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할 때와 개혁할 때
예장 통합 시국기도회 강연 / 서광선 박사(이화여대 명예교수)
내가 이러려고?
“내가 이러려고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었습니까?” 촛불 광장에서 부르짖는 우리 민중들의 소리입니다.
내가 이 나라가 이 꼴이 되는 걸 보려고 이렇게 오래 살았습니까? 나는 1987년 6월, 29년 전 새문안 교회에 모인 우리 목사님들 앞에서 전두환은 물러가고 유신헌법을 철폐하고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직접 뽑는 개헌을 하라고 주장했습니다. 나는 다시는 우리 목사님들이 비상시국 기도회를 안 해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내 살아생전에 다시는 대통령을 탄핵하고 하야 시켜야 한다는 설교나 연설은 두 번 다시 안 해도 되고 안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이렇게 오래 살아 가지고 이런 화나는 일을 해야 하나 싶습니다. 그래도 살아 움직이는 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광화문 광장에 추운 겨울바람에 쓸어 질까봐 몸조심, 못나가는 대신, 하야, 하야, 진퇴, 진퇴, 탄핵, 탄핵, 젊은이들과 한 목소리로 소리 지르지는 못할망정, 신학자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여러분과 함께 나라 걱정을 하고 하나님 앞에 회개 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모임에 나와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는 순교자의 아들입니다. 우리 목사 아버지는 일제시대에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일본 경찰에 무섭게 매를 맞고 교회에서 쫓겨나 만주로 망명해서 그리로 야밤도주한 한국의 농민들을 위해서 개척교회를 세워 목회하면서 민족해방의 그날을 기다렸습니다. 해방이 되어 북한의 고향 땅에 돌아 와서 해방 교회를 다시 시작했지만, 항일 목사가 반공목사가 되어서 공산당을 반대했습니다. 6.25가 터지자 목사 아버지는 인민군에 납치 되어 대동강 강가 언덕에서 총살당했습니다. 아버지는 자유 대한, 공산 독재가 아닌, 민주주의를 하고 신앙의 자유가 있는 나라를 그리워하면서, 공산당 인민군 총탄에 쓰러졌습니다. 우리 가족은 졸지에 아버지를 잃은 고아들이 되었습니다.
나는 부산으로 피난 오자마자 대한민국 해군에 자원입대해서 6.25. 한국전쟁에서 공산군을 물리치고 통일 한국을 이룩하는 일에 몸 바쳐 일하고 싸웠습니다. 그리고 순교자 아들이라고 미국에 유학할 수 있는 특권이 생겨서 미국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면서 자유가 무엇인지, 참된 해방이 무엇인지, 민주주의가 어떤 것인지, 인간이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어떻게 사는 것인지, 배우면서 우리나라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자유로운 나라, 해방된 나라, 인간답게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잇는 나라가 되기를 바라면서 평생 학생들과 씨름하면서 민주주의 부르짖고 자유를 부르짖고 하나님의 정의와 하나님의 사랑을 이 땅에 실현하는 하나님 나라 정치운동에 헌신해 왔습니다. 이것이 순교자 아버지의 뜻을 이어 받는 일이라고 믿고 살아왔습니다.
