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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신학연구소/[농촌 농업 기후]

현장 무시한 탁상행정과 농업 패싱, 겨우 230만 명의 농민만 대상이 아니라 식량주권 등 미래한국을 향한 농정이어야 한다

by 농민만세 2021. 3. 4.

https://m.nongmin.com/opinion/OPP/SNE/CJE/334326/view

/ 농민신문

[취재수첩] 현장 무시한 탁상행정과 농업 패싱


2년 전 선도농가 취재차 방문했던 시설토마토농가를 얼마 전 다시 찾았다. 10년 전 귀농한 김씨(45)는 팔순 부친의 영농을 승계하면서 농지도 늘려 제법 수익을 냈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판로가 막히면서 농사를 접었다.

한우 사육농가 박씨(48) 사정도 비슷했다. 2012년 빌린 돈 1000만원을 들여 산 송아지 5마리가 100마리로 늘면서 소득도 꽤 늘었다. 그런데 지난해 무허가축사 적법화 과정에서 구거(인공수로)와 관련한 지방자치단체의 무리한 법 적용으로 축사의 절반 가까이를 헐어야 하는 아픔을 겪었다.

한때 “농업을 선택한 덕을 본다”며 웃던 이들이 지금 이토록 절망하는 이유는 뭘까. 이들은 농정당국의 탁상행정을 첫손에 꼽았다. 이상기후에 대비한 치밀한 작황 분석, 데이터에 기반한 정교한 출하량 예측이 가능하려면 주산지의 실상과 농가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함은 당연지사. 하지만 김씨는 “지역별 생산량이나 소비 트렌드 등 영농설계를 위한 안내가 부족할 뿐 아니라 소비부진 타개와 판로개척 같은 해법은 늘 현장을 겉돌았다”고 탄식했다.

여기에 최근 정부가 갑작스레 발표한 외국인 근로자 주거환경 개선책도 이들의 영농의욕을 꺾기에 충분했다. 농가들은 “가설건축물이지만 거주에 적합한 시설도 많다”면서 “한번이라도 현장을 찾아가봤다면 나오지 않았을 조치”라고 비판했다.

현장의 요구를 묵살한다는 지적도 많다. 농수로 기능이 상실된 구거의 전향적 적법화 조치 등 타당한 요구가 일부 지자체에선 받아들여지지 않았는가 하면, 수천만원의 과태료도 물어야 해 농가 불만이 상당하단 사실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박씨는 “구거 현장사진과 함께 주변 10농가의 주민동의서도 제출했는데 당국에선 온갖 규정만 내세웠다”며 성토했다.

이들은 “할 게 없어서가 아니라 제대로 해서 성공하려고 농사를 선택했는데 이젠 너무 고통스럽다”면서 “앞에선 ‘위하는 척’ 대책을 내놓지만 실상은 농업을 제물로 삼고 농촌과 농민을 무시할 뿐”이라며 분노했다. 한해 영농 준비로 가장 바빠야 할 이때 농촌현장은 이렇듯 초토화되다시피 했다.

농가 경제를 최우선하겠다며 각종 농업정책을 쏟아낸 정부였다. 그러나 2019년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 3%도 안되는 농업예산 등으로 농업·농촌을 어려움에 빠뜨린 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농가를 매번 화나게 하는 건 정책이 아니라 그 바탕에 깔린 ‘농업 패싱’이다.

황의성 (전국사회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