온갖 알바 또는 취업. 다시 창업 도전. 이러는 게 상식이다. 이런 경험 하나도 없는 목회자들이 총회 지원금 받아 창업하려는 거부터 위험천만! (聾)
(관련 게시글 참고)
수서교회, 교회 자립을 위한 수익사업 공모? 가당치도 않은 생색 내기! (tistory.com)
총회(PCK) 교회자립화 정책의 딜레마 (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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