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신학대학교 교수가 한 SNS에 오늘날 목회 외 생계수단 내지는 직업 또는 임시 노동을 하지 않을 수 없는 현장의 많은 목사들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자신의 글을 시작하고 있다, “목사가 임지를 찾지 못해서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하고 있다. 목사가 목회를 하긴 하는 데, 생계를 위해 다른 일도 겸하고 있다. 그는 과연 목회자인가? ...대체로 그들은 목사가 아니고, 그들이 하는 것은 목회가 아니라고. 심지어 정죄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의 처지와 입장을 이해하고 역지사지로 생각해야 한다, 비난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고마운 말이지만 이런 식의 이야기는 이미 10년 전쯤에 써야했던 글이다. 그런 식의 한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는 벌써 한참 지났다는 말이다. 차라리 목회와 선교를 담당하는 두 종류의 목사직을 헌법에 명시하라고 하거나, 이미 넘치게 받는 목사들의 외부 강의나 설교의 대가로 받는 엄연한 이중 수입은 아무 말이 없고 생계를 위해 노동하는 목회자들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왜곡된 현상을 말해줘야 한다.
프랑스 개신교의 반등
바로 며칠 전, “종교개혁 500년 이후, 2017년 총 인구의 3% 벽을 넘었다”는 한 언론의 기사를 편집장께서 보내주셨다.(기사 보기) “프랑스 프로테스탄트는 역사 상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종교개혁 당시 (1560년대) 총 인구의 12%를 차지했던 프로테스탄트는 그 이후 핍박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격감하여 1~1.8% 수준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21세기를 접어들면서 완만한 상승세를 보이면서 결국 2017년에 총 인구의 3% 벽을 넘어 선 것이다. 세속화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시대 속에서 개신교의 반등을 알리는 작은 전율은, 프랑스의 역사적 사회적 배경을 고려할 때, 매우 의미있는 현상인 것이다.”
그리고 ‘목사 양산과 한국교회의 몰락’이라는 「기독교사상 2016년 9월호」의 특집 기사의 첫머리도 검색된다. “프랑스 개혁교회의 목사가 된 사람들은 소수이지만, 프랑스 사회의 양심세력으로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의 생활은 어떨까? 처음 목사가 되면 프랑스에서 가장 저임금을 받는 노동자 수준의 급여를 받는다. ‘호봉제’라고는 하지만 결코 넉넉하지 않다. 학교와 교수도, 교단과 목사도 공히 가난하다. 그들은 돈이 아니라 신앙양심과 자긍심으로 살아간다고 보면 맞다. 프랑스 사회에서 개혁교회 목사에 대한 신뢰가 매우 높은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김수남 목사 : 기독교 사상 주간)”
우리나라의 목회자 호봉제 논의
참으로 부끄럽고 또 부러운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에서 ‘목회자 생활비 호봉제’가 처음으로 공론화되기 시작한 것은 1993년 향린교회(홍근수 목사)가 발표한 <신앙고백과 교회갱신선언>(1993.5.15. 동아일보 보도)으로 보인다. 이어 1994년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에서 공식적으로 논의된 적이 있었고, 2014년에는 기장 목회신학연구소에서 ‘목회자 호봉제 필요한가’라는 제하의 세미나를 연 적이 있다. 그리고 ‘교회재정건전성운동’에서는 2015년 11월, ‘목회자 처우, 공과 사의 구분은 가능한가’를 주제로 교회재정세미나를 열고, 목회자 사례비의 양극화와 교회재정의 불투명성 등을 지적하고 교단별 호봉제 도입 등을 제안하였다.
특히, 2016년 가을 기독교대한감리회의 감독회장 선거에서 허원배 목사(부천 성은감리교회)는 후보로서 공식적으로 ‘교회 양극화 해소 위해 호봉제 제안’을 공약하면서, “전체 목회자의 66.7%는 정부가 정한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급여를 받고 있고, 목회자의 37%는 가족의 생계를 위하여 교회사역 이외에 다른 경제활동을 하고 있으며, 73.9%는 가정과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목회자의 이중직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는 2014년 목회사학연구소의 조사 결과를 인용했다. 이 제안의 핵심은 “감리회에서 정상적으로 목회하는 목회자의 최저생활은 감리회가 보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감리회는 목회자의 사역 상황을 철저히 점검하여 ‘목회자생활보장법’을 제정해야 한다. 감리회의 정체성과 공교회성 회복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하는 첫걸음으로 목회자가 병들지 않도록 조치하는 것이며, 그 조치는 목회자가 돈 때문에 목회에 전념하지 못하는 현실을 개혁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리교단은 어떠한가? ‘목회자 생활비 호봉제’로 아무리 검색을 해 보아도 우리교단 안에서 이상과 같은 ‘목회자 생활비 호봉제’를 논의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2005년에 ‘높은뜻숭의교회’김동호 목사의 경우를 보도한 내용만이 보인다. 당시 김동호 목사는 목사 호봉제를 채택하였는데 ‘그 기준을 같은 연배인 사립대 교수 연봉의 85%로 잡고, 아파트(32평형) 한 채와 승용차를 지급하는 것인데, 그 결과 예전보다 조금 깎인 사례비 5천여만 원을 연봉으로 받고 있지만, 더 없이 만족하다’는 것이다. 워낙 유명한 분이니 도리어 마음 놓고 이야기할 수 있겠는데 그런 시도들이 모두의 박수를 받을 것으로 여긴 것이라면 안됐지만 실로 한국교회의 실정에는 깜깜한 자기자랑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내용 보기)
2018년 교회동반성장사업 지침
요즘 우리교단의 전국 미자립교회 목회자들이 터뜨리는 한숨 소리가 깊기만 하다. 「2018년 교회동반성장사업 지침」 곧 「1차3개년(2016~18년) 교회동반성장사업 3년차 정책 및 지침」이라는 것이 총회로부터 각 미자립교회의 목회자들에게 배포되었기 때문이다. 각 노회 홈페이지 자료실에서 볼 수 있을 것인데 정책의 의의에 대한 설명을 에둘러 말하고 있지만 사실 내용은 간단하다. “자립이 요원한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들은 생활비만 받아먹고 있다. 지원금도 엄청 줄었다. 그러니 서서히 압박해서 미자립 교회는 모두 없애겠다.”는 것이다. 지침서 내용 중 '4. 정책의 시행지침, 나.항'”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나. 노회는 자립대상교회들에 지원하는 지원금을 50%는 생활비, 50%는 자립사업비로 구분하되, 생활비의 비율을 매년 10%씩 3년간 자립사업비로 전환해 나간다.”간단히 말하면 현재 미자립교회를 자립교회로 성장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실천하지 못하면 현재 지원하는 목회자 생활비의 반을 깎아 버리겠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자녀들 학자금이 없어 쩔쩔 매는 목회자 가정들을 더욱 쥐어짜서 교회자립사업비로 쓰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자립사업비’라는 그럴듯한 명목이 바로 가난으로 힘겨운 목회자들 가정의 목을 조르는 줄이다. 자립사업을 계획하고 실행해 보기도 전에 그 가정들은 파산하고 말 것이다.
