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음 칼럼 : “농목으로 사는 이유”
면사무소에 취지를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인근 4개 마을 이장님들을 찾아가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들을 파악했다. 모두 스물 몇 분의 어르신들이 선정되었다. 하루 전날 장을 보고 준비하여 다음 날 아침 일찍 모여 조리하고, 오후에 교회 승합차로 배달해 드렸다.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일이었지만, 조금씩이나마 나누어서 봉사할 수 없이 무슨 일이든 거의 총동원 되어야 겨우 감당할 만큼 일손이 부족한 농촌교회에서 이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농촌 일손이 바쁜 철에는 너무 벅차서 잠깐 쉴까 하는 마음도 많았지만 기다리는 어르신들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그중에도 어떤 이들은 자신만 유독 바쁘고 일이 많다고 노골적으로 불평했고 단 한 번도 함께 하지는 않았다. 반찬 맛이 어떠네, 짜네, 싱겁네, 하며 핀잔의 소리를 마을 주민들에게 하는 이도 있었다. 일이 힘들고 벅찬 것보다, 교회 밖에서 누군가 뭐라고 하는 것보다, 오히려 함께 해줘도 부족한 일에 같은 교인들이 노골적으로 불평하며 협력하지 않는 것이 본래 더 힘든 법이다.
하지만 우리는 만 4년 동안 단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매달 한 번씩 정성껏 밑반찬을 만들어 통에 담아 배달했다. 겨울이 오면 김장을 잔뜩 하여 배달해 드렸다. 대단한 듯 생색 내면서 하는 것보다 오히려 드러내지 않고 꾸준히 하는 일이 더 좋은 열매를 거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혼자 사는 어르신은 가져다드리는 반찬보다도 매달 방문하는 우리를 만나는 것을 더 기다리셨고, 조금이라도 더 말벗을 해주기를 바라셨다. 배달을 마치는 저녁이면 우리는 보람과 감사의 마음을 양껏 얻어서 돌아오곤 했다.
한 번은 눈길을 무릅쓰고 마을 언덕길을 내려가다가 승합차가 언덕 아래 끝까지 미끄러져 내리는 위험천만한 일도 있었는데, 생각하면 지금도 오금이 저린다. 돌이켜 보니 정말이지 장하다고 아낌없이 손뼉 쳐 드려도 부족할 만큼 대단한 일이었다. ‘독거 어르신들 돕는 교회’라는 고마운 입소문이 돌았고 칭찬의 목소리들이 들렸다. 이런 일로 교회에 대한 지역사회의 나쁜 선입견이 변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생각지도 못한 데서 몹시 언짢다는 목소리가 들렸다. 어느 이웃 교회였다. 우리는 단 한 번도 어르신들께 우리 교회를 알리지 않았다. 오히려 갈 때마다 그 교회를 일러드렸는데, “왜 남의 마을까지 와서 그러냐? 이쪽으로는 오지 마라!”고 했다.
그러면 자신들은 왜 남의 교인댁 가족을 데려가고 또 남의 교회당에까지 전도지를 갖다 놓는데?! 슬픈 사실이지만 본래 교회의 연합은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이다. (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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