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음 칼럼 : “교회에 이런 일이?!”
몇 주 전, 주일예배 마치고 교회 승합차로 성도님들을 댁에 모셔다 드리고 있었다. 멀리 해외에 나가 선교하는 선교사님 어머니 권사님이 댁 앞에 먼저 내리시고 다시 출발했다. 그러자 다음에 내리시는 노 권사님이 혼자 한 말씀하신다. “저 권사님은 귀한 목사 아들을 외국까지 내보냈는데, 난 엉터리유.” “무슨 말씀이세요?”
그러자 권사님이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일이 있었다며 말씀하셨다. 30여 년 전, 권사님의 작은 아들이 신학대학에 입학했고, 당시 기록을 보니 교육 전도사님으로 아이들을 아주 잘 가르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주일은, 우리 교회의 엄청났던 지난 역사의 한 페이지가 또 다시 갱신된 주일이었다.
당시 그 아무개 장로는 교역자가 바뀔 때야말로 자신이 교회의 주도권을 확실하게 쥐고 흔들 기회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못된 일들이 드러나거나 교역자가 자기 마음에 못마땅하다 싶으면 온갖 방법으로 볶아대서 스스로 떠나게 만드는 신박한 몇 가지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30년 전 그때만 해도 아직 그런 노련한 기술들을 연마하기 전이었던가 보다. 당시 목사님은 안수 받으신 지 얼마 안 되는 젊은 분이었으니, 교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열망이 아주 강했을 것이고, 설교 말씀도 꽤나 직설적이었을 테고 강렬했을 터였다. 더구나 그 아무개는 자신을 장로로 만들라고 직전 목사님을 너무나 괴롭혀서 그분은 하는 수 없이 투표로 선출해 놓고 그만 교회를 떠나야 했고, 그 후 부임하신 목사님은 또 어쩔 수 없이 그 아무개를 장로로 임직 시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기막힌 주일, 목사님이 설교를 마치는데 (권사님의 말씀대로 하면) 그 아무개가 갑자기 “꽤액!” 소리 지르며 설교 단상에 뛰어오르더란다. 그리고는 목사님의 멱살을 잡아채고는 “뭐라고 소리를 지르고 씨부렁거리며” 그대로 목사님을 교회당 현관까지 질질 끌어다 놓더란다.
그 일의 발단은 온갖 일로 교회를 안으로부터 무너뜨리고 있던 그 아무개 장로의 신임을 교인들에게 물어야 했던 일이지 싶다. 그때의 투표용지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 발광을 하는 데도” 목사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현관 앞에 무릎 꿇고 엎드려 있더란다. 너무나 놀란 권사님은 그날로 집에 가서 아들을 불러 앉히고는 목을 놓아 울며 비셨다. “아이고, 그런 꼴 당할라구 신학교 댕기냐? 난 그 꼴 죽어도 못 보니께, 당장에 그만둬라!” 아무 말 없이 어머니를 달래던 아들은 바로 신학대학을 그만두고 사회복지학과로 옮겼다고 하신다.
그 목사님은 수년 전까지 여름이면 휴가차 나에게 들러 많은 얘기를 나누곤 했다. 그리고 그렇게 6년을 견디다가 결국 교회를 떠나게 만든, 목사님과 사모님을 끔찍이 괴롭힌 일은 차마 기록에 남길 수가 없다. 교회와 지역사회는 아직도 이런 트라우마를 지우지 못하고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우리가 온전히 새롭게 될 날은 언제 올지. /계속 (聾)
** 특히, 이런 내용에 절실하게 공감이 되시는 목회자들과 사모님들 그리고 자녀들의 치유와 건강을 부디 빕니다.ㅡ,ㅡ
** 내가 겪었고 또 내 경험담을 듣고 공감하며 자신들이 겪은 일을 나누어 주신 동료들의 이런 이야기? 책을 열 권 쓰고도 남습니다. ㅠ,ㅠ
** 아이고, 나는 앞으로도 사명감을 가지고 전부 기록해 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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