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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칼럼]

[한마음 칼럼] 나는 왜 농목으로 사는가? 49

by 농민만세 2020. 8. 30.

한마음 칼럼 : “농목으로 사는 이유”

이야기하다 보니 훨씬 오래전에 일도 생각난다. 교회에는 물건을 강매하는 방문 판매자가 많이 찾아온다. 몹시 힘들고 불쌍한 모습이거나 장애인일 경우 대부분 목회자는 억지로 떠맡기는 물건을 터무니없는 가격에 사주게 된다.

늦가을 어느 날, 이전 교회당의 허름한 사택 현관을 누가 두드렸다. 문을 열고 보니 두루마리 휴지를 잔뜩 담은 커다란 짐이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무슨 장애인협회라는 글자가 박힌 작업용 조끼를 입은 노인이 서 있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농아인이며 휴지를 2만 원에 사달라는 글을 적은 수첩을 보여 주었다. 이런 일이 자주 있었기에 휴지를 꼼꼼히 살펴보고 글을 써서 보여 주었다. “이거 전에도 사서 써보니 품질이 너무 나빠서 도저히 쓸 수 없습니다. 그러니 제대로 된 물건을 좀 가져오세요.”

그가 거친 손으로 내 팔을 움켜잡고는 부당하다고 손짓하였다. 다시 한번 내가 쓴 글을 또박또박 읽어주고는, 그를 잡아끌며 말했다. “이렇게 큰 짐을 혼자 가져오지 못했을 텐데? 짐차 어디 있어요? 내가 쓸만한 물건을 골라 사 드릴게요.” 그러자 그가 화를 버럭 냈다. 내 목소리를 알아들은 것 아닌가! “아니, 왜요? 그 비싼 값에 휴지를 사주는데 내가 고르지도 못해요? 짐차 있는 데로 같이 갑시다.”

결국, 그는 휴지 더미를 손에 들고 돌아섰다. 그러고는 교회당 진입로를 벗어나면서 온 동네 들으라고 소리를 버럭버럭 질러댔다. “아이고, 별 이상한 목사 다 보겠네! 말 못 하는 불쌍한 장애인 물건 하나 안 사주면서 쫓아내네!” 그냥 가만히 돌아갔으면 그냥 두었을 텐데, 바로 잡아야지 이걸 그냥 두면 안 되겠다 싶었다. 그를 따라가면서 또박또박 되돌려 말해 주었다. “뭔 소리요! 가짜 장애인 행세하면서, 거짓말을 해요? 휴지도 다 녹아 없어지는 걸 2만 원에 사라고 던져 놓고!? 싫은 내색도 못 하고 사준다고 만만한 교회 목사들을 이용해요?!”

아니나 다를까, 면사무소 앞마당에 서 있던 승합차가 급히 오더니 그 가짜 장애인을 태우고 달아났다. 마을 경로당에서 나오던 어르신이 이 광경을 다 보셨는지 혀를 끌끌 차셨다. “거 참, 목사 노릇도 아무나 못하것슈. 저 눔이 말 못 한다고 거짓말하고 댕기는 거 경로당에서는 다 알고 있었슈.” 그리고 그런 강매자들은 뚝 끊겼었다.

어느 뜨거운 여름날, 스물 몇 살로 보이는 여자 청년 아이가 커다란 봇짐을 한쪽 어깨에 메고 땀을 뻘뻘 흘리며 찾아왔다. 죄송하지만, 동생들 학비를 벌고 있으니 양말을 몇 켤레 사달라고 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싸게 파는 양말이었지만 값도 적당했다. 

요즘처럼 쉽게 돈을 벌려고 하는 때에, 그 청년의 목소리나 모습이 진지했고 주저하고 있었다. 양말 한 봉지를 담아 달라고 하면서 3만 원을 내밀자 다 받을 수 없다면서 양말 몇 켤레를 더 담아 주었다. 찬물 한 그릇을 받아 들이키고 돌아서던 청년이 모습이 지금도 생각난다.  /계속 (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