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음 칼럼 : “농목으로 사는 이유”
아무리 손수 수선하고 고치며 살아도 점점 빠르게 부서져 나가는 교회당과 사택을 보면서 이를 어찌해야 할지 고민을 거듭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당시 시무 장로라는 이는 틈만 나면 자신을 ‘교회당 건축위원장’에 임명을 하고 교인들한테 건축헌금을 걷자고 했다. 도대체가 교회 일을 그이 아니면 누구와도 상의할 수 없는 구조였다. 하다못해 교회당 주변의 은행나무를 베자고 제직회에서 결의까지 해놓고도 남자 교인들은 그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 손도 대지 못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오래전에 교회당을 증축 수리하는 수천만 원의 공사를 하였을 때 그가 ‘건축위원장’으로서 공사비와 건축자재와 인부들을 관리하면서 지붕과 벽채를 말도 안 되는 불량 자재로 시공했고, 보온재를 흉내만 내고 하나도 넣지 않았으며, 방수 공사도 말만 하고는 하지 않아 증축한 부분에 빗물이 줄줄 새게 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교회 사정이 크게 열악한 상황에서 교회당을 다시 짓는다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다.
교회당을 신축하는 일은 재정적으로나 교회의 역량이 엄청나게 소모되는 일이기에 자칫하면 교회가 크게 어려움을 당할 수 있는 일이다. 오죽했으면 ‘교회당 건축하면 목사가 쓰러져 나가거나 아니면 건축해 놓고 울며 쫓겨 나간다’는 말이 있을까. 더구나 우리나라의 경우 토지매매나 건물을 짓는 일에는 어째서 그리도 비용적으로 빈틈이 많게 되는지. 정직과 신뢰를 배신하지 않고 교회당을 건축할 수 있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그 당시 우리는 정말 최선을 다해 헌금을 단 한 푼도 낭비하지 않고 모아서 당시 근 5천만 원 정도의 건축비용을 저축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것은 어린이 청소년 사역과 결코 적잖은 지역사회 선교비를 내가 전에 봉직했던 두 교회와 또 나와 연결된 몇몇 교회들이 수년 동안 대가 없이 지원해 주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러던 중 2011년 늦가을, 20대 청년기에 우리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잘하다가 도회지로 나가 오랫동안 살던 문ㅇㅇ 집사님이 고향 마을에 집을 짓고 귀향을 했다. 건축 관련 회사에 오래 근무하였고, 그 회사가 인근 홍성의 ‘내포 신도시’ 공사를 맡게 되어 내려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 집사님은 교회당과 사택을 구석구석 꼼꼼히 살펴보면서 교회의 재정 사정을 묻더니 이런 제안을 하였다. “목사님도 웬만한 일을 손수 잘하시네요. 제가 건축 일에 전문가니까 지금 있는 건축재정으로 자재를 최대한 좋은 가격에 사다가, 교회당을 같이 직접 지어 보면 어떨까요? 목사님하고 제가 손을 맞추면 충분히 할 수 있겠는데요.”
그리고 우리는 겨우내 교회당 설계도를 그리며 해체비용과 자재비용을 계산하며 보냈다. 내가 바란 것은 바닥 따뜻하고 웃풍 없고 비가 새지 않는 널찍한 교회당으로, ‘독거 어르신들 공동-홈’을 준비하는 일이었다. /계속 (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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