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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칼럼]

[한마음 칼럼] 나는 왜 농목으로 사는가 36

by 농민만세 2020. 5. 2.

한마음 칼럼 : “농목으로 사는 이유”

농촌목회 30여 년 동안 겪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일은 많고도 많다. 차마 이곳에서 다 이야기할 수 없는 일들도 적지 않다. 물론 모여 오는 교인들만을 관리하는 목회를 하는 이들은 아마 거의 모를 일일 것이다. 교회 밖의 사회가 교회 곧 기독교에 대해서 얼마나 실망하고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지를 말이다.

이미 이야기했지만, 이곳에서의 목회 초기 약 5년 동안 도시 교회들의 도움을 받아 정말이지 쉬지 않고 교회에 대한 인식 변화를 목표하고 봉사활동을 하였고, 또 전도 물품을 준비하여 지속적인 축호전도 활동을 했었다.

당시 내가 가장 집중하여 들어갔던 곳은 이 작은 면 소재지에서 당시 모두 성업 중이던 네 곳의 ‘다방’이었다. 그곳에서 일하는 종업원의 수와 대체로 그들에게 지급되는 월 급여만 계산해 보아도 정말이지 깜짝 놀랄 만큼 엄청난 금액의 비용이 그렇게 소비되고 있는 현상이 매우 기이했기 때문이었고, 다 말할 수는 없는 어떤 퇴폐적인 사회적 행태들의 온상이었기 때문이었다. 요즘은 어느덧 한 15년이 지나면서 그러던 세대가 점점 사라졌고 그 다방들은 간판만 걸려 있다. 그만큼 지역사회와 마을을 건강히 발전시키려는 세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니 여러모로 참 고맙고 또 바람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후 도시 교회들의 도움과 지원이 모두 중단되면서 우리의 연중 전도 활동은 여름 농촌 봉사활동으로 축소되고 말았었다. 그리고 다른 교회들처럼 고요해진 교회당을 지키며 또 5년을 와신상담하고 있을 때, 마을 주민들이 ‘장로교회 목사는 교회 나오라는 소리 하지 않아서 좋다(?)’고 하더라는 소문이 들려왔다.

이게 무슨 말인가? 당시에는 우리 면 소재지를 찾아와 막무가내로 집집이 방문을 하며 ‘전도’하는 ‘여호와증인’이나 ‘도를 아십니까?’ 등과 같은 이들로 원성이 자자했던 것이었다. 이러던 어느 날 교회학교 아이들을 통해 참 부끄러운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는 인근의 감리교회에서 이런 실정을 미처 몰랐던지, 전도지를 돌리며 전도하고 있었다. 대문을 두드리고 전도지를 손에 들려주고 ‘교회 나오라’고 권하는 일이 물건이나 보험을 강매하려 들르는 이들을 사양하는 일만큼이나 주민들을 괴롭히는 일이라는 사실을 미처 몰랐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그 교회 교인들이 방문하여 사람을 붙잡아 놓고 당부하고 권하고 돌아서 가자마자, 아이들의 엄마는 손에 들려준 전도지를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교인들 뒤에 대고 이렇게 화를 내더라는 것이었다. “늬들이나 먼저 잘 좀 믿어 보라고! 젠장!”

더구나 TV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에서 대형교회들의 참람한 비리들이 폭로되고, 그로 인해 교회에 대한 인식을 이렇게 최선을 다해 바꾸어가는 노력들을 날려 버리는 일이 잊을만하면 한 번씩 일어나고 있으니 실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대체 누구를 탓하랴! /계속 (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