순교자 아버지는 공산당 독재를 반대하고 그렇게 설교하다가 목숨을 바쳤습니다. 저는 순교자 아버지의 뜻을 이어 유신 독재를 반대하고 투쟁했습니다. 참된 반공이라고 하는 것은 민중을 억압하고 굶어 죽게 하는 공산주의 독재를 반대하고 자유와 정의를 구현하는 것입니다. 유신 독재를 반대하는 것이 바로 공산주의 독재를 반대하는 것이고, 이 땅에 자유와 정의 그리고 평화를 이룩하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반공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자유와 인권을 억압하고 말살하고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파괴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반공은 반 인간적이며 반 미주주의이며 나아가서 하나님 나라 질서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이러려고, 이렇게 되라고 이 나라 이 땅을 이런 꼴로 만들려고 반공을 한 것이 아닙니다. 이러려고 우리 순교자 아버지가 대동강 기슭에서 인민군의 총탄을 맞고 차디찬 대동강 물속에서 죽어 간 것이 아닙니다. 이러려고 이런 창피한 나라 꼴을 만들라고 대한민국 해군에서 5년 동안이나 빳다 맞고 진해 앞바다 물속에 빠져 9사1생으로 살아 남은 것이 아닙니다. 이러려고 이런 부패하고 썩어 문들어진 나라를 보려고 1970년 내내 박정희 군사 독재 정권을 반대하고 나서서 학생들과 노동자들과 목사님들과 함께 민주주의를 부르짖고 인권을 위해서 투쟁하고 거리를 행진하고 학생들과 함께 합동수사본부에 가서 해직 당하고 4년이나 정보부의 감시를 받으며 감옥 아닌 감옥 생활을 해야 했나...화가 나도 이만 저만 화가 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들에게 부끄럽습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들이 이런 나라꼴을 보려고 100년 전에 3.1. 독립 운동을 일으켰습니까? 우리 믿음의 조상들은 우리나라 우리 민족은 대대손손 자유와 평등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일본 제국주의의 야만적인 침략과 독재와 억압과 착취에 항거했습니다. 그뿐 만 아니라 대한 제국이라는 제국의 왕권 독재 체제를 청산하고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국호를 선포했습니다. 1919년 3월 1일부터 우리는 왕이 다스리는 나라가 아니라 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 대한민국이 선포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우리 민족이 대한민국으로 자주 독립하는 것이 바로 아시아의 평화와 세계 평화를 이룩할 수 있다는 아시아의 평화와 세계의 평화를 선언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믿음의 조상, 나라를 사랑하고 독립을 선언한 대한민국을 선포하고 수립한 민주주의 조선의 설립자들을 모두 배신했습니다. 우리나라 주인이며 주체인 민중과 대한민국 국민을 배신했습니다. 민주주의를 배신했을 뿐 아니라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를 왜곡했습니다. 박근혜는 우리나라 대통령이라고 하면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포기했습니다. 박근혜는 아버지 박정희를 따라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이승만과 미군정이 이어받은 일본 제국주의 앞잡이들의 것이라고 밀어부치고 그것도 모자라 우리 젊은 학생들에게 국정교과서를 만들어 일방적인 교육이 아니라 세뇌를 하려 들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1919년 3월 1일 흰 옷 입은 우리 한국 백성들이 태극기를 흔들면서 대한독립 만세를 부르짖으며 금수강산 우리 땅을 우리 것으로 우리가 마음대로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자고 부르짖은 것이 처음이 아닙니다. 그 이전에 그리고 그 이전에 1592년, 임진왜란이 있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정말 목숨을 바쳐서 이 나라 이 땅을 지켜냈습니다. 거기에 이순신 장군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논개가 있었습니다. 거기에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킨 이 땅의 민중이 있었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44년 뒤 1636년에는 병자호란이 있었습니다. 왕들과 귀족들은 모두 도망갔지만, 우리 민중은 싸웠습니다. 그리고 나라를 지켜냈습니다.
이렇게 지켜낸 나라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되라고 해방이 되었습니까? 우리가 이렇게 되라고 수백만의 군대, 수천만의 무고한 백성들이 한국전쟁에서 피 흘리고 죽어가야만 했습니까?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 할아버지와 할머니들, 형님들, 누님들, 고모와 삼촌들이 폭격을 당하고 기관총에 맞아 죽고, 공산당이라고 부역자라고 반공이라고 무고한 백성들이, 피난민들이 죽어 갔습니다. 그리고 전쟁의 폐허 위에 나라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이승만은 몇 번씩 우리나라 국민들을 배반하고 속이면서 권력을 탐냈습니다. 그리고 저항하는 많은 학생들을 총살했습니다.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죽였습니다. 그리고 도망갔습니다.
우리가 이러려고 4.19를 일으켰습니까? 이제 또다시 경무대 자리 청와대로 돌격해야 합니까? 우리가 이렇게 오래 살아서 제2의 4.19를 되풀이 하는 꼴을 보아야 하겠습니까? 그뿐 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시는 다시는 5.16이 되풀이 일어나는 꼴을 볼 수 없습니다. 결코 보아서는 안 됩니다. 상상도 하기 싫습니다. 그 당시 우리 선배 목사님들은 박정희 쿠데타는 부득이한 폭거라고 했고, “차선책” 영어까지 써가면서 lesser evil, 악은 악인데 덜 악한 악이다. 이렇게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군사 독재 폭거를 옹호하고 지지한 흑 역사가 있습니다. 4.19의 비극과 5,16의 폭거는 지금 상상도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믿음의 식구 전태일 청년 노동자가 왜 그리워집니까? 노동법 책자를 안고 “노동법을 지켜라.” “노동자도 인간이다.” 개발 독재 박정희 정권에 저항하며 분신자살한 전태일은 노동법을 제대로 이해하려고 대학생을 그리워했습니다. 전태일이 그 머리로 서울대 법대로 진학해서 법을 공부하고 고시에 합격해서 검사가 되었으면, 오늘의 우병우나 김기춘이 되었을까? 쓸데 없는 상상을 해 봅니다. 아니면 검정고시를 거쳐 노무현 대통령처럼 노동자들을 위한 변호사가 되고 노동자 편에 섰던 대통령이 되었을 까...부질 없는 상상을 해 보게 됩니다.
