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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칼럼]

[한마음 칼럼] 나는 왜 농목으로 사는가? 23

by 농자천하/ 2020. 2. 1.





마음 칼럼 : “농목으로 사는 이유” 


무슨 일이든 잠시도 쉬지 않고 하루를 보내지 않으면 어떤 불안증으로 잠을 쉬 이루지 못하는 게 습관이 된 지 오래다. 다 이런 건 아니겠지만 목회라는 일의 특성 때문인가 보다.


25년 전 목사 안수를 받던 해에 나는 충북 괴산군 연풍면에서 교회를 섬기고 있었다. 가까이에는 경북 문경군으로 넘어가는 이화령이라는 높다란 고갯길이 있었고 산마루에는 군부대가 있었다. 주일 아침이면 12인승 교회 승합차를 몰고 가서 스물 대여섯 명씩 태워오곤 했다. 


굽이치는 이화령 고갯길을 내려올 때면 승합차가 휘청거려 아슬아슬했는데, 가끔 파출소에서 순경들이 고갯길 입구에 순찰차를 대놓고 서 있곤 했다. 작은 면 소재지 시골 마을이었으니 서로 모르는 사이도 아니었고 일주일에 한 번 교회당에 나오는 군인들 생각해서 짐짓 모르는 척 경광등을 켜놓고는 나에게 조심히 천천히 운전하라고 주의를 환기해 주는 것이었다.


그곳의 부대장도 가족과 함께 꼭 주일을 지키는 독실한 신자였다. 어느 날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목사님 사시는 걸 보니 꼭 우리 일선 부대장들의 생활과 아주 비슷하십니다.” 출퇴근이 따로 없고 24시간 비상 근무체제에, 수십 수백 명의 사람을 상대하고 관리하니, 일이 있으면 있는 대로 육신이 쉴 새가 없고 일이 없으면 없는 대로 정신이 쉬지 못하니 그러하다는 말이었다.


총회에서 시작한 ‘목회자 생활비 평준화 정책’으로 도시교회들의 선교비 지원은 물론 그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었던 지역사회 선교 활동들은 연중 여름 행사로 축소되었다. 물론 매 주일 교회학교 아동부 활동과 인근 중학교 청소년 음악밴드 지도 그리고 월 1회 독거 어르신 밑반찬 돕기와 메주 만들기 등은 계속되었지만 만 4년 동안 매일 모이던 지역아동센터가 중단되자 곧 심각한 부정맥이 찾아왔다. 무슨 일이든 쉬지 않고 매일 일에 몰릴 때는 모르다가 갑자기 작은 여유라도 생기면 한계에 달해있던 육신이 덜커덕하고 고장 나는 건가 보다.


역시 내 육신만큼이나 한계에 달한 교회당과 사택을 틈틈이 고쳐 살면서 교회 헌금을 아끼고 아껴 건축 예산을 모아나갔다. “어려운 농촌교회가 스스로 생존하며 지역사회를 선교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이런 생각이 매일매일 나를 짓눌렀다. 동료들 모임에 나가서 그런 이야기를 꺼내 보면 어떤 이는 대놓고 이렇게 말했다. “아니? 왜 그래야 해요? 교인들이 할 일을 왜 목사가 짊어져요?”


“그럼, 이 어려운 농촌교회에서 목사는 손가락질만 하고 산다고?!” 지금도 생각하면 그렇게 말하는 밉상의 멱살이라도 잡고 싶을 만큼이나 부아가 나는 말이지만 하여튼 늘 이상한 목사 취급받는 건 나였다. 그런데 그런 이들은 그렇게 떠받드는 교인들 위에 앉아 목회하며 사는 걸 보면, 정말 구하는 대로 주시는 건가 싶기도 하다. 그때쯤 나는 덴마크 농촌을 살려낸 협동조합 운동을 보고 있었다.  (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