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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칼럼]

[한마음 칼럼] 나는 왜 농목으로 사는가? 24

by 농자천하/ 2020. 2. 8.




한마음 칼럼 : “농목으로 사는 이유” 


무슨 일이든 ‘모르면 용감한 법’인가 보다. 도대체 그 일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인지 따져볼 줄도 모르면서 어떤 일이든 그야말로 농촌교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고 또 조금이라도 헤쳐나갈 무슨 실마리라도 되는 것이라면 전후 사정을 가리지 않고 일단 실행에 옮겨 왔다.


선교 1백 년을 훌쩍 넘기도록 물론 한국교회는 특히 농촌선교에 줄곧 관심이 있었지만, 총회 농어촌선교부가 국내선교부로 통합되었다가 다시 독립부서가 되었다를 반복해온 것만 보아도 누구도 뾰족한 해결책을 마련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언젠가 총회 농어촌부 부장이 말했다. “농촌교회, 하나님도 어찌하시지 못할 만큼 답이 없습니다.” 그만큼 이것은 사회 구조적인 문제라는 말이다. 영락교회의 농촌선교 실무자로 수십 년 봉사했노라는 어떤 장로님과도 오랜 시간 통화를 했다. 협동조합 운동을 이야기하자 자신도 크게 동의한다면서 말했다.


“이제는 무한정 퍼주는 식의 농촌교회 지원은 곧 한계가 옵니다. 농촌교회 스스로 자신을 세워갈 수 있는 보다 실질적인 대안 마련을 농촌교회에서 먼저 해 주셔야 합니다.” 실로 당연하고 또 진작에 그랬어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언제나 문제의 요점은 이것이었다. “고양이 목에 방울은 누가? 어떻게?” 농촌교회 자활 방안을 추구하자는 의견만 해도 매우 앞선 생각이었지만, 정작 그 일을 추진할 수 있는 인적 물적 자원 자체가 거의 모두 도시교회로 빠져나간 농촌교회 아닌가? 그렇기에 아닌 말로 ‘하나님도 못 하시는 일’이라는 자조 섞인 좌절의 목소리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보면 이런 사회 구조적인 문제들을 슬기롭게 해결해 낸 사례는 매우 많다. 2012년 공동농사를 시작하기 전에 여러 사례를 찾아보던 중 덴마크의 그룬트비 목사님의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니콜라이 그룬트비(Nikolaj F. S. Grundtvig, 1783~1872)를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덴마크의 신학자, 루터교 목사, 시인, 민족운동가, 역사가, 민속학자, 정치가, 저술가, 교육자, 교육학자, 철학자.


그룬트비 목사님이 활동하던 당시 덴마크는 프러시아(독일)와의 전쟁에서 패해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주고 곡창지대인 홀슈타인 지역까지 넘겨준 상태였다. 그리고 남겨진 땅은 북해와 발트해의 바닷바람에 시달리는 황무지였다. 국가 경제는 중앙은행이 파산할 정도로 파탄지경이었다. 온 국민은 좌절과 실의에 빠져 전국에는 알코올 중독자들이 넘쳐났다. 의회 의원으로 나선 그룬트비는 온 국민의 의식개혁운동을 주창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루터의 종교개혁 정신이었다.


나중에 그룬트비 목사님이 ‘협동조합 운동’을 일으킨 분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지역사회의 복이 되는 교회>라는 표어는 우연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을 실현해 내는 길고 긴 과정을 누군가 시작해야 했다.  (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