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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칼럼]

[한마음 칼럼] "쌍탑 교회'당'을 위한 변명"

by 농자천하/ 2019. 7. 27.

 

그 쌍탑 교회'당'을 위한 변명

나에게 신앙을 물려주신 외가 어른들이 ‘광나루 신학교’라고 불렀던 장신대의 엘림 기숙사는 당시 오래된 구형 철제 2층 침대에 일본식 다다미 매트리스가 놓여있었다. 멀고 먼 농촌교회에서 올라가 한 주 동안, 기숙사 자리가 턱없이 부족하여 어쩔 수 없이 몰래 숨어든(?) 농어촌교회의 동료 전도사들과 함께 지내야 했다.

참 미안한 일이었지만 당시 엘림 기숙사의 목연과 학생들은 그처럼 대부분 농촌에서 목회하던 전도사들이었기에 수업 분위기는 썩 좋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었다. 우리는 4년간의 신학과 학부 과정을 마친 상황이었기에 학점을 이수해야 하는 과목들이 거의 다 이미 수료한 과목들이었고, 목사 안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그 먼 길을 왕래해야 하는 과정의 하나로 여기고 있었다.

주말이면 섬기는 교회에 내려가 혹사 되고 다시 장거리 버스에 시달리며 상경하는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가 가장 힘든 며칠이었다. 그런데 수요일 저녁이 지나면 갑자기 기숙사는 생기가 돌았고, 금요일이면 농촌 마을에 남겨둔 아내와 어린 아기들을 볼 수 있다는 설렘으로 다들 마음이 들떴다.

매번 수요일 저녁이 전환점이었다. 저녁 식사를 서둘러 마치고 수요일 저녁 기도회에 참석하고자 썰물처럼 모두 기숙사를 빠져나갔다. 나는 학교 가까이 있는 광장교회 수요기도회에 참석하였기에 맨 먼저 기숙사로 돌아왔고 잠시 후에는 왁자지껄 어느새 밝고 힘찬 목소리와 얼굴이 되어 돌아오는 동료들을 보곤 했다. 나는 유명했던 ‘농촌 선교회’에 들자고 해도 그러지 않고 대부분 시간을 공부에만 열중해야 했다. 적잖은 수업료를 마련할 다른 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 학기가 시작되었을 때 다행히 성적 장학금을 받게 되어 미안한 마음에 튀김 통닭 몇 마리를 사서 동료들과 나누며 물어보았다. “매번 수요일 저녁마다 분위기가 반전되던데, 원인이 뭐요?”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그러게 우리처럼 명성교회 수요기도회에 참석해 봐야 하는데, 다음엔 한 번 가서 보시오.”

그러고는 여느 교회와는 여실히 다른 힘찬 회중의 찬송과 기도라 거나, 쌍탑으로 높이 올려 지은 교회당이 대단하다거나, 수요기도회인데도 드넓은 예배당이 만석이 되도록 자동차들로 들어찬 주차장이라 거나, 시골의 작은 농촌교회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모습들을 이야기하며 상기되었고 모두 고무되는 것이었다. 더구나 그 대단한 성공을 이룬 이는 지방 신학교에 목연과 출신이고, 그가 학교에서 공부보다는 눈물의 기도를 더 많이 했었다는 등의 신화 같은 이야기들을 나누며 밤이 깊어가는 줄을 몰랐다.

불을 끄고 누웠지만 어떤 동료는 잠이 쉬 들지 않던지 일어나 기도탑에 오르는 이도 있었다. 이 얼마나 소박하고 안쓰러운 일이던가. 우리는 대체 무엇에 마음이 홀렸고 또 부풀렸던 건가. 하지만 여전히 자부심을 넘어 자만심의 상징이 된 그 쌍탑 교회‘당’은 아무 잘못이 없다.



/계속 (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