이에, “동반성장 정책”이라는 허울로 결국 전국의 가난한 목회자 가정들을 파산으로 몰고 가는 총회의 경제논리에 급급한 관련 정책을 전적으로 재고하고, <목회자 생활비 호봉제>를 신속히 연구 시행하기 바란다. 동시에 ‘동반성장’운운하는 말을 버리지 않으려면 당장에라도 지원금을 받는 목회자들도 그 위원회에 당연히 동참시켜 모든 정책 입안과 시행에 동일하게 참여하게 해야 한다. 단언컨대 그들은 총회의 관리 대상들이 아니라 엄연한 목회자들이요 일원이라는 말이다. 하물며 ‘왜 어려운 교회들까지 책임져야 하냐?’는 생각을 가진 도시교회 장로 목사들은 피를 토하고 회개해야 한다. 도시작은교회들과 농어촌교회들이 심혈을 기울여 전도하고 양육하여 수평 이동시킨 교인들이 현재 자신들 교회의 기초가 되었고 기둥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이처럼 ‘동반(同伴)성장 정책’의 이면에는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교회를 성장시키지 못하는 목사들’을 퇴출시키겠다는 의도가 들어있다고 그 대상인 목회자들은 너나없이 느끼고 좌절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교회를 자립시킬 구체적인 사업 계획서를 써서 제출하라고 전국 미자립교회에 배포된 보고서 양식을 보라. 아닌 말로 ‘더러워서라도 자립 선언하게 하려는 것’같다는 탄식이 들린다. ‘주일예배 참석 수를 실사’하여 전국의 수많은 작은교회들을 ‘기도처’로 합법적으로 강등시킴으로 지원금의 누수를 막겠다는 말도 들린다. 이건 목사와 지교회에 대한 기본 예의조차 없는 것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시도가 아닐 수 없다. 우리 헌법상 6개월에 한 번만 교인의 의무를 다하면 엄연한 재적교인이니 제대로 조사하려면 일 년 꼬박 참석하여 조사해야 하리라는 점을 미리 일러둔다.
큰 교회에서 일하니 많이 받아야 한다?
더 이상의 죄 없는 목회자 가정의 희생을 강요 내지는 묵과하지 말고 비혼 성직제도를 운용하거나 그럴 수 없다면 신속히 <목회자 생활비 호봉제>를 연구 시행하기 바란다. 목회자 생활비 호봉제는 상당히 구체적인 안을 제시한 허원배 목사의 제안이 충실한데 (내용 보기) 사실 문제는 시행 기준이나 방법이 아니라 필요 이상 많이 받아 살고 있는 목회자들의 기본적인 신앙 양심 또는 의식에 달려있을 것이다. '큰 교회에서 더 큰 일을 하니 더 많이 받아야 한다'는 기막힌 양식을 가진 경우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기자가 주장하는 목회자 생활비 호봉제의 내용은 간단하다. 매년 정부에서 발표하는 <최저생계비 + 자녀 학자금 + 호봉 간 격차 1만원씩>이 전부이다.
이렇게 해야 피골이 상접한 모습에 두 눈만 번뜩 거렸을 세례자 요한만큼은 아니더라도 우리 목회자들이 사명자로서의 진정한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다. 이런 논의를 하고 있는 이 시점에도 「2018년 교회동반성장사업 지침」을 놓고 한숨을 내쉬고 있는 전국의 가난한 목회자인 어머니 아버지들 가슴의 멍은 깊어만 가고 있다. 이미 너무 늦었다. ‘목회자 생활비 평준화 정책’의 한계를 맞이하고 있을 때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고 목회자들로 하여금 있는 목회자나 없는 목회자나 공히 ‘돈의 노예’로 전락되지 않도록 <목회자 생활비 호봉제>를 연구 시행했어야 했다.
우리는 최저생계비와 자녀학자금만 있으면 된다! 그 이상 주려고 하지 말라! 그리하여 우리로 돈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라! 그래야 뭐든 원하는 대로 기도하고 얻어내려는 무한 욕망의 투사를 신앙심으로 착각하거나 호화생활을 하는 목사를 우러러보는 가짜 기독교인들 그리고 대형 교회당에 소속되었다는 헛된 자만심에 빠져 허우적대는 무지한 교인들도 우리의 교회들로부터 대거 걸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