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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신학연구소

[封駁/諫諍] ‘마을목회’ 용어 발상지 - 홍성 신동리교회

by 농민만세 2024. 5. 30.

[封駁/諫諍] 2024.05.22


제목 : ‘마을목회’ 용어 발상지 - 홍성 신동리교회



정작 본인은 좀 의아스러워 하시는 걸, 일단 잘 보이는 데 걸어 달라고 오필승 목사(마을목회신문 대표, 신동리교회)께 간판을 만들어 맡겨 드렸다. 우리의 ‘농촌교회를 어떻게 해야 하나?’하는 공통의 문제를 안고 벌써 십수 년 째 오필승 목사 곁에서 지금까지 함께 했던 많은 일을 돌아보면서 이렇게 간판에 새겼다. [마을목회연구소 - ‘마을목회’ 용어 발상지]

‘마을목회’ 용어 발상지라니?! 그 용어를 처음 주창한 이가 누구냐?는 걸 주장하자는 게 아니다. 그보다 그런 새로운 용어를 사용하면서 목회적 정체성을 찾아내야 했던 그 현장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한 농촌교회 목사가 농촌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대해 어떤 남다른 대처를 하게 되었던 것인지, ‘마을목회’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어떤 목회적 선교적 과제를 극복하려고 했던 것인지, 그 명확한 의미를 송곳으로 찌르듯 물어 그 진짜 의미를 알아야겠다는 것이다.

‘마을’과 ‘목회’라는 매우 생경한 두 낱말을 함께 붙여 사용하게 된 그 현장의 목회적 신학적 고민들과 함께, 진력하여 실천하면서 길을 찾아가야 했던 절실함이 무엇이었는지 알아야 그것을 우리 각자의 목회 현장에 구현해 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그저 시류에 따르는 또 하나의 무슨 교회 부흥의 비결로 여기니 “마을목회가 뭔데 굳이 그걸 해야 하냐?” “마을목회하면 교회 부흥되냐?”는 길 잃은 엉뚱한 질문들이 여전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래서 오필승 목사가 당시 ‘마을목회 이야기 한마당 첫 모임’을 초기 기획하면서, “아예 ‘마을목회’라고 해야겠다.”고 하시는 말을 곁에서 들으며 내심 몹시 고무되었던 나는 ‘마을목회 현장’들을 심층 취재하여 알려야겠다는 마음이 일었고, 당시 <예장뉴스>에 이런 제목의 연재 기사를 호기롭게 시작했었다. “마을목회 따라잡기” (참고로, 여기에서 두 편의 기사를 볼 수 있다 – https://ckaskan1.tistory.com/6196 | https://ckaskan1.tistory.com/6515)

‘마을목회 현장 따라잡기’라니? 그것은 특히 마을목회가 무엇보다도 현장 목회이기 때문이다. 한때 한국교회가 한껏 양적 팽창을 누릴 때 많은 목회자가 그처럼 교회를 급성장시켜 성공하는 비결을 배우겠다고 수백만 원도 아까워하지 않고 몰려 다녔다. 처음에는 참 기괴한 일이라고 여겼었는데 한편 이해가 되는 면이 없지 않은 것이다. 그만큼 목회현장은 도자기를 굽는 것처럼 이론이나 어깨 넘어로는 배울 수 없을 만큼 살아 움직이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마을목회’는 교회 밖 세상 속에 가장 깊이 스며들어 우리 본연의 정체성을 고민할 정도로 선교의 첨두에 있는 목회이다. 그런데 이걸 다른 이들이 보도한 기록물을 인용하는 것으로 이야기한다? ‘현장 없는 신학’ ‘현장을 경시하는 한심한 풍토’가 한국교회와 신학을 이 지경으로 만든 주범 아닌가. ‘마을+목회’라는 낯선 두 낱말을 너무도 당연히 함께 사용할 수 있었던 앞선 선교적 목회적 관점이 발생된 입체적 상황을 읽어야 마을목회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교회 주변의 마을을 주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현장이라고 그 전체를 품게 되었던 그 심경, 그런 목회적 안타까움이 발동한 신학적 자리, 거기에서 겪은 좌절과 발견한 하느님 나라의 희망, 남모르는 고민으로 밤을 지새우며 읽고 있던 성서 구절, 쉬지 않고 구하고 찾고 두드린 구체적인 해결 방안들, 남이 쉬이 듣지 못하는 마을의 신음과 탄식이 들린 신앙의 자리, 자신이 마을 공동체의 ‘해결사’로 나서야겠다는 남다른 소명이 생긴 배경...을 읽어내야 한다.

그에게 그런 마음을 주신 주님께서는 또한 우리에게 어떤 실마리를 주시는 것인가? 하는 자세여야 한다. (빌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복음 선교의 최일선에 있는 ‘마을목회’ 만큼은 또 한 번 유행하고 마는 흔한 교회 성장론 내지 목회 성공비결 중 하나여서는 안 된다.

그래서 더욱 그 ‘맨 처음의 자리’가 궁금하는 말이다. 어찌 이 하느님 나라의 일을 남의 말만 몇 번 듣고 흉내 내 보다 안 된다고 그만 두겠는가. 마을목회 운동이야말로 최상의 교회갱신운동이요 선교적교회운동이며, 최고의 하느님나라운동이요 갈릴리 예수님 운동이다. (聾) 

 

/기사 보기 : <마을목회신문>

http://www.maeulch.net/news/2872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