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음 칼럼 : "농목으로 사는 이유"
가난한 농촌교회의 얼마 안 되는 재정과 물품을 공적 재산으로 관리하는 일이 거의 전쟁에 가까웠다는 것은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니다. 이런 일은 나뿐 아니라 재정을 관리하는 분들도 이미 겪어온 일이었다. 온갖 일로 힘들게 했는데 교회당 보일러 기름, 사택 연탄, 교회당의 나무 매도를 시도한 일부터 교회당 건축 시도까지.
그중에 당시 교회 승합차로 겪었던 일은 거의 코미디 같은 이야기다. 부임 당시 교회 승합차는 운행 거리가 15만Km가 넘는 낡은 승합차였다. 부임하면서 바로 시작한 지역아동센터에서 현장학습을 열심히 다녀 몇 달 만에 20만Km가 훌쩍 넘어 버렸고, 운전할 때마다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마침 서울에서 이주해 온 집사님 내외가 지역선교에 전력을 쏟는 것을 보고 중국 선교사에게 보내려던 해외 선교비라면서 적잖은 금액을 헌금했다. 그래서 새 승합차를 구입하겠다고 하고는 아예 ‘아동보호차량’으로 개조하여 검사 후 승인을 받았다. 남은 일은 이전에 사용하던 낡은 승합차를 매도하는 일이었다. 몇 군데 알아보니 차라리 폐차하는 것이 더 낫다고 했다.
물론 나는 아무리 문제가 많은 경우라 할지라도 일단 교회의 시무 직원인 이상은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켜 왔다. 당연히 그런 사정을 당시 시무장로에게 일일이 이야기했고 제직회에도 상세히 알리면서 진행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 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목사님, 내 지인이 우리 승합차를 좋은 가격에 사가겠다고 하니, 일단 자동차 키를 이리 주슈!” “사들이겠다는 이가 오면 시험 운행시켜 줄테니 일단 데려오시죠?” 그러자 그게 아니고, 뭐가 어떻고 하면서 일단 키를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더는 안 된다고 하기도 이상한 상황이 되겠기에 우선 내어 주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보니 승합차가 감쪽같이 사라진 게 아닌가! 그 장로에게 전화하니 몇 번을 걸어서야 겨우 받았다. ‘어젯밤에 시험운행을 하고 점검해 본다고 카센터에 맡겼으니 좀 기다리라’고 했다. 그리고는 다음 주간까지 아무 소식이 없었다. 어찌 된 일이냐고 물으며 자동차 서류도 건네줘야 한다고 하니 자꾸만 다른 말로 돌리며 연신 핑계를 댔다.
참다 못해 단호히 말했다. “그 카센터가 어디냐? 가봅시다. 내 개인 것도 아닌 걸 자꾸 이러면, 교회 비품을 책임지고 관리해야 하는 나로서는 경찰서에 ‘도난 신고’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자 다급히 전화를 끊어버리더니 다음 날 연락이 왔다. “사들이는 이가 지금 안면도에서 일하고 있으니 서류를 가지고 오시유.”
한걸음에 달려가 보니 안면도 해수욕장에서 몇 사람이 해변 모래 울타리를 설치하고 있었는데, 뭔가 좀 이상했다. 그 장로는 옆에 있는 사람을 자꾸 툭툭 치면서 나한테 가보라는 것이었고, 그는 매우 주춤거리며 다가왔다. 꼭 수리해야 할 곳을 알려 주는 데도 쩔쩔매면서 이상하게 아무 말이 없었다. /계속 (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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