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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칼럼]

[한마음 칼럼] 나는 왜 농목으로 사는가? 20

by 농자천하/ 2020. 1. 11.




한마음 칼럼 : “농목으로 사는 이유” 


교우님들께서 직접 농사지은 메주콩 다섯 가마니(400Kg)씩 삶아 메주를 10년 동안 만들어 된장을 담았다. 첫해에는 무쇠솥과 화덕이 있는 권사님 댁에 모였다. 식당에서 사용하는 LPG 불판을 사용했는데 커다란 무쇠솥에서 콩을 삶은 데에는 열효율이 너무 낮았고, 삶은 콩을 두꺼운 비닐과 자루에 담아 발로 밟아 으깼는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 그때 나는 심장부정맥이 한창 심할 때였기에 관절까지 매우 약해져 있었다. 권사님들이 전날 미리 씻어 불려놓은 콩을 가마솥에 붓고, 삶아진 콩을 수레로 실어다 발로 밟아 으깨고, 또 그것을 들어 옮겨 일일이 손으로 떼어 네모나게 다져서 메주로 만들었다. 나는 본래 무슨 일이든 몸을 사리지 못하고 해치우는 성격이라,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그저 발로 밟고 들어 옮겨드리는 것뿐이었는데도 허리와 무릎이 끊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당시 크게 나빠진 심장 때문에 집에 와서도 누워서 잠을 잘 수 없었지만, 아무에게도 내색하지 않았다. 목사가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은 언제나 적잖은 약점이 되는 것인데, 나는 여전히 교회를 해치고 있는 이들과 씨름하며 더 버텨야 했기 때문이었다.


3백여 개의 메주를 늦은 밤까지 꼬박 사흘 동안 만들어서 권사님네 하우스에 늘어놓고 말렸다. 추운 겨울 날씨인데도 교우님들은 뜨꺼운 메줏덩이를 만드느라 땀을 비오듯 흘리셨다. 이삼일 뒤 다시 모여 볏짚을 꼬아 매달았다. 다음 해부터는 교회당 앞마당에 화덕을 설치하고 해수욕장에 쓰러져 죽은 소나무와 솔잎을 장로님 댁 화물차로 실어다 메주를 쑤었다.


메주를 매달아 말릴 데가 마땅치 않았다. 각목이랑 지붕용 투명 아크릴을 사다가 교회당 벽에 건조장을 만들어 붙였다. 4년 차부터는 당시 하우스가 넓고 가마솥 화덕을 잘 만들어놓으신 장로님 댁에 모여 만들었다. 옛날 토종맛 된장은 입소문이 나서 잘 팔려나갔고 그냥 메주로 사가는 이들도 많았다. 우리는 그렇게 꼭 10년 동안 메주를 쑤었고, 교우님들과 힘써 헌금한 것을 합쳐 교회당을 이전할 즈음에는 5천만 원이라는 큰 기금을 만들어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런 중에도 한편에서는 지독하게도 이기적이고 사욕을 채우려고만 하는 이들로 너무나 힘들었다. 하지만 그 어려운 교회를 지켜내며 함께 하는 교우님들의 안타까운 수고와 헌신을 보며 나는 혼자 눈물을 쏟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런 교우님들을 두고 떠날 수는 없다’ ‘이 교회가 주님의 이름을 드높이는 날까지 가보자!’ ‘이 모든 수고가 큰 기쁨의 눈물로 바뀌는 날을 끝내 온몸으로 소망하자!’고 주님 앞에서 감히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때 우리는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다시 세웠던 에스라-느헤미야서를 정말 많이도 읽고 묵상하였다. (에스라 3,12) “성전 기초가 다시 놓인 것을 보고, 크게 통곡하였고, 다른 쪽에서는 기뻐하며 즐거이 노래하였다.” (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