왜 오늘 이 시점에서 전태일이 그리워지고 부질없는 상상을 하게 되는 것입니까? 오늘 우리가 이렇게 되려고, 오늘 날 우리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에다가 기약 없는 해고와 저 임금에 시달리게 되는 것 아랑 곳 하지 않고, 한국의 한강의 기적은 박정희 혼자서 해 낸 것이 아니라 시골에서 올라 온 십대 처녀들과 총각들이 밥을 긂어 가면서, 일자리 감독들의 매를 맞고 성폭력을 당해 가면서 이루어 낸 것, 모두 싹 지워 버리고, 재벌과 박정희 독재가 해 냈다고 강변하고, 군사 개발 독재시대를 숭배하고 그리워하고, 유신 망령을 모시고 그 명령에 복종하며 인권을 유린하고 민주주의를 말살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목요일 12월 1일, 바로 이 자리에서 한국 기독교 민주화 운동 기념 재단을 결성했습니다. 우리가 이러려고 1970년 대 민청학련이라고 몇 백 명의 학생들이 재판을 받고 감옥생활을 했는가? 눈물을 흘리면서 당시를 회고했습니다. 다시는 이 땅에 반공의 이름으로 이런 만행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많은 학생들이 남산에서, 보안사 지하실에서 고문을 당하고 물탱크에 처박혀서 폭력과 압제와 독재의 더러운 물을 삼켜야 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매를 맞고 피를 흘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까. 우리의 믿음의 조상 할아버지 함석헌 선생님과 서남동 목사님 이우정 선생님 들이 1975년 3월 1일 명동 성당에서 유신 정권을 규탄하고 민주주의 회복을 부르짖었습니다.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이 어른들이 그 많은 고초를 당했습니다.
그 아픔과 고초의 댓가가, 오늘의 박근혜 게이트입니까? 우리 조상들은 이렇게 우리 민주주의를 위해서 싸웠고 지켜냈습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한국 민중들이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뽑을 때만해도, 우리들 사정을 알아주기를 바랬습니다. “민생 대통령”이 되겠다고, 복지 국가를 만들겠다고 해서 철석같이 믿었었습니다. 박정희 딸이니께, 그리고 엄마가 괴한의 흉탄에 맞아 비참하게 죽어 간 쓰라린 경험이 있고, 심복 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죽은 애비를 생각해서라도, 그리고 엄마 없는 청와대에서 영부인 노릇을 했으니까, 박정희 정치의 문제가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경험했었기에, 박정희 같은 대통령은 안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아닌가요? 정반대였습니다. 애비 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가서 국민을 무시했습니다. 민주주의는 박근혜의 철학도 정신도 아니었습니다. 비정상적으로 성장한 박근혜는 한국 정치를 비정상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자기가 누리는 권력이 아버지로부터 온 줄로 착각했습니다. 자기가 먹고 입고 즐기는 모든 것이 아버지 덕분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 권력으로 재벌들의 돈을 마음대로 빼앗고, 나라 좋은 일을 한답시고 가까운 친구 최순실과 그 가족과 패거리들의 배를 불리고 재산을 늘려 주었습니다. 그러고도 자기가 무슨 잘못이 있는가고, 나라를 위해서 문화 융성인가 창조경제를 위해서 애쓴 것 밖에 없는데 하고 억울하다고 눈물을 보이고 있습니다. 요새 말로 개념이 없는 사람입니다. 비정상적이고 비상식적인 말만 늘어놓고 있습니다. 지금 박근혜에게 정의가 무엇이고, 상식이 무엇이고 물어 봤자, 그게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지도 못할 것입니다. “나는 우리 아버지가 한 대로 한 것뿐인데, 나라를 위해서 한 것뿐인데, 왜 이 난리들인가? 이해를 못할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할 특검이 밝히고 있는 이른바 “수사대상”이 신문지상에 발표되었습니다. 12월 3일자, 지난 토요일 한겨레 신문에 나열한 죄목 만해도 일곱 가지나 됩니다.
