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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칼럼]

[한마음 칼럼] 나는 왜 농목으로 사는가? 25

by 농자천하/ 2020. 2. 15.




한마음 칼럼 : “농목으로 사는 이유”


20대 후반, 신학교 다니고 있을 때 이미 나는 농촌교회를 담임하여 목회 중이었는데, 그 당시 농촌교회를 회복시키고 살려낸 모델로 널리 알려진 교회와 선배들이 있었다. 뜻이 맞는 동료들과 기회가 되는 대로 몇 교회들을 방문했고 관련 자료들을 열심히 찾아 읽은 기억이 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알지 못했다. 어떤 일이든 이미 성공한 사례들은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리고 우리의 목회 현장들이 교회마다 다 다르고 변화무쌍하며 또 매우 복잡한 환경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기에 그런 사례들을 일반화시켜 적용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처럼 먼저 어떤 성공 사례를 이룬 경우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주변의 상황적 요인이나 배경 또는 그 자신들도 잘 모르는 어떤 사회적 자본이 복합적으로 작동하여 이루게 된 것이지만, 그렇게 남 달리 성공한 요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경우는 의외로 거의 없다는 사실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이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믿음으로!’라는 무지의 함정에 빠진 줄도 모르고 무슨 일이든 시작하여 큰 낭패를 겪는 일은 부지기수이다.


가까이 보령시의 농촌 작은 교회에서 목회하다가 강원노회로 이임한 후배 목회자를 오랜만에 만났는데 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교회에 처음 인사하러 갔을 때 그곳 교인들이 ‘저희가 목사님에게 원하는 것은 하나뿐입니다.’라면서 교회당 지하 창고를 보여주더라고 했다. 먼지 쌓인 포장으로 덮어놓은 것을 제쳐보니 벌써 한눈에 알아볼 만했다.


전임 목회자가 어려운 농촌교회의 자립을 시도하느라 온갖 일을 벌였고 도전했던 것이었다. 농산물을 가공 판매하려고 시도했던 기계들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그 교인들이 이렇게 말하더란다. “목사님이 우리 교회에 오시면 이런 일을 벌이지 않겠다고 약속하셔야 합니다.” 그 정도 이야기만 들어도 충분히 짐작되는 사례 아닌가.


그렇게 시도했던 일들은 모두 실패한 것이었고 그 목회자는 적잖은 빚을 진 채 견디다 못해 결국 다른 교회로 이임한 경우였다. 그러니 그 교회 교인들은 또 얼마나 미안했고 마음도 많이 상했겠는지 알 수 있다. 사실 전국에는 이런 농촌교회들 또는 농촌교회 목회자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야기했었다.


“무엇보다도 선교학 내지는 성서학 차원의 신학적 근거가 필요하다!” “보다 실무적이고 실질적인 창업 훈련 및 자료들이 절실하다. 최소한 여러 정부 기관에서 실시하고 있는 많은 창업 관련 교육이나 온라인 강의를 권유하기는커녕 그런 것이 있는 줄도 모르는 게 말이 되는가?”


하지만 아직도 이 문제를 심각히 여기는 이는 없다. 총회 농어촌선교부와 교회동반성장위원회 등 비자립교회들을 위한 정책 부서에서는 올해에도 또 다시 ‘2020 교회자립 프로젝트 공모사업 지침’을 노회들과 지교회에 내려보낸 상황이다.    (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