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음 칼럼 : “농목으로 사는 이유”
거의 매일 한 번씩 작업에 집중할 수 없도록 위험한 발판 위까지 올라가서 뒷짐을 지고 일하는 것을 노려보니 목수들이 어지간히 불편했던 모양이었다. “아, 신경 쓰지 말고 일에 집중합시다.” 그러자 어떤 목수가 한마디 했다. “저 사람, 헌금은 내면서 저래요? 자기가 교회 주인이라도 되나?”
그렇게 힘겨운 공사가 마무리되어 가니, 그가 이른 새벽이나 늦은 한밤중을 가리지 않고 또 찾아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횡설수설해서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또 무슨 꿍꿍이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요즘 밤에 잠이 안 온다. 새벽에 기도가 절로 나온다. 왜 이 건물을 목사님 명의로 낙찰받았는지 암만 생각해도 나는 그 영문을 알 수가 없다?” 나는 다시 마음이 상하고 괘씸한 생각이 들어 대답했다. “그러게 왜 목사인 내가 이런 일에까지 나서야 하냐고 했더니, 결국 제직회에서 그리 결정한 거잖소?” 뭔가 불길한 생각이 자꾸 들어 마음이 몹시 언짢았다. 자동차로 1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충남노회 사무실로 달려갔다.
아무리 경황이 없던 때였지만 새 교회당의 재산권을 우선 확실히 마무리해야 했다. 충남노회 유지재단에 사정을 이야기하고 긴급 이사회 소집을 요청했다. 하지만 충남 지역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재단 이사들을 갑자기 소집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때는 한겨울 빙판길을 마구 달려 노회 사무실을 네댓 번 방문했고, 심신이 너무나 피곤한 상태에서 두 눈이 저절로 감기는 바람에 미끄러져 수덕사 고갯길에서 큰 사고가 날 뻔한 적도 있다.
그렇게 해서 보통은 석 달 이상 걸리는 일을 한 달 만에 마무리했다. 무보수로 봉사하는 재단 이사들이었기에 장거리 왕래하게 되면 안건을 제출한 교회에서 조촐한 식사라도 한 끼 대접해야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어려운 농촌교회 사정을 잘 알면서 그럴 수는 없는 일이라고 다들 완강히 거절하였다. 참 미안하고 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공사를 마무리하고 이삿짐을 정리하며 교우님들과 청소를 시작한 어느 날, 그가 정색하고 나를 만나러 왔다고 했다. 그리고 자리에 걸터앉더니 느닷없이 얼굴이 벌게지도록 목에 핏대를 돋우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어안이 벙벙했지만 어디 한두 번 겪은 일이던가. 막말로 시비를 거는 내용인즉 정말이지 더는 참기 어렵도록 말 같지 않은 소리였다. “이 건물이 일시적이지만 목사님 명의로 되어서, 목사님이 재단에 기부한 것이 되었지 않냐? 나중에 목사님이나 목사님 자녀들이 반환 소송하면 교회 재산이 날아갈 수 있으니, 밤잠이 안 온다?”
“그동안 여러 번의 제직회록하고 교회 재정장부에 낱낱이 다 기록되어 있고, 또 교인들이 다 아는 일이고, 게다가 노회 유지재단에 등기하면 아무도 손 못 대는 걸 알면서, 그게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리요?” 아닌 말로 그 자는 욕이 나올 만큼 분통을 터뜨리게 하는 달인이었다. /계속 (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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