1. 미르.K스포츠 재단 772억원 강제모금 관련 박근혜 대통령 제3자 뇌물죄
2.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최순실 국정농단 방조 및 검찰 수사. 인사 개입 등
3. 정윤회 문건 검찰 부실수사 의혹
4. 박근혜 대통령 세월호 7시간 행적 의혹
5. 주치의 허가 없는 약물 반입 등 청와대 경호실 및 경호실장 조사
6. 최태민과 박 대통령 관계 의혹
7. 최순실, 최순득 자매 등 수 천억 원 대 불법축재 의혹
(국회에서 발의한 탄핵 소추안을 받아 봤는데 A4 용지 42페이지에 달하는 장문의 고소장입니다. 어마어마한 분량의 소추안을 보고 여기 제가 나열한 죄목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것들은 표면상에 나타난 것이고, 법으로 처단할 문제들입니다. 그러나 우리 속마음 깊이 의혹을 가지고 분노하는 것은 법위의 도덕적 정의감에서 오는 반 인도적, 반 인간적, 반 민족적 행태들입니다.
그 첫째는 박근혜 정권의 5.18 광주 민주항쟁에 대한 정치적 태도입니다. 유치하게도 광주 5.18 기념행사에서 “임을 향한 행진곡”도 부르지 못하게 하는 짓이었습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그래도 이만큼이라도 살아 있는 것은 5.18 광주 민주혁명의 피나는 투쟁이었다는 것을 망각하고 역사에서 지워버리려는 반 역사적, 반 민주적 폭거였습니다. 여기에 박근혜의 윤리적 도덕적 범죄가 있습니다. 박근혜 정권은 5.18 학살을 감행한 전두환의 반 민족적, 반 민주적 전통을 이어 받은 폭군이기 때문입니다.
그 둘째는 아버지 박정희가 민청학련을 공산주의 책동이라고 정당화하기 위해서 날조한 인혁당 당원을 사형에 처형한 것처럼, 대한민국 국민의 투표로 선택한 통진당 국회의원들을 폭도로 몰아 감옥으로 보냈습니다.
셋째로 박근혜 대통령이 2012년 2월 국회 앞마당에서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선서한 말,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손들고 맹세한 것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아침 진도 앞바다에서 터져 오는 세월호 참사 소식에 대통령은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아랑 곳 하지 않고 어디론가 잠적했습니다. 국민의 생명 따위는 박근혜 대통령의 머리, 가슴, 마음, 영혼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아무도 모른다고 합니다. 그러나 본인은 알 것이 아닙니까? 망각의 암흑 속에 영원히 없이 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대통령으로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것은 법률적인 범죄일 뿐 아니라,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책임을 회피하거나 포기한 것입니다. 이때부터 실질적으로 우리의 대통령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넷째로 박근혜는 친일 일본 군대의 장교였던 아버지의 대를 이어서 친일 행각을 하였습니다. 2015년 12월 일본 돈 10 억 엔으로 우리 민족의 가슴 아픈 위안부의 역사를 팔아먹었습니다. 일본제국주의자들에게 “불가역적인” 면죄부를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중.고등 학생들에게 국정교과서를 강제로 배우게 해서 일본제국주의가 한국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감사하는 마음”과 박정희 대통령의 군사독재와 한강의 기적과 새마을 운동의 성공을 찬양하고 우상화하게 만드는 역사 왜곡을 감행하고 있습니다.
다섯째로 박근혜는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통일에 대해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통일은 대박”이라고 최순실 다운 표현으로 사람들을 홀리지를 않나, “북한 동포들은 우리 남한의 품으로 오라”고 먹혀 들어가지도 않을 선동을 하지 않나. 그에게 평화나 통일에 대한 분명한 개념이라도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이미 탈북 한 북한 동포들이 남한 사회에 적응을 하지 못해 다시 “탈남”하겠다고 하는 판에 도대체 우리 대통령의 의식 속에는 제대로 된 평화의식이나 통일 비전이 있기나 한가 의심스럽습니다. 하루아침에 그래도 남북 대화와 왕래의 끄나풀로 근근이 생명을 유지해 오던 개성 공단 사업을 중단해 버렸습니다. 박근혜는 반 평화 반 통일 대통령이란 역사적 민족적 도덕적 범죄자로 기록될 것입니다.
