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음 칼럼 : “농목으로 사는 이유”
그래서 이제는 정말이지 안 되겠다 싶었다. “장로님, 지금 나하고 하는 얘기 전부 녹음해 둡시다.” 당연히 뭔 소리냐고 펄쩍 뛰었다. “다른 이유 아니고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이렇게 심각한 이야기하고 있는데 서로가 한 말을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기면 하지 않았다고 잡아 뗄 수도 있고, 그러니 휴대폰을 켭시다. 아니 뭐, 해서 안 될 말을 하는 거면 그럴 필요 없고.” 그러자 자기가 해서 안 될 말을 하는 게 뭐겠냐면서 녹음을 하자고 했다. 나는 휴대폰 녹음기를 켜서 손에 들었다. 그러자마자 아니나 다를까. 그때부터 횡설수설, 자신도 모르게 정말로 혀가 말려드는 소리로 계속해 댔다.
“장로님, 뭔 소린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차분하게 차근차근 얘기해 보세요. 그래서 뭐가 문제라는 겁니까? 핵심이 뭔데요?” 그러자 결국 그는 화를 버럭버럭 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 그러니까! 먼저 교회당 매각한 금액에 내 지분이 있단 말요! 그걸 그냥 교회가, 응? 목사가, 그냥 응? 꿀꺽하겠다는 거 아뇨? 그러니까 목사님하고 자식들이 다 이 재산 포기각서라도 써야 한다 이 말이오!”
“뭐라고요? 교회랑 내가 뭐를 꿀꺽해요? 단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으려고 이렇게 직접 일하면서 공사하고 있고, 장로님은 얼마나 건축헌금을 했는지 아직 모르지만 다들 이렇게 최선을 다하고 또 목사인 나도 그러고 있는데? 뭐라구요? 지분? 각서? 내 쓰라면 못 쓸 것도 없는데, 그 말 다시 얘기해 보시죠?! 무슨 지분?!” 아마 자기도 ‘앗차!’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 돌아가고 나서는 또 험담하는 소리가 들렸다. ‘장로가 하는 말을 녹음하는 목사다...’고.
과연 이런 일이 교회에서 정말 일어나는 일이냐고 놀랄 필요는 없다. 그나마 많이 다듬은 것이고 차마 기록으로 남길 수 없는 말과 행태가 넘치니까. 문제의 핵심은 이런 일련의 일들을 통해서 과연 ‘기독교 신앙이란 게 뭐란 말인가?’를 나는 근본적으로 회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함께 기도하거나 찬송가를 부르면 가장 열렬히 찬송하고 기도하는 모습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새벽기도회 때마다 다른 교인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강단에 엎드린 목사와 단둘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코미디 같은 ‘자기 변명’이나 ‘목사를 에둘러 험담하고 찔러대는’ 기도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하고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혼자 찬송가를 흥얼거리곤 했는데, 지금도 내가 기억하는 그 찬송가는 266장이다.
“주의 피로 이룬 샘물, 참 깊고 넓도다. 구원하는 크신 능력, 다 찬송할지라. 찬송하세, 주의 보혈. 그 샘에 지금 나아가. 죄에 깊이 빠진 이 몸, 그 피로 씻어 맑히네.”
정말 이럴 정도로 신앙과 삶이 뻔뻔하게 분리될 수 있는 것일까? 그가 경험하는 십자가의 죄 씻음의 확신이라는 건 도대체 무얼까? 정말 심각한 것은 이것이 지역사회 주민들이 우리에게 묻고 있는 질문이라는 점이다. /계속 (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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