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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칼럼]

[한마음 칼럼] 내가 농목으로 사는 이유? 31

by 농민만세 2020. 3. 28.




한마음 칼럼 : “농목으로 사는 이유” 


이제는 교회당을 이전해야만 했던 엄청난 이야기를 해야 한다. 20년 전 이곳에 처음 부임했을 때 교회의 재정 상황은 여느 농촌교회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히 재정부에서 매주 회계장부를 작성하는 일에 역시 어지간히 애를 먹고 있는 게 보였다.


교회 재정부에서는 매 주일 헌금을 수납하여 일일이 그 헌금자 명단과 금액을 기록하고 또 지출된 금액을 장부에 적은 다음 합산표를 만들어 월별로 제직회에 보고하고 교회에 보관한다. 당연한 일이지만 교회에서는 일반적으로 부동산에 대한 관리와 책임은 당회가, 동산은 제직회가 담당하게 되고 당회와 제직회의 회장을 겸하고 있는 담임목사가 그 최종 결재자/책임자가 된다.


당연히 담임목사는 목회자로서 교회의 살림살이를 파악하고 교회의 행사나 목회계획을 세워야 하고 회계 관리의 최종 책임자로서 점검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이곳에 부임한 지 두어 달이 넘도록 당시 재정부 서기는 매주 헌금 수입과 지출 상황만 적은 보고서를 한 장씩 건넸고, 제직회의 월 결산도 그 자리에서 보고했다.


회계 업무를 전공한 이가 있을 수 없고 또 일일이 수기로 작성하는 농촌교회의 사정을 충분히 알고 있던 터라, 그에게 말했다. “매월 제직회에 보고하는 회계 보고서는 최소한 그 책임을 져야 하는 재정부장하고 제직회장인 내가 먼저 확인하고 날인한 다음 제직회에 상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수기로 계산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컴퓨터용 교회재정관리 프로그램이 있으니 그걸 사용합시다. 시간있을 때 장부 가지고 와서 지난 자료를 같이 입력합시다. 내가 도와줄게요. 주별 월별 연도별 결산도 다 자동으로 되니 아주 편리합니다.”


그 말에 그는 묵묵부답으로 집에 돌아갔는데 또 몇 주일 지나 제직회를 앞두고도 아무 말이 없었고, 역시 제직회에서 그냥 또 수기로 혼자 작성한 보고서를 읽는 것이었다. 아무리 작은 교회지만 최소한 상식적인 회계 시스템을 구축하여 공연히 애매한 누군가가 책임을 지는 일이 없게 해야 하므로 다시 차근차근 설명하고 당부했다.

그런데? 그는 붉어진 얼굴로 소리를 버럭 지르고는 집으로 가 버렸다. “지금까지 한 번도 재정장부를 목사님한테 보여준 적이 없는데, 왜 자꾸 그걸 보자고 그래요?!”


그리고 얼마 후 이런저런 핑계로 주일예배를 빠지더니 그대로 읍내에 있는 교회로 옮겼다고 했다. 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있었는데 그 후 몇 년이 지나서 그와 가까이 지내는 어느 집사님에게 그의 안부를 물으니,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그때 목사님이 재정장부를 보자고 해서 시험 들었다네요.” 그래서 나도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그게 그렇게까지 시험에 들어 교회를 떠날 일인지, 영문을 알지 못한다. 이후로 가난한 교회의 얼마 안 되는 재정과 물품을 공적 재산으로 관리하는 건 거의 전쟁에 가까운 일이었다. /계속 (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