법적으로 도덕적으로 역사적으로 민족적으로 박근혜는 범죄자입니다. 법정에 서야 하고 법적 판결을 받아 죄과를 치러야 합니다. 대한민국 국회가 탄핵을 하기 전에 이미 광장의 국민들은 박근혜를 탠핵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지금 대통령이 없습니다. 지금 광장의 민중의 소리는 박근혜를 청와대에서 추방하는 일 만이 아니라 박근혜를 앞세워서 박정희 유신 체제를 모시고 떠 받들어 온 새누리당과 극우 반동 세력을 권좌에서 내려오게 해야 합니다. 이 일은 박정희 유령체제에 기생해 온 야당 역시 민중의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박근혜와 박정희 망령이 만들어 온 총체적 난국과 파탄을 지금 여기서 청산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혁명의 깃발을 들고 나선 것입니다. 이 혁명은 하나님의 혁명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혁명에 우리를 불러내신 것입니다.
분노할 때와 개혁할 때
우리의 분노는 하나님의 분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우롱하고 속이고 탄압하고 착취하고 나라의 주인인 민중을 없신여기고 개나 돼지 정도로 여기고 나라의 이름으로 보호하겠다던 약속을 어기고 죽게 내버려 둔 죄악에 대한 분노입니다. 백성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하나님을 분노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분노의 밤은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제 아침이 되면, 밝은 햇빛이 비치게 되면, 새날을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어두운 역사, 귀신이 들끓는 암흑의 역사와 혼돈과 분노와 고통으로 울부짖는 역사를 뒤로 하고 광명의 역사,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4.19 학생 혁명 이후 5.16 군사 쿠데타의 혼돈의 역사를 너무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이승만 독재정권을 민중의 분노로 쳐 물리치고 난 다음, 우리가 만든 혼란의 역사를 기억합니다. 밤의 세력은 아침을 혼란의 아침으로 흐리고 어두운 아침, 비 오고 바람 부는 아침으로 만들었습니다. 권력욕에 눈 먼 정치인들은 아침이 온 줄 모르고, 아침을 거역하고, 아침 햇빛을 멀리하고 혼돈과 무질서와 정치 싸움에 몰두한 쓰라린 기억이 생생합니다. 밤의 세력은 이 혼돈한 아침을 어둠의 혼돈으로 몰고 갔습니다. 총과 칼이, 대포와 전차가 4.19혁명의 열기를 삼켜버렸습니다.
이제 다시 이러한 한국 민주주의의 비극이 와서는 안 됩니다. 정말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거룩한 양심과 정의감의 분노로 승화된 광장의 외침은 이제 새로운 세계,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고 새 역사, 고요한 아침의 나라를 창조해 나가는 일을 해야 합니다.
제일 먼저 박근혜가 대통령의 이름으로 밀어부친 나쁜 정책들을 하나 하나 고쳐 나가야 합니다. 박근혜가 대통령의 자리에서 추방당하기 시작한 지금부터 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그 첫째는 세월호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를 다시 시작하는 일입니다.
둘째는 일본 정부와의 위안부 관계 협상을 모두 취소하는 일입니다.
셋째는 일본정부와의 모든 군사협약을 취소하는 일입니다.
넷째는 개성공단을 즉각 다시 열수 있도록 북한 정부와 협의하는 일입니다.
다섯째는 미군의 한반도 위의 사드 배치 작전을 중단하는 것입니다.
여섯째는 우리 역사를 왜곡시키는 국정교과서 발행을 즉시 중단시키는 일입니다.
회개하는 한국교회
이제 우리 한국 교회는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 장로교회는 아직도 일제하에서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에게 “황국신민”의 의무를 다하라고 가르치고 일본 귀신들을 모시는 신사에 가서 절하고 경배하라고 한 총회의 결의에 대해서 온 천하에 회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회개하여야 합니다.
남한의 교회는 반공의 이름으로 이승만 독재정권을 기독교 정권이라고 교인들을 호도하고 정교분리라는 허구와 왜곡으로 이승만 정권의 비리와 부패에 대해서 침묵하고 오히려 지지하고 응원한 죄를 회개하여야 합니다. 나아가서 박정희 군사 독재 정권과 유신정권을 위해서 조찬기도회를 열고 모든 정권은 하나님으로부터 왔으니 복종하라고 설교한 한국 장로교회 목사들은 회개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5.18 광주 민주혁명을 탄압하고 몇 천 명을 학살한 신군부 장군들의 살인죄를 덮어 주고 위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기원한 목사들과 한국 교회는 회개하여야 합니다.
