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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칼럼]

[한마음 칼럼] 나는 왜 농목으로 사는가? 34

by 농자천하/ 2020. 4. 19.

※ 다음 블로그,

지난 날짜로 게시물을 올릴 수 있어서

그나마 다른 데로 옮기지 않고 있었는데,

왜 그 기능을 없앴지? ㅠ,.ㅠ

한마음 칼럼 : “농목으로 사는 이유”

우리가 교회 아이들을 돌볼 때, 아이들이 각자 개성 있게 타고난 기질이나 성격을 최대한 존중하고 그것의 장점을 고무시켜 주는 것이 최상의 돌봄이라고 여겨 왔다. 사실 사람의 품성이나 기질은 다 상대적인 것이어서 주변 환경과 경우에 따라 장점도 되고 동시에 단점도 되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것을 자신과 남에게 유용한 것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니, 우리는 교회에 모여 온 아이들이 각자 협력하고 갈등하면서 성장하는 것을 늘 목표했었다. 어쩌면 그것은 커다란 대가족 안에서 많은 형제자매와 사촌들이 함께 성장하던 것과 비슷하였다고 할 수 있다.

유난히 말이 없고 키가 큰 중학생 아이가 있었다. 쉽게 남 앞에 나서지 않는 것 같은 성격이었지만 그럴수록 사실은 누구에 못지않은 열정이나 열망을 가진 법이다. 그때는 마을 아이들을 모아 밤낮으로 공부방을 매일 지속할 때였다. 컴퓨터를 여러 대 설치하고 화이트보드와 기다란 탁자들을 책상 대신 놓고 합판을 구해다 칸막이를 만들어 설치했다.

어느 날 녀석이 친구에게 전화할 일이 있으니 무선 전화기 좀 써도 되냐고 했다. 흔쾌히 그러라고 했는데 문밖에서 꽤나 진지하고 심각한 통화가 거의 매일, 무지 길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과 ‘오~ 여자 친구 생겼구나!’ 하고 놀리곤 했다. 그리고 그달 전화료 통지서를 받았는데 무려 60 몇만 원이나 되었다. 그때 우리가 교회에서 받는 한 달 생활비가 85만 원이었으니 아닌 말로 놀라 쓰러질 일이었다.

태안 읍내 전화국에 가서 이의 신청을 했다. 통화목록을 인쇄해서 주기에 살펴보니, 이게 웬일?! 알고 보니 아뿔싸, 녀석이 당시에 유행(?)하던 ‘XX 전화’에 빠진 것이었다. 우리는 교회 아이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지 않으려 어떤 일에도 공개적으로 망신이 되지 않게 했었다. 그래서 그 아이를 따로 불러 조용히 이야기했다. 얼굴이 샛빨개진 녀석은 묵묵부답, 다시는 그러지 않기로 다짐을 받았고 교회에는 전달 전화료만큼만 청구하였고 나머지는 관리를 소홀한 책임이 있으니 우리의 생활비로 부담하기로 했다.

하지만 중학생 아이가 어떻게 그런 일을 쉽게 끊을 수 있으랴. 다음 달에도 다시 40만 원이 넘는 전화료가 나왔다. 그 당시 우리는 신용카드도 사용할 줄 몰랐을 만큼 어리석었다. 하도 전화를 오래 하니까 아내가 ‘뭔 전화를 그리 오래 하냐? 누구냐?’고 했던가 보다. 그러자 녀석은 ‘아는 누나’라고 하면서 옆에 있는 게 사모님이면 전화 좀 바꿔 달란다는 것이었고, 아내가 전화를 받자 마치 신앙상담을 하는 것처럼 계속 말을 시켜서 한참 통화를 했으니, 영락없는 공범(?)이 된 것이었다. 그 이후 중지되었지만, 덕분에 우리는 몇 달 동안 모자라는 생활비로 허덕여야 했다.

교회나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들은 망설이지 않았는데, 지나고 보면 이것이 썩 잘한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계속 (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