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캉과 바디우, “참아야 하는 정체성의 가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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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이야기로 논의를 시작해보자. 호퍼의 그림은 공허하다. 풍경은 텅 비었고, 그려진 인물들 역시 익명의 존재로 느껴진다.
아직 의미를 부여받지 못한 세계; 혹은 이제까지의 의미를 상실한 순간의 세계 이미지: 이미지와 의미의 안정된 연결이 이미지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이라면, 호퍼의 작품들은 정체성 상실의 순간이 이미지화된 것이라 말해도 좋지 않을까? 정신분석은 이러한 의미 상실의 순간을 ‘우울증’으로 해석한다. 환자의 ‘말-상징체계’가 환자 자신이 누구인지, 나아가서 환자의 세계-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하려 들지 않는 현상은 우울증의 전형적 증상이다.
호퍼는 이미지의 우울증이라 불러도 좋을 의미상실과 상징질서 둔화(완만화)의 증상을 멜랑콜리의 매혹 속에서 그려내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매혹은 정체성의 윤리와 관련하여 아주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왜냐하면 호퍼의 그림 속 이미지를 의미에 대한 거부와 저항의 관점에서 파악할 경우 그것은 타자의 상징질서에 대해 투쟁하는 이미지의 매혹으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 속 세계는 의미들의 고전주의적 질서를 거부하는 저항 속에서 자신의 고유한 결정불가능성을 지켜내려는 투쟁, 쉽게 말해서 타자가 자신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도록 하는 완고함을 유지하려는 투쟁의 매혹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텅 빈 것을 이토록 매혹적으로 그려내는 것은 텅 빈 것이 아무것도 아니면서도 동시에 결코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라는’ 기이한 감정을 유발한다.
그것은 ‘없음이 있다’고 하는 역설적 감정을 관객에게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이러한 역설은 모든 집합의 보편적 부분집합이 공집합이라는 명제 속에서 어떻게 라캉-바디우의 현대적 주체이론이 정체성에 대한 생각을 정립하는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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