최태민 목사라고 하는 사이비 기독교 목회자를 양산하고 있는 한국교회는 회개하여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기복신앙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왜곡하여 천민자본주의, 돈과 마몬을 섬기는 우상숭배의 기독교로 만들어 최태민 목사 같은 가짜 목사를 만들어 낸 책임을 오늘의 한국 교회가 져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정의를 설교하지 않습니다. 사랑을 설교하지 않습니다. 평화를 설교하지 않습니다. 돈과 권력과 성공, 3 박자 축복만을 위해서 교인들을 대형교회로 몰고 왔습니다. 한국 교회가 오늘의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를 만들어 낸 주범입니다. 하나님 앞에 통렬한 회개를 해야 합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준비하는 한국교회
이제 한 달 후면은 우리 기독교 개신교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해가 됩니다. 오늘의 우리의 정치적 현실, 혁명의 한가운데서 우리는 우리 개신교, 우리 교회 우리 교단을 개혁하는 일을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독일 교회는 이미 10년 전에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신학 선언을 했습니다. 23개 항에 달하는 회개와 다짐과 개혁 그리고 앞으로의 세계를 꿈꾸는 비전을 담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주로 사회를 새롭게 하고 개혁해야 한다는 혁명적 선언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 특히 우리 장로교 통합교회는 그 동안 너무도 개인의 믿음만 강조하고 개교회의 성장, 교인 늘리기에만 정신을 썼습니다. 정교분리 원칙이라는 허구에 갇혀서, 정치가 문들어지게 썩어 가고 있는데, 사회가 함께 혼란에 빠져 있고 젊은이들이 “헬 조선”이라는 말 까지 터뜨리고 있는데, 교회는 교회 안에 교인들을 가두어 두고 개인이 예수 믿고 교회 나와서 현금하면 천당 가고 구원 얻는다는, 마취약과 진통제 만 팔아 왔습니다. 이제 교회 밖을 내다 볼 때가 왔습니다. 광장의 목소리와 아우성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을 돌이켜 보고 신학을 다시 세워야 하겠습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로마 교황과 신성로마제국이 돈과 권력으로 부패하고 “면죄부”라는 것을 팔아 돈을 걷어 드리는 행태에 대해서 분노했습니다. 그의 분노는 그가 강의하던 비텐베르트 대학 교회 대문짝에 붙인, 95조항의 항의문에 절절히 나타나 있습니다. 루터의 분노는 종교개혁으로 승화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시작한 개혁은 교회 뿐 아니라 온 유럽의 정신세계와 장치 판도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서구 왕권의 해체와 민주주의의 궐기를 만들어 냈던 것입니다.
종교개혁은 교회 안의 문제만을 다룬 것이 아닙니다. 루터가 외친 세가지 솔라: 솔라 피데(오직 믿음만으로), 솔라 그라치아(오직 은혜로만), 솔라 스크립츄라(오직 성경만으로)는 재검토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만으로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정치에 참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정치는 정의와 사랑과 평화와 생명의 하나님나라 정치입니다. 우리는 성격을 글짜 그대로 믿어야 한다면서, 불의한 정권을 지지하고 편들고 부패한 정권과 함께 썩어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랑과 정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대로 행하는 그리스도인, 그 말씀대로 정치하는 나라를 만드는 하나님의 혁명적 정치에 참여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당신의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낸 일은 바로 이 세상에 혁명을 일으키려고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려는 경륜입니다. 이 하나님의 혁명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 신구약 성경책입니다. 우리 성경책은 돈과 권력을 위한 우상숭배의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기 예수가 태어나신 날 새벽, 천군천사들이 하늘 높은 곳에서 나팔소리와 함께 부른 노래, “하늘 높은 곳에는 하나님께 영광, 땅에서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백성들에게 평화”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세상을 새롭게 하실 예수님과 함께 새로운 세상, 사랑과 정의와 평화 그리고 생명의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함께 나눔'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6년 겨울의 '나단'에게 - 서덕석 (0) | 2016.12.06 |
---|---|
근래 최고의 명 설교, 자고로 설교는 이래야~ (0) | 2016.12.06 |
선으로 포장된 어설픈 타협은 이제 그만! 토마스 뮌처 (0) | 2016.11.22 |
기독교의 무속성, 그 퇴행적인 자기 함몰 (0) | 2016.11.06 |
기독교 근본주의는 살아있다? 그 몰락의 민낯 (0) | 2016.1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