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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칼럼]

[한마음 칼럼] 나는 왜 농목으로 사는가 40

by 농민만세 2020. 6. 6.

한마음 칼럼 : “농목으로 사는 이유”

마음속에서 또 한 번 어쩔 수 없는 원망과 한숨이 터져 나왔다. ‘나는 무슨 잘못을 그리도 많이 했기에 또 이런 곳에 보내셨나?’ ‘부임하는 곳마다 다른 목회자들이 평생에 한두 번 겪을까 말까 하는 문제들이 있는 곳일까?’ ‘도대체 이런 일은 언제 끝이 날까?’

하지만 그때마다 결국 나는 그런 원망 섞인 말을 스스로 거두어야 했다. 스무 살부터 시작하여 서른 살이 되어서야 마친 신학생 시절 동안, 소망교회나 명성교회와 같이 잘 나가는 교회를 개척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기도하던 동료들 틈에서 이미 농촌교회를 담임하고 있던 나는 늘 이렇게 기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교회를 또 세우는 일보다 이미 있는 교회를 바로 세우는 일에 헌신하겠습니다.” 하지만 그 누가 알았으랴. 그것이 얼마나 크고 엄청난 고난이 쉼 없이 닥쳐오는 고난의 길이었음을.

우선 급한 일은 합법적인 정화조 설치가 가능하도록 해결해 드려야 하는 일이었고, 그것은 이전 교회당 아래쪽 밭을 가로질러 정화조 하수 파이프를 묻을 수 있게 땅 주인으로부터 서류상의 동의를 구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밭 주인은 이미 오래전에 인천에 거주하고 있었고 어렵게 전화번호를 구하여 통화를 시도해 보았지만, 도무지 전화상으로는 무슨 대화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교회당 수리 공사를 몇 명의 목수들과 직접 하는 중인데 이사 오신 분의 당연한 독촉은 계속되었다. 성탄절 바로 전날, 하는 수 없이 인천으로 자동차를 몰아 달려갔다.

하지만 겨우겨우 찾아간 약속장소에 밭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 보니 한달 후에 자신이 밭 임대료를 받으러 태안에 내려가니 그때 보자고 하며 상당히 언짢은 목소리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럴 것이면 아예 약속하지 말았어야지 이럴 수 있냐, 만나자고 이야기하려니 아예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그대로 차를 돌려 내려오는 길,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발이 날리는 서해대교는 가도 가도 다 건널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또다시 당연한 독촉을 하면서 전 교회당에 이주해 오신 분들은 오히려 내 걱정을 해주셨다. 이 일이 해결되지 않으면 그분들도 아무 공사도 할 수 없는 상태였으니 서로 난감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다시 밭 주인과 약속장소를 잡고 인천까지 갔지만. 또 그대로 되돌아왔다. 하지만 우리가 아쉬운 사정이니 더 무슨 말을 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몇 주 지나 밭 주인이 남면에 내려왔다고 했다. 얼른 달려가 보니 전 교회당에 이주하신 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인사를 하고 또다시 사정을 설명하려니까 그 밭 주인 할아버지는 갑자기 역정을 내면서 막말을 마구 쏟아놓기 시작했다.

“그놈한테, 내가 1천 평 값을 고스란히 주고, 이 밭을 산 거요! 그런데 야금야금 교회 마당을 늘렸어! 그땐 교회 땅이 이렇게 크지 않았단 말여!” 이건 또 무슨 청천벽력같은 소리인가. /계속 (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