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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람과 경외/나의 골방

[나는 노동하는 목사다]

by 농민만세 2020. 5. 11.

어떤 식으로든
노동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겠냐마는

예전의 만병통치
가짜 약장수들처럼
혓바닥 노동으로

먹고 사는 게,
요즘의 목사라는
기이한 자들이니^^

젠장 성경도 안 읽어
다 그런 건 아니라 해도
웬 욕망들은 그리 많은지

그래도 저 옛날
시골 마을을 떠돌던
약장수들은

바위돌 맨손 격파
철근 목에 대고 휘기
입으로 불꽃 삼키기

뭐 그런
차력 시범이라도
보여줬었지

그러니
나는 노동하는 목사다,
란 말이 특히 독실하다는

기독교인들이나
종교인들에겐
이상히 들릴 법도 하다

실제로 농사 짓느라
땀으로 뒤범벅 된
내가 목사란 걸 안

어느 귀농인 보살님은
크게 놀라며 그랬다
아니, 왜?

목사님은 저
하느님의 일을 하는 거
아닌가요?

나는 대답했었다
아, 본래 이게 기독교의
하느님의 일입니다만

아이고, 성육신 그
化肉의 신비를
어이 다 설명하랴

나는 노동하는 목사다
입으로만 설교하기
이젠 한계의 끝까지 와서

민망하도록 쉬운 인생을
사는 무슨 죄인 같아
더구나 육체 노동이

거의 전부인 농촌에서
그런 목사로 사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워

신학생 시절 이제
스물 아홉살의 전도사를
총회장 대하듯 하시던

산골마을 교회에서
새벽기도 끝나면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경운기 소리들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순간이었다

어느 늦은 겨울 밤
TV에서 농촌의 미래라는
다큐를 방영했는데

오리 농법으로 쌀을
공동 생산하는 일본의
농촌체험마을이었다

마을협동조합으로
마을이 함께 살아가는,
그게 1991년 1월이었다

갓 태어난 아기
밤새 젖은 기저귀는 얼고
세살 먹은 어린 딸

한 번 죽일 뻔 하고
초코파이 하나에 촛불
켜놓고 생일축하도 하고

나중에 알고 보니
왜 초가 이렇게 큰가
그랬었다고 ㅜ,ㅎ

또 다른, 고통에 가깝던
대도시 담임목회를 접고
거의 황무지 같은

이곳에 오던 때부터
이제 여기서 죽겠구나
탄식이 절로 나왔었는데

아무 일도 못하고
그냥 있는 게
가장 무섭게 괴로워

매일 교회당 수리하고
가꾸며 삽질하다가
아예 농사를 시작하고

농촌 농민의 현실이
비로소 확 다가와
그야말로, 온갖 고군분투

협동조합, 농업회사,
비영리사단법인, 사회적기업,
영농조합 등을 시도하면서

1천3백여 평의
임대 밭농사는 내리
말아 먹고 ㅜ,ㅜ

쌓이고 쌓인
실패의 경험들이
다시 제대로

농목으로 이제 좀
살아 보라고
자꾸만 그러는 거 같아

함께 쌓인 부채도 좀
청산하고 덕분에
현장 신학도 더 탐구하고

지금은 생계노동 현장에
제대로 뛰어 들었다
말 그대로 벼랑 끝 같은

나날의 연속이지만
아직은
견뎌내고 있다

몇 년 전 홍성에서
교회를 개척하는
어떤 목사가 이랬다

교회를 개척했더니
이상하게 고물 줍는
교인들만 생기더라고

그들의 처지, 그
노동 현장을 알면서
인간적으로

입만 놀려 설교하며
그들의 헌금으로
먹고 사는 게

죽을만큼 괴로워
그들의 노동 현장으로
나갔다고, 그렇게

공동 작업장도 마련하고
교회당 지을 돈도
함께 모으고 있다고

주변에서는 특히
소속 교단의 목사들이
인사도 외면하지만

자신은 한 없이
떳떳하다고
함께 새벽기도 하고

일터로 나가는
그 시간이 가장 스스로
목사답게 느껴진다고

그런데 군소 교단의
그 목사와 달리
배부른 교단의 목사들

특히 신학교에서
여전히 여의도명성소망에
취해 있는 학생들은

이 치열한 현장을
가장 두려워하면서
자신들이 견뎌낼

숨막히는 현실은
제발 아니길
기대하고 있겠지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